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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별대담)"사회적경제가 주류로 우뚝서는 한해를 기대합니다"
'공존과 배려'의 대안 확산, 문재인정부가 적임…'사회적경제3법' 통과가 가장 시급
2018-01-02 06:00:00 2018-01-03 18:19:13
대담 송경용 나눔과미래 이사장, 강대성 사회적협동조합 SE바람 이사장, 한상엽 소풍 대표 파트너,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
사회 정광섭 편집국장
정리 김나볏·임효정 기자
사진 김영택 기자
 
 
왼쪽부터 송경용 나눔과미래 이사장, 강대성 사회적협동조합 SE바람 이사장, 한상엽 소풍 대표 파트너,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 사진/김영택 기자
 
사회 문재인정부 들어 사회적경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시동이 걸렸다면 새해에는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먼저 왜 지금 '사회적경제', '사회적경제기업'인가로 얘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왜 지금 사회적경제기업인가
 
송경용 나눔과미래 이사장·신부
송경용
한국이 지난 수십년 동안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로 발전하고, 기업도 수십배 벌고, 재벌들의 순자산도 두세배 늘었는데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지 않습니까. 고용현실은 더 악화되고 질도 낮아졌습니다. 우리 사회, 경제가 잘못돼왔다는 것이지요. 대안적 경제를 이제는 인정해야 합니다. 새로운 길을 찾을 때라는 것을 사회가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 대안 가운데 역사적으로 증명된 대안 중 하나가 사회적 경제입니다.
 
강대성 우리나라만 놓고 봐도 청년실업, 저출산, 고령화 등 엄청나게 많은 사회문제들이 있습니다. 문제 발생속도가 워낙 빨라서 정부나 시민단체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요. 정부나 시민단체가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죠. 문제 자체를 가지고 비즈니스 방식으로 풀어서 해결하는 것이 사회적경제 모델이고, 이게 확산돼야 합니다.
 
사회 현장에서 직접 기업을 운영하고 이를 지원하는 젊은 세대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안지혜 대표는 사회적경제기업에 뛰어 든 계기가 무엇인가요.
 
안지혜 영리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사회적기업으로 넘어온 건 여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컸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정부나 다른 지자체에서 해결해주기까지 기다리자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이것을 다른 시민단체가 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비즈니스 관점에서 뭔가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나 제품을 개발한다면 좀더 속도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 선택했습니다. 창업이나 이쪽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한상엽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로운 사회라고 하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운 시대인 역설적인 상황에서 나와 주변 동료를 돌아보면 희망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사회적경제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아름답다고 느껴요. 승자독식이 아니라 모두가 같이 나누고, 결과가 아닌 과정이 우선, 사람이 우선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죠. 그간 부모세대나 앞선 세대를 봤을 때 느끼지 못한 것을 줍니다.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사람 중심 사회, 행복한 사회가 돼야 하는데 이걸 기존 기업에 가서는 찾기가 어렵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죠. 그래서 사회적경제에 본능적으로도 끌리는 겁니다. 기존 경제에서 대안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이쪽으로 오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사회적경제기업 여건은 얼마나 달라졌나
 
사회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에 대한 평가를 해보죠. 정부가 지난해 10월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사회적기업 창업·성장을 위한 금융인프라 강화, 성장단계별 맞춤형 지원 강화와 저변확산, 공공기관의 판로지원 선도 등이 주 내용인데요.
 
강대성 사회적협동조합 SE바람 이사장
최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자리위원회 산하에 사회적경제 일자리위원회를 별도로 분리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정부가 사회적경제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10월18일 정부가 민간 전문가들 의견을 수렴해서 사회적경제 활성화 대책을 내놨는데요, 지금까지 정부 주도 하에 사회적기업이 나오긴 했지만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적경제 비서관을 두고 이렇게까지 드라이브 거는 것은 처음입니다. 현장에서 필요한 대책들이 나와 있는 상태고, 그것에 대해 매달 각계에서 금융, 인재개발 등 파트별로 연구를 하고 대책들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사회적경제에 상당한 비중을 쏟고 있는 것인데, 시기적절한 일입니다. 물론 정반대의 시각도 있죠. 어떻게 설득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관건인데, 대체적인 방향은 잘 짜여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일단 가장 좋았던 것은 소셜벤처라는 용어가 공식화됐다는 점입니다. '이지앤모어'의 경우 지금은 예비사회적기업이 됐지만 그 전까지는 소셜벤처였습니다. 소셜벤처라고 얘기하면 "그게 뭐냐" 반문이 많았습니다. 사회적기업과 다른 점이 뭐냐고 했을 때 설명하기에 경계가 애매모호했습니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대책에서 '소셜벤처'를 지원하겠다고 용어를 공식화한 점이 반가웠습니다.
 
사회 정부는 사회적경제·사회적경제기업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을 금융지원 인프라 부족과 판로 문제에서 찾고 있는데, 옳은 진단이라고 보십니까.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정부가 발표한 대책의 방향성을 보면 매력적인 제안이 많습니다. 신용보증기금을 찾아가서 아무리 설명해도 시장성을 모르겠다며 거절당하기 십상이었는데, 금융인프라 등을 포함한 제안이 매력적이라 좋습니다. 하지만 시행이 생각만큼 빨리 되지 않을 것이란 점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대만 하고 있진 않고, 우리만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떻게 구체적으로 정책이 시행되느냐 하는 문제가 있는거죠. 사실 우리는 판로 개척에서 문제를 겪었다기보다는 기존 법에 막혀하지 못했던 게 컸습니다. 생리컵 자체가 의약외품으로 지정돼 있었기 때문이죠. 해외에선 판매되는 제품이지만 국내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기부조차 하지 못했던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가 개발한 생리컵 제품도 시중에서 고객 테스트를 통해 더 편리하게 개발하고 싶어도 테스트를 하는 순간 위법행위가 됩니다. 식약처에 허가를 받아야만 테스트도 할 수 있거든요. 비단 의약외품뿐만 아니라 혁신형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법 제도에 막혀 실제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과감하게 법 규제를 완화해줬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장단점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특히 긍정적인건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에 투자하겠다고 한 정부자금이 벌써 풀렸다는 점입니다. 집행은 안됐지만 공고가 떴습니다. 국내에 벤처기업으로 풀리는 자금은 모태펀드와 성장사다리펀드 두 가지가 있는데요, 아직 모태펀드는 정책이 안 나왔고, 성장사다리펀드 쪽에서 이미 사회적기업 쪽에 50억, 소셜벤처 쪽에 150억 등 200억원이 이미 풀렸고 기업은행이 운용기관으로 선정됐습니다. 우리나라 벤처가 사실 정부 주도로 커왔습니다. 국내에서 작년에 벤처로 2조가 들어갔는데, 이 중 1조가 정부자금이었습니다. 이미 국내 대다수 벤처캐피탈(VC)이 정부 대책에 따라 투자 방향이 바뀌고 있는 상황이죠. 그런데 이런 정책적인 혜택들을 그간 소셜벤처, 사회적기업들이 못 보고 있었는데 이번에 분위기가 달라진 게 느껴집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현 정부가 들어선지 1년도 안됐고, 정책이 발표된 지 몇 개월 안됐지만 정책 구체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담당 공무원들도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라 백지 상태에서 와서 오히려 아이디어를 구하는 상황입니다.
 
사회적경제, '일자리의 보고' 되려면
 
사회 정부는 사회적경제를 새로운 일자리의 보고라고 판단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했습니다. 2015년 기준으로 유럽은 6.5%였던 반면 우리나라는 1.4%에 머물렀습니다. 사회적경제와 일자리를 연결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보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어떤 점들이 개선돼야 사회적경제가 진정한 일자리의 보고가 될 수 있을까요.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을 통해 일자리창출을 도모하겠다고 하는데, 사실 아직 사회적경제 영역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사회적경제를 어느 정도 알고 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들이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 등 사회적경제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는 일자리 매칭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야 질적 성장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보의 미스 매칭이 많은 것 같습니다. SK행복나래에서 일할 때 각 영역별로 전문인력들을 꾸려사회적기업을 코칭해주고 멘토링해주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 이게 실제 효과가 있었습니다. SK나 삼성 등에서 퇴직한 임원들 중 마케팅, 노동관련, 금융계열 등의 인력이 있었는데요. 사회적기업이 대출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이런 전문인력들이 재능을 기부하거나, 어느 정도 보수를 받고 일을 하면 크게 도움이 됩니다. 정보의 미스 매칭 부분이 해결되면 일자리 창출이 더 잘 이뤄질 겁니다.
 
일자리 부문에서는 정책이 세분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위한 일자리, 은퇴자들을 위한 일자리, 노동력이 뛰어난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 노동력이 미약한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 등이 사회적으로 구분돼야 합니다. 사회적기업, 소셜벤처를 이야기할 때 자원봉사 개념으로 접근하거나 은퇴자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적극적 창출자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적 대안으로서 의미가 있고, 여기에 적극적으로 정책이 따라 붙으면 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번에 발표된 정책은 부족한 면이 있죠.
 
이 모든 것이 사회적경제 기본법 통과가 돼야만 후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국회에 현재 계류 중이기 때문에 내년 초에라도 탄력을 받아 입법이 되면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에도 속도가 날 것입니다. 정부가 내년 초 입법이 완료되도록 노력할 것으로 봅니다.
 
 
사회적기업, 미션과 비즈니스 사이
 
사회 사회적경제기업을 할 때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미션과 비즈니스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점일 텐데요. 어떤가요. 현장에서 보고 듣거나 실제로 느끼는 바가 궁금합니다.
 
사회적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젊은 층의 경우와 50대 후반 은퇴자들의 경우가 다릅니다. 젊은이들은 사회적인 문제를 어떻게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볼까 하는 관점에서 진입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중장년층은 사회적기업의 경우 인건비 지원 등 정부보조도 있으니 은퇴 후 리스크를 줄이고자 창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장년층이 사회적기업을 창업할 경우 자신이 그 동안 키워온 핵심역량을 가지고 창업을 하는 것이면 좋은데, 그 역량과 동떨어진 분야로 가는 경우가 많아 걱정스럽습니다.
 
사회적경제를 하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묻는데, 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1992년에 처음 시작할 때 산동네 노동자들과 먹고 살기 위해 했고, 두 번째는 다음 세대를 위한 미안함과 책임감 때문에 합니다. 또 다시 돈 중심, 경쟁 중심의 세상을 만들 수는 없지 않나요. 사회적경제를 지금까지 몰랐다면 이젠 배워서라도 우리가 잃어버렸던 가치, 즉 연대, 상호 돌봄 등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후배 세대가 마음 놓고 삶을 꾸려나가지 않겠습니까.
 
사회적 경제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라보는 측면이 한 쪽에 있고 또 다른 쪽에는 회복에 대한 욕구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즈니스의 개념과 우리가 그간 잃어버렸던 공동체, 상호성, 연대 등의 회복 개념이 충돌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지만, 또 기업이기 때문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소셜벤처는 회복보다는 혁신, 창조, 미래성장동력 창출 등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적경제기업 현실은
 
사회 정책 얘기를 넘어 현실적인 문제가 궁금합니다. 실제 사회적경제기업을 운영할 때 어려움이 많을텐데요, 정부의 정책자금은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습니까. '소풍'은 정책자금을 신청하고 있나요.
 
한상엽 소풍 대표 파트너
소풍은 아직까지는 자체 자금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책자금을 신청해 받는 것에 대해선 고민하고 있습니다. 장단점이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번 성장사다리펀드에서 나오는 것은 안 받기로 내부결정을 내렸습니다. 이게 온도 차이가 있어요. 뭐냐면, 현실이 비루합니다. 저희가 하는 섹터를 임팩트 투자(수익뿐만 아니라 사회·환경적 가치까지 고려하는 투자방식)라고 하는데 임팩트 투자 생태계는 국내에 플레이어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합니다. 저희가 시드 투자(초기 투자) 하는 게 한해 7~9개인데, 이게 국내에서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투자하는 단위가 수천만원 단위입니다. 우리한테 200억을 줘도 못 씁니다. 반대로 200억이 필요하다고 하면 보통 3~4년 안에 200억이 들어가야 하니 연간 10억짜리 두세 곳에 투자를 해야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국내 임팩트 투자에선 지금까지 이렇게 투자한 플레이어가 없다는 점입니다. 또 성장사다리펀드 자금을 지원 받으려면 라이선스가 있어야 하는데 기존 임팩트 투자 생태계에 라이선스를 가진 곳도 없습니다. 최소자본규정을 못 맞췄기 때문이죠. 임팩트 투자는 그간 정부와 관계없이 주로 민간주도로 해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자금이 풀리니 정부만 바라본 VC는 적극적이겠지만, 기존 임팩트 투자하는 곳들은 그 자금을 받아도 소화불량 걸릴 것이 뻔하기 때문에 받아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안 받으면 애매한 곳에 갈 수 있다는 문제가 있는데,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고용노동부가 모태펀드를 운용해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거기서도 소셜밸류에 대한 측정을 해서 그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놓으면 그걸 보고 투자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실제로 모태펀드 운용하는 것을 보면 절반은 소셜벤처 쪽에 넣고 절반은 일반 벤처투자를 해요. 일반 벤처에 투자해 수익이 나는 것을 가지고 소셜벤처 쪽을 커버하는 식이죠. 자금을 운용하는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퍼포먼스를 내야 대우를 받는데 소셜밸류는 평가를 제대로 못 받기 때문에 형식상 몇 개만 넣고 나머지는 일반벤처에 넣어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도 소셜밸류에 대해 계속 얘기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 이 부분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빨리 소셜밸류에 대해 정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 정책자금을 신청해 받는 과정은 원활한 편입니까. 아무래도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접근하는 분야가 기존에 없던 사업들인 만큼 사업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우리나라에 생리대를 구매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점을 문제로 제기했어요. 문제 제기를 할 때마다 항상 돌아왔던 질문이 '그게 무슨 문제야?' 라는 것이었죠. 특히 투자 심사위원은 대부분 남성들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공감하지 못했어요. 생리대 가격이 개당 170~200원인데요. 이것에 대해 '왜 비싸냐. 이게 왜 사회적 문제냐'하는 질문이 되돌아 왔을 때 외로웠습니다. 저희는 직원이 모두 두 명입니다. 제조는 외주로 해요. 인력을 채용하고 싶어도 쉽지 않습니다. 팀원을 보충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이 문제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여성 분을 만나도 이 미션을 같이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월급을 많이 주면 되지만 그럴 수 있는 형편도 아닙니다.
 
안지혜 대표의 노력으로 생리컵 판매가 최근 국내에서 합법화 됐습니다. 그런데 이지앤모어의 사회적 가치를 국내에서 인정해줄 수 있는 체계, 측정하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 생리컵 판매숫자로 얘기하는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요, 이렇다 보니 국내 기업들도 도전하지 않습니다. 기존에도 식약처를 통해 생리컵 인증이 가능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기존 생리대 업체들은 시도하지 않았죠. 그 사이 여성들은 계속 피해를 보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번에 제안된 사회적경제 3법에도 입찰을 할 때 사회적가치를 인정하는 부분이 들어가 있는데요. 저희도 지난해에는 사회적 가치가 인정되지 않아 대기업과의 가격경쟁력에서 밀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조장행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부나 사회가 어느 정도 일정기간 '조장'을 해줘야 합니다. 예전 SK, 삼성을 지원했던 것처럼 이 분야가 클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해요. 사회적금융도 우리 스스로 제한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살리는 데도 5조씩 넣어주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5조를 주면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기업의 역할
 
사회 대기업도 사회적경제 내에서 일정정도 역할을 해야 할 텐데요. 이제까지 주요 대기업이 사회적기업 이슈들을 일정 부분 이끌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할까요.
 
대기업 중에 SK의 경우 사회적기업 이미지가 강하죠. LG와 현대도 나름 돈을 많이 쓰는데 그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사회적경제에 관심을 가지는 한편 젊은이들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리소스를 사회적기업에 나눠 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대기업 직원 중 법무 담당, 재무 담당 등이 있을텐데요. 이들이 사회적기업을 대상으로 프로보노(Pro Bono·공익을 위한 재능기부)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회 만약 대기업의 사회적기업 제품 구매를 제도화한다면 어떨까요.
 
제도화하면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사회적경제 기본법에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제품 5%를 사회적기업 제품으로 써야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조항을 두고 '빨갱이법'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앞서 '조장행정' 이야기도 나왔는데 정부가 분위기를 조장한다는 그 관점에서 보는 것이 맞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SK계열사의 CEO를 찾아가서 명절 선물 구매시 사회적기업 제품을 쓰도록 요청한 적이 있는데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같은 행위가 윤리적 소비라는 인식이 확산됐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가치 기본법도 중요합니다. 공공기관을 규율하는 법을 통해서 민간기업에까지 영향을 끼치겠다는 것이 사회적가치 기본법의 취지죠. 이런 방식으로 제도화, 정책화를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공공기관에서 쓰는 돈이 연간 120조원이에요. 이걸 입찰을 통해 민간 대기업이 거의 다 가져가죠. 사회적가치 기본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13개 사회적가치가 있는데요, 노동권·인권을 중시해야 하고, 환경에 대한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내용들입니다. 이를 지키지 않는 민간기업은 입찰에 제한을 두겠다는 건데 이런 기본법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공공서비스 부족한 한국사회, 사회적경제 성장 기회될까
 
사회 우리 사회는 공공서비스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사회적경제 성장 기회가 될 수 있을까요.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공공서비스를 하나의 시장으로 보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현재도 장애문제, 시니어 돌봄, 아동 돌봄을 하는 곳에 투자하기도 합니다. 공공서비스에 투자하는 것이 좋은 기회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공공서비스의 수혜자들이 지불주체가 되기에는 상당히 열악한 게 현실이죠. 그렇다 보니 지불주체와 수혜자가 분리되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고객은 돈을 내는 사람인데 고객의 니즈와 수혜자의 니즈가 갈라지게 되는 것이죠. 이 경우 기업의 입장에서는 고객의 니즈를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사업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때문에 기업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물론 있지만 많은 부분은 시민사회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플레이어들이 다양하게 나와야 한다고 봅니다. 비즈니스 모델에서 수혜자와 고객이 같으면 좋은 모델로 평가하곤 합니다. 하지만 공공서비스의 경우 일반적으로 수혜자와 고객이 동일한 모델이 되기 어렵기 때문에 벤처 입장에서는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벤처기업은 힘들지만 사회적기업이나 자활, 마을기업에는 엄청난 기회가 될 것으로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사회적경제 조직들을 제대로 된 사회적 파트너로 인정해주는 문화가 생겨야 합니다.
 
공공서비스를 사회적기업이 맡는 것에는 양면성이 있는데요, 충돌이 많이 일어나요. 부평구청하고 노조와 갈등이 컸던 사례도 있습니다. 구청 청소를 사회적 기업에 맡겼는데 노조가 반대한 것이죠. 실제 영국에서도 이 같은 충돌이 있었습니다. 영국 사회적기업과 카메론 정부는 세계 최대 사회적기업을 만들자고 합의했었는데요. 민영화에 대한 거센 반발에 대한 타협책으로 나온 것이었죠. 그래서 영국 사회적기업협회와 정부가 수년째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공공서비스는 국민에 대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국가가 책임을 놓아선 안됩니다. 프랑스 SOS그룹이 시립, 도립 병원을 인수해서 성공적으로 변신을 시킨 사례도 있습니다. 한국에도 시립, 도립 병원을 인수해 성공시키는 방안을 도입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었죠. 유럽과 달리 한국은 아직도 공공서비스 책임이 낮은 국가에 속합니다. 사회복지 예산도 OECD 최하위 수준이에요. 아직은 공공의 책임을 높여 나가야 할 때입니다.
 
공공서비스를 사회적경제 쪽에 맡길 경우 이것을 수용할 만한 사회적기업이 있느냐는 것도 문제입니다. 역량 있는 사회적경제 조직이나 기업을 만들어 내는 것도 급선무입니다.
 
국가가 공공서비스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질 것이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고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이나 주체들을 양성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직 사회적 합의 수준과 국가의 책임 수준이 낮아요. 부분적으로 일정기간 파일럿 기간을 거쳐 제도화시킬 수 있겠지만 무대 위에 전면화 시키기에는 우리사회에 고려해야 할 게 아직 많습니다.
 
사회적기업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사회 뜻 있는 많은 젊은이들과 퇴직 중장년층이 사회적기업 창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을 한다면 무엇입니까.
 
두 가지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미션과 비즈니스 모델의 연결고리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경제 창업을 하는 사람과 기존 벤처 창업하는 사람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회적 경제 창업은 미션을 중심으로 비즈니스를 고민합니다. 반대의 경우는 비즈니스를 설정하고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는 건데, 사실 미션 중심이었던 조직도 나중에는 비즈니스 중심으로 가야만 지속가능한 기업이 됩니다. 이 때 미션에서 비즈니스로의 전환을 빠르게 수행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다른 조언은 창업을 자기문제에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창업 후 생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패가 다반사죠. 그렇다고 실패를 권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급적 본인이 꾸준히 문제제기를 했던 것에서 창업을 시작하는 게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
사회적경제 영역의 육성사업, 정부 지원사업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보호막이 잘 형성돼 있는 곳이 많습니다. 일단 울타리에 들어가서 전문가의 멘토링이나 정부 지원 속에서 시작하고, 그 안에서 아이디어로 가지고 있었던 것을 비즈니스 모델화 시킨다면 탄탄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보호막이 잘 형성돼 있다고 의존도가 커져 버리면 홀로서기가 어렵죠. 의존도를 낮추고 나만의 차별화 전략이나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초창기에 미션 중심에서 시작해 나중에 비즈니스 모델로 가는 것보다 처음부터 미션과 비즈니스를 같이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 보조금에 의지하면 백발백중 실패합니다. 아예 정부보조금이 없다고 생각하고 '맨땅에 헤딩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최근 신문을 보니 초·중·고등학생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장래희망 1위가 선생님으로 조사됐습니다. 청소년들에게 기업가 정신이 없다는 것인데 교육을 통해 가르쳐야 합니다. 기업가 정신에 대한 함양도 필요합니다.
 
청년들,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상담을 많이 합니다. 그 때 그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얼마나 준비했냐는 것입니다. 최소 3년 공부하고 다시 오라고 돌려보내곤 합니다. 사회적경제도 전문성이 있어야 합니다.
 
2018년 새해에 거는 희망
 
사회 현장에서 느끼는 생생한 이야기들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대담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사회적경제 활동가로서 2018년 새해의 희망과 포부를 얘기해 주십시오.
 
사회적경제 기본법, 사회적가치 기본법이 통과돼야 합니다. 제도화로 인한 위력이 분명 있기 때문에 반드시 통과됐으면 좋겠습니다.
 
협업을 통한 성공적 모델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경제 관련 법은 내년에 반드시 통과가 될 것이고,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희망은 월경컵 시장이 잘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브랜드들이 시장에 들어와서 여성들에게 다양한 선택권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월경컵 말고도 해외에 다른 월경용품들이 많은데, 다른 월경용품을 국내에 들여오는 작업도 하려 합니다. 여성들이 월경으로 고통 받지 않도록 이를 개선시키는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경력단절 여성이나 보육원에서 나갈 수밖에 없는 친구들을 채용하고 싶은 욕심도 많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채용해 월급을 줄 수 있는 형편이 안 되는데, 내년에는 많은 사람들을 채용할 수 있는 회사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현재는 연 7~9곳에 투자하고 있는데 앞으로 투자기업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또 내년에는 계류중인 사회적경제 3법뿐 아니라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이 제대로 시행됐으면 좋겠어요. 이를 통해 사회적경제기업이 주류화되는 원년이 되길 바랍니다. 또 사회적 가치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 측정방법들이 활성화돼서 여러 가치가 인정받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끝>
 
왼쪽부터 정광섭 뉴스토마토 편집국장, 한상엽 소풍 대표 파트너,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 강대성 사회적협동조합 SE바람 이사장, 송경용 나눔과미래 이사장. 사진/김영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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