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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 ‘염력’, 경쾌한 '가벼움'이 담은 묵직한 '숙제'
‘블랙 코미디’ 장르 속 연상호 스타일 ‘초능력’ 소재 돋보여
2018-01-24 16:46:23 2018-01-24 16:46:23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연상호 감독 신작 ‘염력’은 아버지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이 정확하게 나뉘는 이분율을 갖고 출발하게 될 것 같다.
 
‘염력’은 애니메이션 전문 연출자로서 매 작품마다 현실적 사회 문제를 꼬집으며 체감의 법칙을 증명해 온 연상호 감독 두 번째 실사 영화다. 실사 데뷔작 ‘부산행’으로 국내 영화 시장에서 전무후무할 좀비 재난 장르를 개척했다. 흥행 면에서도 1156만명을 동원했다. 이번 ‘염력’ 역시 국내 상업 영화 시장에서 터부시 돼 오던 ‘초능력’을 소재로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등장한다. ‘염력’은 서툰 아버지의 이야기다.
 
 
 
영화 속 석헌(류승룡)도 그랬다. 아버지들은 서툴다.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을 모른다. 본인 기준에서 어색해서다. 가족들에게 특히 더 그렇다.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가족이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본인 스스로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아버지들은. ‘염력’의 석헌도 그랬다.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석헌은 가족들과 떨어져 지냈다. 빚보증을 잘못섰고, 가족을 떠나야만 했다고. 석헌은 자신을 원망하는 딸 루미(심은경)에게 “너와 엄마를 보호하려 그랬다”며 책임을 정당화 한다. 그 책임은 사회가 둘레를 처놓은 ‘가장’이란 이름의 무게다.
 
가족들도 사실 알고 있다. 루미도 아빠의 그랬던 모습을 기억한다. “아빠 노릇할 생각하지 마라”며 10여년 만에 만난 아빠 석헌의 배려와 걱정이 고깝다. 그럼에도 알고 있다. 마음으로 안다. 스스로도 어린 나이에 사회에 나와 엄마와 풍파를 해치며 견디고 있었다. 하지만 시스템이란 사회적 괴물이 그들을 나락으로 빠트렸다. 재개발이란 이름은 가진자의 우선과 가난자의 고통을 같은 선에 놓지도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루미도 석헌도 결국에는 10여년의 시간을 떨어져 지냈다. 그 시간의 길이 만큼 그들은 이질적이다.
 
영화 '염력' 스틸. 사진/NEW 제공
 
그럼에도 ‘염력’은 ‘회복’과 ‘화해’란 단어에 시선을 둔다. 가족이란 둘레는 끊을 수도 없고, 끊어서도 안되는 테두리다. 보이지 않는 폭력이든 눈에 보이는 폭력이든 그것에 짓밟히고 피해를 당해도 가족은 깨트릴 수 없는 단단함이다. ‘염력’은 초능력이란 소재를 차용해 사회적 불합리 그리고 불균형을 블랙 코미디의 외피로 완성해 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아빠’란 단어의 포괄적 의미를 제시한다. 그들의 서툰 사랑을.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 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물론 석헌의 철없음과 낙천성은 영화적 캐릭터로 콘셉트로 봐준다고 해도 그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지만.
 
아빠의 시각으로 본다면 ‘염력’은 공감을 얻을 수 있고, 또 우연히 얻게 된 ‘힘’을 통해 과시할 수 있는 판타지의 현실성을 너무도 이해가 되게 그려냈다. 결국에는 신석헌처럼, 아빠는 누구라도 가족에게만큼은 ‘히어로’이고 싶은 바람이 있지 않나.
 
비록 하늘을 날고 물건을 움직이고 강철 같은 육체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해도. 아빠들은 그래야 하고 또 그러길 바란다. 아빠 스스로가. 아빠들의 판타지가 어쩌면 ‘염력’의 신석헌을 통해 그려진 현실적 판타지의 귀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영화 '염력' 스틸. 사진/NEW 제공
 
물론 ‘염력’은 연상호 감독이 갖고 있는 만화적 콘티의 집합체이자 실사를 가장한 애니메이션에 가깝다. 캐릭터의 일부 과장된 행위와 설정, 다음 내용이 유추되는 도식적인 흐름, 그리고 초능력이란 소재 자체의 생경함(사실 기존 한국영화 속 초능력 소재의 소비 성향으로 볼때)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이 느끼는 이질감(할리우드 히어로에 익숙해진 관객의 기대치) 등을 종합하면 그렇다.
 
최근 유행하는 한 광고에서조차 ‘아빠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북극곰도 살리고…’ 등의 콘셉트가 차용될 정도다. 아빠는 히어로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아빠는 사회란 괴물과 싸우는 히어로이기도 하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이 같은 공식을 완성하기 위해 가족과의 화해를 위한 설정으로 ‘결손 가정’을 끌어 왔다. 청년 실업 문제에 대한 지적도 은연 중에 보인다. 약자 보호에 대한 시스템 오류를 지적한 ‘철거민 문제’는 굳이 우리 기억 속 ‘참사’를 언급하지 않아도 사회 곳곳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이야기다. 소시민이 힘을 갖게 된다면 과연 지금의 권력을 뛰어넘는 또 다른 힘을 발휘할까.
 
영화 '염력' 스틸. 사진/NEW 제공
 
그저 ‘동남아 순회’ 공연을 고민하면서 “여권도 없는데…라고 부끄러워하지만 행복한 고민에 빠진 석헌과 철거민들의 허황된 꿈의 설계. 석헌 당사자 조차 ‘초능력’이 아닌 ‘마술’이라고 인식하며 그것을 활용한 돈벌이 궁리를 하는 장면, 은행에서 제공하는 공짜 믹스커피를 두고 ‘절도’를 논하는 젊은 여자 은행원의 갑질. 꽤 의미 있는 현실의 부조리가 곳곳에 녹아 들어 있다. 연상호 감독의 기존 태도가 가볍지만 유지가 되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석헌이 하늘을 날고 염력을 이용해 집채만한 물건을 들어 올리고 용역들을 물리치는 장면 등은 우리가 알고 있는 히어로 장르의 카타르시스다.
 
의미를 갖고 본다면 무겁고 성에 차지 않을 히어로물일지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생각이라면 연상호 매직의 판타지는 이번에도 통할 듯 하다. 개봉은 오는 31일.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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