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인터뷰]'염력' 류승룡 “시높시스만 들었는데 '확' 땡겼다"
3년 만의 스크린 컴백…'연상호'란 이름 석자만으로 흥행 확신
"마블 히어로에 길들여진 대중에 '한국형 히어로' 인식 심어줄 것"
2018-01-25 13:55:29 2018-01-25 17:38:5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시나리오를 펼쳤다. 자신의 이름이 없었다. ‘강도1’이란 배역이 그의 것이었다. 별다른 대사도 없었다. 의미 없는 의성어 정도. 일반적으로 ‘무명’이라고 부르는 배우의 역할이다. 2004년 영화 ‘아는 여자’ 속 류승룡의 배역이었다. 하지만 14년 뒤 그는 대한민국 영화계를 움직이는 흥행 보증 수표가 됐다. 단 3편의 영화(‘명량’ ‘7번방의 선물’ ‘광해’)로 누적 관객 수 40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그가 출연했던 3편의 영화 중 한 편은 무조건 봤다는 의미다. ‘끄트머리’ 혹은 ‘주변’에서 완벽한 ‘중심’으로 옮겨 오는 데 1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길면 길지만 짧으면 짧을 수도 있다. 다소 늦은 나이에 데뷔를 했던 배우 류승룡은 그 시간을 어떻게 참고 견뎠을까. 개봉을 앞둔 영화 ‘염력’ 속 자신이 연기한 ‘신석헌’처럼 우리가 모르는 초능력을 이용해 그 시간의 흐름을 걸어온 것일까.
 
사진/프레인글로벌 제공
 
스크린에 돌아온 것은 3년 만이다. 2015년 ‘국민여동생’ 수지와 함께 했던 사극 ‘도리화가’ 이후 SF코미디 ‘염력’을 택했다. 사실 3년만의 복귀는 아니다. 류승룡은 “쉰 적은 없었다”며 웃었다.
 
25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상당히 여유로웠다. 배우로서는 분명 강인한 인상이다. 하지만 인간 류승룡은 언제나 진지하고 진중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적인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날 만난 그는 조금 더 여유로운 모습이 더해져 보였다.
 
“글쎄요, 좀 내려놨다고 해야 하나. 잠시 짬이 있었죠. 그때 들었던 생각이 ‘내가 너무 앞만 보고 미친 듯이 달리지 않았나’란 걸 느끼게 됐어요. 내 스스로 뒤를 돌아보는 값진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도 그때 그 친구들과 그런 작은(?) 일이 없었다면. 글쎄요(웃음). 저에겐 의미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전 그대로입니다.”
 
류승룡은 과거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난타’ 초기 멤버 김원해와 이철민이 방송 중 언급한 내용으로 대중들에게 뜻하지 않은 질타를 받기도 했다. ‘지금은 자주 못본다’ ‘전화 번호가 바뀌었는데 알려주지 않더라’ 등의 발언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오해였다. 해명할 타이밍이나 기회를 말하는 것도 좀 ‘남사스러웠나’ 보다. 
 
사진/프레인글로벌 제공
 
“그게 뭐 해명할 일인가요(웃음). 두 사람과는 그날 바로 다 풀었어요. 이건 해명이라고 하기에도 참(웃음). 예능에서 비롯된 오해라고 생각이 들어요. 별 일도 아닌데 너무 일이 커졌던 상황이었고. 아무튼 지금도 제가 학교 동기들 회장을 맡고 있고 자주는 아니지만 산에도 같이 가고 즐겁게 잘 지내고 있어요.”
 
별일 아닌 류승룡에 대한 오해를 먼저 풀고 지나가자 그는 곧바로 ‘염력’ 속 신석헌처럼 유쾌한 ‘류승룡’으로 돌아왔다. 진중하지만 유쾌한 유머가 살아 있는 그의 모습은 영화계나 그와 만남이 잦았던 기자들에게도 유명하다. ‘염력’과 그의 이런 모습은 찰떡 궁합이나 다름 없어 보였다.
 
“2016년 4월이었죠.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으로 칸 영화제에 가기 전 잠시 만났어요. 시높시스만 들었는데도 흥미가 확 땡겼죠. 그때 구두로 '하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사실 이게 완전 만화 같은 내용이잖아요. ‘이게 될까’란 생각도 들었지만 확신이 있었던 게 ‘연상호’란 이름 석자 때문이었요. 국내에서 전무후무했던 좀비 재난 영화를 만들어 성공시킨 사람이잖아요. 그리고 타이즈 입고 휙휙 날라다니는 히어로가 아닌 점도 ‘무조건 해야겠다’는 것에 대한 두 번째 이유였죠.”
 
연 감독의 애니메이션 ‘서울역’에 목소리 출연을 했던 인연으로 류승룡의 확신은 분명했다. 또 히어로에 대한 색다른 해석이 와닿는 점이 많았다고. 마블 히어로에 길들여 진 대중들에게 이른바 ‘한국형 히어로’에 대한 확신을 충분히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스토리에 대한 간결함도 끌리는 매력으로 충분했다.
 
사진/프레인글로벌 제공
 
“히어로 변신을 할 때마다 쫄쫄이 타이즈로 옷 안갈아 입어도 되는 점이 좋았죠(웃음). 농담 아니라 진담입니다 하하하. 우리가 히어로라고 하면 어떤 고정 관념이 있잖아요. 그걸 깬 것이 연상호란 사람이라 믿음이 갔죠. 그림을 그리시던 분이라 상상의 폭이 굉장히 넓으세요. 그리고 확실하시죠. 거의 모든 장면이 99% 콘티 안에서 이뤄졌어요. 그리고 감독님이 테이크를 많이 안가세요(웃음). 난 그게 좋아. 하하하.”
 
영화를 촬영하면서 관객들은 절대 모르는 촬영 비하인드 스토리도 공개했다. ‘영화 흥행에 마이너스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그는 너털 웃음을 지으며 ‘알고 봐도 재미있을 것이다’고 다시 웃었다. 대부분의 장면이 와이어를 매달고 찍고 우리가 익히 할고 있는 컴퓨트그래픽(CG)를 통해 이뤄졌다. 하지만 일부 장면은 완벽한 아날로그 방식이었다고.
 
“하하하. 지금 생각해도 웃기네. 석헌이 초능력으로 멀리 떨어진 라이터를 움직여 손에 잡는 장면이 있어요. 그게 어떤 특수 촬영을 한 게 아니에요. 카메라 앵글 밖에서 스태프가 제 손에 던져 주는 걸 제가 초능력을 쓴 것 처럼 잡는 모습이에요. 그거 찍는데만 한 30테이크 이상 갔었죠(웃음). 또 석헌이 옥상에서 초능력을 쓸 때 몸이 서서히 뜨는 장면이 있어요. 그거 제가 평행봉 같은 데 매달려서 박자 맞춰서 발 들어 올리는 거에요(웃음).”
 
이런 방식은 연 감독의 연출 스타일과도 맞닿았다. 테이크를 최소화 시키고 감정선을 넘어가게 하지 않으며 연출자가 정한 둘레(콘티)안으로 들어오면 ‘OK’를 내리는 방식. 사실 좀 대충대충 넘어가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함께 작업한 류승룡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사진/프레인글로벌 제공
 
“저런 아날로그 촬영도 사실 감독님이 생각하신 그림이었다고 봐요. 함께 작업한 감독님은 굉장히 관대하신 분이에요. 콘티 안에서 모든 걸 판단하세요. 다시 말해 그 안에 들어왔다고 판단하시면 그냥 거의 OK에요. 다만 확실하신 것도 있어요. 질문을 아주 싫어하세요. 그림 그리셨던 분이잖아요(웃음). 그림은 질문을 안한다고. 하하하. 그리고 신파를 병적으로 싫어하세요.”
 
연 감독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날 줄 몰랐다. 연 감독 역시 워낙 유쾌한 성격이기에 촬영장 분위기는 그 어느때보다 밝았다고. 류승룡도 ‘염력’ 촬영으로 힐링을 받은 느낌이었단다. 물론 단 한 번 연 감독이 깜짝 놀라며 류승룡에게 손사래를 친 적은 있었다고. 촬영 직전 한 행사장에서 우연히 연 감독이 류승룡과 만난 상황이었다.
 
“화를 특별히 내시는 분이 아닌데 딱 한 번 깜짝 놀라시면서 ‘이러면 안 된다’고 손사래를 막 치셨죠. 촬영 전인데, 무슨 행사장이었어요. 그때 제가 수트를 입고 참석했는데 저와 만나시고는 ‘아니 이러면 안되요. 이건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에요’라면서 정색을 하셨어요. 하하하. 그 이후에 정말 절 놔버렸죠. 12kg 정도 찌웠나. 먹을 거 다 먹고 정말 즐기면서 찌웠죠. 하하하.”
 
2년 전 촬영이 끝난 화제작 ‘7년의 밤’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보다 먼저 ‘염력’이 올해 자신의 첫 번째 영화로 선보이게 된다. 개봉을 하면 두 아들과 꼭 이 영화를 볼 생각에 그는 입가에 웃음부터 머금었다.
 
사진/프레인글로벌 제공
 
“큰 아들이 14세, 둘째 아들이 10세인데 아마 이 영화를 아빠 출연작 가운데 가장 좋아할 듯 해요. 칼 맞고 죽고(명량) 화살 맞고 죽고(최종병기 활), 흠씬 두들겨 맞고(7번방의 선물), 그냥 끔찍하고(손님)…애들과 함께 볼 만한 출연작이 없었는데 이건 즐겁게 볼 듯 해요. 기대가 됩니다. 두 아들의 반응이.”
 
마지막으로 그는 ‘염력’ 속편 출연 생각을 묻는 질문에 “무조건 한다. 제작만 된다면 무조건 한다”며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웠다.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