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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 그들의 깊고 섬뜩한 존재감은 '주연'급
김윤석·윤계상·최귀화·김민재…악하지만 시원한 추진력 '매력'
2018-01-29 17:22:12 2018-01-29 17:34:13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권선징악’이란 개념에서 보자면 악역은 언제나 응징의 대상이었다. 나쁘고 없어져야 할 대상의 존재는 대중들에게 반대급부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죗값을 받을 때의 통쾌함이 첫 번째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들의 악행 속에서 대중들은 색다른 쾌감을 느낀다. 퍽퍽한 선역의 좌충우돌 보단 시원한 악행 속에서 느껴지는 뻥뚫린 전달력. 물론 극 전체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넘치는 존재감도 주목도를 더한다. 최근에는 주인공 못지 않은 인기와 묵직함을 더하는 악역들이 대세다.
 
영화 '1987'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1987’ 김윤석 ‘존재 갑(甲)’
악역 계보의 정점에 이 배우를 빼놓고는 얘기가 안 된다. ‘타짜’ 속 ‘아귀’란 희대의 악역을 소화한 김윤석이다. ‘아귀’가 곧 김윤석이고, 김윤석이 곧 아귀였다. 배우 자체가 뿜어내는 아우라와 연기톤 그리고 작품마다 본인의 색깔을 달리하는 그의 내공은 단순한 악역의 테두리안에서 해석하기는 불가능하다.
 
최근 7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는 ‘1987’에서의 김윤석은 더욱 막강하다. 실존 인물을 연기한 그의 모습은 ‘실제 그랬을 것 같다’가 아닌 ‘그랬었구나’란 설득력을 보이며 관객들을 섬뜩하게 만든다.
 
희대의 망언으로 불리는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란 대사를 소화할 때의 모습은 시대가 만들어 낸 괴물이자 이념이 빚어낸 악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당분간 악역계의 김윤석을 능가할 배우가 나올 수 있을까. 아니 그의 연기에선 악역만이 담고 있는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김윤석표 악역의 색깔은 그래서 매우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 '범죄도시'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 윤계상, ‘로맨틱 가이’→‘너 내가 누군지 아니?’ 
윤계상은 국민 아이돌 ‘지오디’ 멤버에서 배우로 전향했다. 그저 아이돌의 배우 전업 수준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다. ‘지오디’ 활동 당시 이미지를 살려 말랑말랑한 로맨틱 멜로-코미디 장르에서 발군의 실력을 과시했다.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출연해 온 그의 출연작 대부분은 ‘윤계상표 멜로’ ‘윤계상표 로코’로 정의됐다.
 
물론 그에게도 변곡점은 존재한다. 2011년 김기덕 감독 제작 영화 ‘풍산개’를 통해 이미지 변신에 도전했다. 러닝타임 동안 대사가 단 한 마디도 없는 캐릭터였다. 김기덕 감독 사단의 영화인 만큼 내용 역시 파격적이다. 눈빛 만으로 그 파격을 연기해야 했다. 영화 내내 그가 눈빛으로 선보인 감정의 온도는 빙점 이하부터 물이 펄펄 끓을 100도씨까지 튀어 올랐다.
 
눈빛 만으로, 몸짓 만으로 감정의 스펙트럼을 전달한 ‘풍산개’ 속 윤계상의 연기는 찬사를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어찌보면 그의 당시 연기는 ‘범죄도시’ 속 희대의 악역 ‘장첸’을 만들어 내기 위한 예고였을 듯 하다.
 
감정이 없는 듯한 무표정, 그리고 말투, 느릿하지만 재빠른 몸놀림과 판단력, 살인을 놀이처럼 즐기는 잔인함. 윤계상은 ‘장첸’이란 캐릭터를 통해 악역의 강렬함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당분간 장첸을 뛰어 넘을 임팩트의 악역은 불가능할 듯 하다.
 
'나쁜녀석들 악의 도시' 캡처. 사진/OCN 제공
 
◆ 최귀화-김민재, 악역계의 신흥 '쌍두마차'
두 사람 모두 무명의 시절이 길었다. 험악한 인상과 툭툭 던지는 대사 전달 방식도 공통된다. 어찌보면 악역 캐릭터로서 피지컬 자체는 완성형에 가까운 모습이다. 무명이었단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악역은 대중들에게 생소함을 기반으로 해야한다. 이미지적으로 생경한 모습이 바로 악역이란 캐릭터의 강렬함을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두 사람은 드라마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에서 악역 케미로 발군의 기량을 과시 중이다. 비리 형사 황민갑(김민재)과 동방파 두목 하상모(최귀화)로 열연 중이다. 두 사람은 극중 비리 커넥션을 함께하면서 관객들의 분노 유발을 담당하고 있다. 같은 악역이지만 색깔은 다르다. 김민재가 생계형을 표방한 섬뜩한 악역이라면, 최귀화는 조직폭력배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하는 악역이다.
 
김민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서슴치 않는다. 태연한 얼굴로 사건을 조작하며 비리를 비리로 덮는 적폐 중에 적폐다. 반면 최귀화는 바닥까지 떨어진 조직 재건을 위해 김민재의 수하 노릇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극중 섬뜩한 악인들의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악행을 서슴치 않는 모습을 선보인다. 생존과 이익으로 양분된 세계에서 그들의 선택은 어쩌면 ‘어쩔 수 없는’ 그것일 수도 있을 듯하다.
 
시청자들이 두 사람의 모습에 분노를 자아내면서도 본방 사수에 집중하는 이유도 바로 이들 두 사람이 펼치는 악행의 끝이 바로 드라마의 동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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