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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개정, 백화점·마트만 배불려"…전통시장·도매상들 '한숨'
고급형 실속상품 쏠림 심화로 상대적 박탈감…과일업체는 10만원 상향에 되레 타격
2018-02-04 18:32:05 2018-02-04 18:32:05
[뉴스토마토 김나볏·이우찬 기자] 부정청탁 금지법(김영란법) 개정 이후 첫 명절인 이번 설을 앞두고 백화점과 대형유통업체들의 설 선물판매가 늘면서 농축수산가의 숨통이 일부 트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전통시장이나 농축수산물 도소매시장의 소상인들은 오히려 상대적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고급 포장 중심의 고급형 실속상품으로의 쏠림현상이 되려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일과 4일 찾은 전통시장과 농축수산물 도소매시장은 설 명절을 불과 10여일 앞뒀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전반적으로 한산했다. 국내 주요 백화점들이 이번 설 명절 선물세트 전년대비 매출이 이달 초 기준으로 전년대비 25~35%가량 신장했다고 밝힌 것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지난달 17일부터 시행된 김영란법 개정안으로 국내 농축수산물의 선물가격 상한선이 10만원으로 높아졌지만, 손님들이 선물세트 구성과 포장에 강점이 있는 대형마트나 백화점으로 몰리고 있다는 게 시장 상인들의 평가다.
 
설 명절 대목을 앞두고도 인적이 드문 마포농수산물시장의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3일 저녁 한파까지 겹친 가운데 마포농수산물시장에는 인적조차 드물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우 축산물 판매 상인들은 제대로 된 한우 선물세트는 20만원을 넘기 십상이라 선물한도 10만원 상향 조정에 대해 대형유통사만 좋은 일 시키는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축산물을 파는 정우축산의 한 상인은 "김영란법 시행 전하고 비교해보면 선물세트 매출이 절반 가량 줄어들었다. 그때 그때 필요한 고기를 사가는 사람만 있고 선물세트를 미리 주문하는 손님은 없어졌다"고 말했다. 김영란법 개정에 따른 긍정적 영향이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명절 대목에는 특히 일손이 바쁘기 때문에 선물세트 대량 판매 중심으로 가야 하는데 도소매시장의 경우 김영란법 개정에 따라 10만원짜리 축산물 선물세트를 구성해봐야 포장비만 더 들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 상인은 "경기가 예전같지 않고 또 요즘엔 집안에서 명절에 잔치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외국으로 놀러들 가지 않나. 김영란법 외에도 이런 저런 요인이 겹쳐있다"고 했다.
 
인근 다른 축산물 가게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대도미트에서 일하는 한 상인역시 "선물세트 구매는 확실히 줄었다. 한도가 있다는 것 자체가 축산 재래시장에는 불리하다. 지갑을 잘 안 연다"고 토로했다. 공산품과 생선 등 다양한 품목대로 가격대를 유연하게 맞추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와 상황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청과시장의 경우엔 10만원 상향에 심지어 직격타를 맞은 모습이었다. 시장에선 과일 선물세트가 보통 5만원 아래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같은 시장에서 청과류를 파는 햇님청과의 한 상인의 경우 "김영란법 개정이 재래시장에는 더 손해"라고 잘라 말했다. "10만원대가 되면 가격이 애매해 백화점 쪽으로 오히려 많이 빠진다"는 지적이다. 이 상인은 "이맘 때면 들썩여야 하는데 이곳 다른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손님들 많이 놓쳤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포장이 아무래도 다르니 백화점에 가서 사겠다고 하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기가 느껴지기는 다른 시장도 마찬가지였다. 둔촌재래시장에서 건강식품을 팔고 있는 한 상인은 "김영란법 개정에 따른 수혜는 재래시장에는 해당이 안된다. 홍삼, 수삼 선물세트 자체를 이곳에서 찾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 상인은 "서울시 공무원들도 자주 와서 장사 현황에 대해 물어보는데 지금 여기 시장을 봐라. 명절을 앞뒀는데도 손님들 자체가 별로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둔촌재래시장의 경우 인근의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이주로 5930세대, 2만명 정도가 빠져나가면서 직격타를 맞은 상황이다. 이 상인은 "손님들도 당분간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임대료는 계속 오름세다. 여기 재래시장 점포 하나당 임대료가 현재 월 200만원 수준이라 고충이 크다"고 털어놨다.
 
설 명절을 앞둔 둔촌재래시장의 모습. 대형마트와 백화점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주변 아파트 재건축에 따른 주민 이주 이슈까지 겹치면서 거리가 한산한 모습이다. 사진/뉴스토마토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일각에선 김영란법 적용을 피하려는 꼼수도 종종 벌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잠실 새마을전통시장에서 청과류를 취급하는 한 상인은 "15만원짜리 2세트를 10만원짜리 세 개로 분할 결제하는 등 법의 헛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다. 한 마디로 걸리는 사람이 재수 없는 것"이라고 폄하했다. 
 
내수경기가 예전같지 않은 상황에서 임대료와 더불어 최근 물가까지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이번 설 명절에도 소상인들의 고충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잠실 새마을전통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새마을생선의 한 상인은 "2000년대에 1000원하던 오징어가 지금은 4000원이다. 김영란법도 문제지만 물가까지오르고 있어 더욱 걱정"이라며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김나볏·이우찬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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