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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체리피커' 주의보
제도 악용 방지 위해 사후점검 뒤따라야
향후 위탁운용사 선정에 의미 있게 반영 필요
2018-02-05 08:00:00 2018-02-05 08:00:00
체리피커(Cherry Picker)라는 용어가 있다. 접시에 담긴 달콤한 체리와 신포도 중 ‘체리만 골라먹는 사람’으로, 통상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는 구매하지 않거나 지극히 최소화하면서 기업이 제공하는 다양한 부가혜택이나 서비스만 최대한 챙기는 소비자를 말한다. 즉 ‘자기 실속만 챙기는 소비자’다. 기업 입장에서는 얄밉고 골치 아프지만, 기업의 상술에 속지 않고 오히려 이를 역이용하는 ‘매우 스마트한 소비자’이기도 하다.
 
체리피커 대응책으로 카드사들은 기존 혜택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버리기도 한다. 체리피커의 소비방식이 장기적으로는 일반 소비자가 누려야 할 이익까지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체리피커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도 달갑지만은 않다.
 
체리피커는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제품과 서비스 소비자로서의 체리피커는 도덕적으로 비난하기 힘든 지점이 있다. 하지만 어떤 산업의 육성과 건강한 생태계 조성이 달려 있거나 특히 공적자금이 집행되는 사업에서의 체리피커는 부정한 경쟁(unfair competition)과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더 나아가 생태계 파괴라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1990년대 후반 1차 벤처 붐 시절, 정부는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당시 벤처지원금만 노리고 기술개발은 소홀했던 체리피커들이 많았고, 이는 2000년대 초반 벤처투자와 창업의욕을 위축시키는 요인 중 하나였다.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와 관련해 이러한 체리피킹(Cherry Picking)적 행태가 발견된 바 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거나 참여의향서를 제출한 기관들을 분석한 결과, 15개 기관(2018.1.30일 기준)이 그들이 약속한 기한 내에 코드 도입을 이행하지 않았다. 더욱 큰 문제는 이중 일부 기관이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의향서 제출로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의 위탁운용사 선정 과정에서 우대평점까지 받았으나, 최소 2개월, 최대 6개월이 넘도록 도입 이행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체리만 따먹고 책임 이행은 소홀했다. PE펀드의 와이제이에이인베스트먼트, VC펀드의 컴퍼니케이파트너스와 티에스인베스트먼트가 대표적이다. 언론 보도 후 사흘 만에 세 기관은 코드에 가입했다. 우대평점을 받은 웨일인베스트먼트는 올해 1월말이 도입 약속 기한이지만 현재 이를 넘긴 상태다.
 
세 기관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완료했다는 점에 반갑기는 하지만 찜찜한 구석도 있다.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인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이 뚝딱할 만큼 간단한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의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행해야 할 세부원칙과 기준이 있는데, 수탁자 책임 정책, 이해상충 방지정책에 대한 제정과 공개, 수탁자책임 활동 수행 내부지침 마련, 의결권행사 내역과 사유공개, 수탁자책임 활동의 주기적 공개, 수탁자책임 효과적 이행 위한 역량과 전문성 확보라는 7대 원칙에 대한 세부 기준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부 사정 때문에 지연되었을 뿐 그동안 준비해 왔을 수도 있다.
 
현재(2018.2.3일)까지 코드 도입 약속 미이행 기관 13개 중 10개가 PE와 VC 전문운용사다. 이 기관들은 산업은행의 스튜어드십 코드 우대평점을 받고자 코드 참여의향서를 제출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체리피킹 의구심을 여전히 지울 수 없다. 체리피킹 의도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의향서를 제출했다고 하더라도 공적인 약속을 수개월 동안 지키지 않는 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소홀과도 같다. 공적 약속 불이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기관에 공적자금 위탁운용은 그 위험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체리피커 양산을 방지하려면 정책과 제도를 계획하고 시행하는 주체의 세심함이 필요하다. 산업은행은 자본시장 발전 및 선진화를 위한 지원조치의 하나로 스튜어드십 코드에 우대평점을 부여했다. 국내 대표적인 정책금융기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PE와 VC 전문운용사들에게 스튜어드십 코드의 존재를 알리고 참여하게 만든 마중물 역할을 가장 선도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실제로 산업은행의 스튜어드십 코드 우대평점 도입 정책으로 현재 36개 PE와 VC 전문운용사들이 코드를 도입(10개)했거나 도입 의향서를 제출(26개)했다. 현재 총 68개 기관이 코드를 도입(24개)했거나 도입의향서를 제출(44개)했으니, 산업은행이 절반 이상(53%)의 기관을 스튜어드십 코드로 이끌었다.
다만 우대평점을 받아 위탁운용사로 선정된 기관들의 사후 이행 여부 점검을 사업공고에 담지 않아 체리피커를 조장할 뻔했다는 점에서 세심함이 부족했다. 수천억원의 정책자금 집행은 끝까지 공정해야 한다. 산업은행은 위탁운용사로 선정된 기관 말고도 나머지 PE와 VC 전문운용사에게도 코드 도입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강한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
 
산업은행의 사례는 향후 국민연금 등 공적연기금이나 공제회 등이 위탁운용사 선정시 스튜어드십 코드 우대평점 정책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도를 악용하는 체리피커를 막기 위해서는 사후적 점검과 이를 향후 위탁운용사 선정에 의미 있게 반영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 제도의 철학과 목적, 그리고 활성화라는 측면을 고려해 코드의 이행 수준도 평가하는 등 질적인 평가항목도 만들어 반영해야 한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기업의 정기주주총회가 있는 올해 1분기까지 27개 기관이 스튜어드십 코드 가입을 약속했다. 주총에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자산운용사와 보험사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핵심은 ‘책임’이다. 때문에 체리피커가 설 땅을 주지 않아야 한다.
 
산업은행의 스튜어드십 코드 우대평점 도입 정책으로 현재 36개 PE와 VC 전문운용사들이 코드를 도입했거나 도입 의향서를 제출했다. 사진은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점 전경. 사진/뉴시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argos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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