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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세상읽기)만지지 마라
2018-02-09 06:00:00 2018-02-09 06:00:00
2013년 4월 보스턴 국제마라톤 대회. 결승선 바로 앞에서 압력밥솥 폭탄이 터졌다. 참가자들과 관중들이 크게 다쳤다. 이때 대회에 참가한 남편을 기다리던 한 여인은 다리를 잃었다. 그녀의 직업은 댄서. 더 이상 춤을 추지 못하게 된 그녀는 자기 인생도 이제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이듬해 3월 미국에서 열린 테드(TED) 강연에 그녀가 등장하여 춤을 추었다. 그녀에게는 로봇 다리가 장착되어 있었다. 로봇 다리를 만든 사람은 MIT 공과대학의 휴 허 교수. 그 자신도 로봇 다리 두 개를 장착한 사람이다. 암벽등반 도중 조난을 당하여 두 다리를 절단했던 것. 많은 사람들이 강연을 보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기술이 인간을 얼마나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꿈이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로봇 태권 V와 마징가 Z를 보고 자란 세대들은 한 번쯤은 로봇을 조종하는 조종사가 되는 꿈을 꾸지 않았던가. 조금 더 나아가 스스로 무쇠팔과 무쇠다리를 장착한 로봇이 되고 싶은 친구들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른들은 말도 안 되는 공상이라고 야단쳤다. 그런데 변화는 도둑처럼 찾아왔다. 이미 사이보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젠 로봇 팔과 로봇 다리는 더 이상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지 않는다. 너무 흔해서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전 세계 수만 명이 무쇠팔과 무쇠다리를 장착하고 있는 시대다. 심지어 2016년에는 로봇 보조기구를 착용한 사람들만 참여하여 기량을 겨루는 육상대회인 사이배슬론(cybathlon)이 열렸을 정도다. 이 대회에는 전 세계 65개 국이 참가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세브란스 재활병원이 팀을 구성해 참가했다.
 
로봇 팔다리는 점차 널리 보급될 것이다. 우리 수명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들은 원래 아무 이야기나 하면서 말잔치를 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의 경우 수명이 100~120세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은 흔하다. 지금 40~50대 독자들도 교통사고만 당하지 않으면 100살까지는 살 거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수명이 늘어난다고 해서 치아와 팔다리마저 그때까지 튼튼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문제다. 필요가 있으면 기술도 생기는 법. 치아 임플란트와 로봇 팔다리가 그 대안이 될 것이다. 오죽하면 일본에서는 이미 2년 전에 로봇 팔다리에 의료보험을 적용할지 여부를 토론했겠는가.
 
로봇 팔이라고 해서 동작이 굼뜨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로봇 팔은 보통 사람의 팔보다 더 빠르고 정교하게 신발 끈을 묶는다. 로봇 팔이 정교하게 발전하면서 이제는 로봇 손에 촉각을 비롯한 감각을 부여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사고로 손을 잃은 남자에게 로봇 손을 장착시켰지만 완전히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여자 친구를 만져도 손에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그 로봇 손에 감각을 부여하자 그는 플라스틱, 고무, 과일, 사람의 피부를 완벽하게 구분하게 되었다. 여자 친구의 피부를 느낄 수 있는 로봇 손이라니 굉장하지 않은가.
 
만지는 것은 중요하다. 촉각이 주는 쾌감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지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만지면 되는지 안 되는지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만지지 마세요'라는 팻말이 있는 것이다. 간단하다. '만지지 마세요'라는 팻말이 있으면 만지지 말아야 한다. '만지지 마세요'라는 팻말이 없는 곳은 서울시립과학관뿐이다. 여기서는 모든 전시물을 만져도 된다.
 
남의 개와 고양이도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된다. 개들도 성격이 다 달라서 모르는 사람이 만지면 스트레스 받는다. 하지만 개는 말을 하지 못하고 거절하지 못한다. 목줄에 노란 리본이 달려 있으면 제발 좀 만지지 말라는 뜻이다.
 
누구나 애인과 배우자를 만지고 싶고 자기 자식을 쓰다듬으면서 애정을 확인하고 증폭시킨다. 하지만 아무나 만지면 안 된다. 내가 좋다고 만지면 안 된다. 만지지 말라고 하면 만지면 안 된다. '만지지 마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만지면 안 된다.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애인이나 아내가 아니면 절대 만지지 말자. 애인이나 아내라도 만지지 말라면 만지지 말자.
 
SF 작가 윌리암 깁슨의 말처럼 "미래는 이미 여기에 있다. 단지 골고루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누구나 필요하면 로봇 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로봇 손도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된다. 함부로 만지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면 로봇 팔에 뺨이 날아갈 수도 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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