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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40일만에 정상회담 제안…김정은의 ‘광속’ 행보
“민족사 사변적 해로 빛내야” 천명후 일촉즉발 한반도정세 급반전…"핵완성 자신감 바탕 평화공존 공세"
2018-02-11 18:02:38 2018-02-11 18:45:10
[뉴스토마토 차현정 기자]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하는 파격적인 카드를 내놨다. 10일 자신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통해 문 대통령에게 초청 의사가 담긴 친서를 전달하면서다.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낸 지 불과 40여일 만이다. 사실상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연일 위험한 시나리오만 써내려가던 한반도에서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잇단 도발로 일촉즉발 상황에 놓였던 한반도 정세가 급반전 분위기를 맞게 된 건 새해 첫날 있었던 김 위원장의 신년사 이후다. 김 위원장은 1월1일 신년사에서 “동결 상태에 있는 북남 관계를 개선해 뜻 깊은 올해를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평창 동계올림픽은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다.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전했고 청와대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이 그가 발표한 신년사와 맥이 닿는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평화공존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라며 “핵 개발 완료로 핵보유국 지위를 가진 만큼 여유도 생겼으니 우리와 핵 프로그램 동결 수준의 논의로 진전시킬 자세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위원장이 김 부부장을 통해 문 대통령을 이른 시일 내 평양으로 초청하고 싶다고 전한 건 파격적이라는 진단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핵 무력완성 자신감을 배경으로 대남관계 개선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며 “지금까지 보여 왔던 김 위원장의 모습과는 180도 다른 것으로, 올림픽 이후 남북 협상 테이블에서는 지금까지 북한이 절대 받아들이려하지 않았던 핵과 미사일 논의도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남북 정상의 화해무드가 조성되자 남북 간 일정에 탄력이 붙었다. 대화 국면 전개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지난 연말까지 각종 대화 제의에 무응답으로 일관해 왔던 것과 대조적이다.
 
북한은 1월2일 통일부가 북한에 고위급회담을 제안한지 사흘 만인 5일회담 제안을 수용했다. 그 사이 김 위원장의 지시로 판문점 연락사무소가 개통했다. 고위급회담 제안 일주일 만인 9일에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북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만났다. 약 2년여 만에 마주 앉은 남북이 공동보도문을 이끌어내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11시간여다. 당초 의미 있는 합의안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석을 사실상 확정지은 날이기도 하다.
 
평창올림픽 축하공연을 위한 북한 예술단 실무접촉 일정도 신속히 이뤄졌다. 지난달 15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실무접촉에는 현송월 모란봉악단장이 북측 대표단으로 참석해 이목을 끌었다. 지난달 17일에는 남북 평창 실무회담을 하고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제반사항을 논의했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북측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 공동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등 11개항에 합의했다.
 
한반도의 ‘평창’ 일정은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졌다. 지난 달 21일에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등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 7명이 방남했다. 이들 일행은 강릉아트센터 등 공연후보지를 둘러보고, 이튿날 서울국립극장 등에서의 일정을 소화했다. 이날 일정은 2014년 이후 3년3개월여 만에 북측 인사가 판문점을 벗어나 남측 땅을 직접 밟은 날로도 기록된다. 남북은 지난달 25일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 참가하는 북측 선수단의 강릉 진천선수촌 입촌을 시작으로 남북 단일팀의 공동 일정을 시작했다. 이후 북한 마식령스키장에서 1박2일 일정의 훈련 등을 함께 소화하며 평창올림픽 출전을 준비했다.
 
이들은 지난 평창올림픽 개회식에서 전 세계의 눈이 집중된 가운데 한반도기 깃발 아래 동시 입장하며 역사적인 순간을 남겼다. 현송월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은 16년 만에 열린 방남 공연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건군 70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주석단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차현정 기자 ckc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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