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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투정책 손놓은 당국)②"발행어음 독점, 한투 달리는데…" 한숨만 쉬는 초대형IB들
한투, 관련 이익만 400억…인가지연 증권사 "아무것도 못해"
2018-02-20 08:00:00 2018-02-20 08:00:00
[뉴스토마토 전보규 기자] "올림픽에 출전시켜준다고 해서 비싼 장비 구입하고 훈련도 열심히 해서 평창까지 갔는데 집에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하면 억울하지 않겠어요? 경기에 뛰는 선수가 부러운 것도 당연하고요."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지정됐지만 금융당국으로부터 단기금융업(발행 어음 사업) 인가를 받지 못한 증권사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발행 어음 사업을 위해 자본을 늘리고 조직 정비까지 마쳤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다. 유일하게 발행 어음 사업이 허용된 한국투자증권이 관련 부문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단기금융업 인가 지연의 아쉬움은 더욱 진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투자증권, '초대형 IB 핵심' 발행 어음 독주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정례회의를 열고 한국투자증권에 대한 단기금융업(발행 어음 사업) 인가를 내줬다. 미래에셋대우와 KB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도 초대형 IB 요건을 갖추고 단기금융업 인가를 신청했지만 금융당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지 못했다.
 
발행 어음 사업을 할 수 있는 단기금융업 인가는 초대형 IB의 핵심이다. 절차가 상대적으로 복잡한 회사채 등 다른 수단보다 자금을 수월하게 조달해 기업대출과 비상장 지분투자 등 기업금융에 활용할 수 있어서다.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으면 자기자본의 200% 한도에서 만기 1년 이내의 어음 발행이 가능하다.
 
한국투자증권은 금융당국이 만들어 놓은 발행 어음 시장의 독점 구조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1조원을 포함해 현재까지 1조4000억원가량의 어음을 발행했다. 올해 연말까지 4조~5조원(누적기준)까지 규모로 늘릴 예정이다. 이를 업계에서 추정하는 이익률 1%로 계산하면 지난해 11월부터 석 달 새 거둔 이익은 140억원이고 올해 연간으로는 400억원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초대형 IB 5개사의 지난해 평균 당기순이익(3771억원)의 10%를 넘는 규모다.
 
장효선 삼성증권 연구원은 "발행 어음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높아 오히려 한국투자증권이 성장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며 "관련 이익은 올해 400억원으로 예상되고 향후 조달금리 상승과 단기금융업 추가 인가에 따른 경쟁 상황을 고려해도 중장기적인 연간 이익 기여도는 600억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준비된 자본·인력은 놀리고…속만 까맣게"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다른 초대형 IB들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간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경쟁자가 없는 시장에서 1년에 수백억씩 번다는 게 꿈같은 상황"이라며 "한국투자증권이 발행 어음 시장에서 독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후발주자들의 어려움은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들의 더 큰 걱정은 발행 어음 시장 진입 시차가 회사 전체의 실적 격차를 벌리는 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장 연구원은 "발행 어음 업무는 다양한 기업들과 접점을 늘려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기회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며 "초기에 기업금융과 부동산금융 등 기존 비즈니스와 유사한 영역에 집중하겠지만 향후 비상장 지분투자와 중소기업 대출까지 이어지고 중장기적으로 고객 기반을 획기적으로 확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발행 어음 사업이 단순히 운용수익에서 조달비용을 제외한 차액만 챙기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 기반을 넓혀 수익원을 창출하는 효과를 낼 것이란 설명이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실적은 결국 얼마나 다양한 분야에서 효율적인 수익을 만들어내느냐가 관건인데 지금 같은 상황이면 이익 규모에서 이미 가장 앞서 있는 한국투자증권이 더 앞으로 치고 나가는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5244억원으로 증권사 중 가장 많았다. 미래에셋대우(5049억원)보다는 200억원 정도 차이가 났고 KB증권(2353억원), 삼성증권(2714억원)과 비교하면 두 배 가량이다.
 
수익성을 보여주는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2%대로 5~7% 수준인 다른 초대형 IB들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금융당국의 발행 어음 사업 인가 시기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은 증권사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발행 어음 사업을 언제부터 시작할 수 있을지 가늠이 되면 인력과 자원을 다른 쪽에 활용할 방법이라도 고민해볼 텐데 지금은 마냥 기다려야 하는 상태"라며 "수치로 잡히지는 않지만 사실상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발행 어음 사업 인가를 신청했던 증권사들은 이미 관련 부서나 팀을 신설하고 인력을 배치했지만 인가를 받지 못해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초대형 IB로 지정되고 발행 어음 사업을 하기 위해 늘린 수천억원의 자기자본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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