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노동계와 경영계가 현행 최저임금제도의 개선점을 찾기 위해 두 달여간 논의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해 끝내 결렬됐다. 정기상여금과 각종 수당을 최저임금에 포함할 지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노사가 한치도 양보하지 않아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를 토대로 최저임금제도를 개편할 전망이다.
최저임금위는 7일 "제도개선 소위원회를 열고 장시간 논의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최저임금위의 노동자·사용자·공익위원은 서울 모처에서 이날 새벽까지 논의를 이어갔다. 하지만 노사 위원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고, 최저임금위는 논의를 끝내기로 결정했다. 지난 1월부터 두 달여 동안 진행된 논의과정과 전문가 TF가 마련한 권고안을 고용부에 전달할 방침이다.
노동계와 경영계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 노사 위원은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고,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두고 이견이 컸다. 사용자위원은 편의점, 피시방, 주유소 등 8개 업종의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기상여금 외에 현물수당까지 최저임금에 산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사실상 매달 지급되는 모든 수당을 최저임금에 넣자는 게 경영계의 요구다.
노동자위원은 사용자위원의 요구가 저임금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최저임금제도 취지를 훼손한다고 맞섰다. 정기상여금과 각종 수당까지 최저임금에 넣을 경우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없어진다는 설명이다. 민주노총은 "사용자위원의 주장은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를 심각하게 훼손해, 제도를 명백하게 개악하는 것"이라며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파기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나치게 협소한 산입범위는 고임금 근로자의 임금까지 상승시켜 임금격차 해소에 부정적"이라며 "노동계의 반대로 제도개선이 지연돼 중소기업, 소상공인은 비합리적인 제도로 인한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고 노동계의 책임론을 내세웠다.
고용부가 최저임금 제도개선 작업을 맡게 되면서, 노동계와 경영계는 외곽에서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다. 산입범위는 현행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최저임금위 전문가 TF는 매달 지급되는 임금을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방안을 다수의견으로 정했다. 현재는 현물형태의 급여, 지급주기가 한달 이상인 수당, 복리후생 수당을 최저임금에 넣을 수 없다. 산입범위가 협소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적극적인 여론전을 통해 고용부를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제도개선 논의를 파행으로 이끈 노동계와 경영계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란은 올해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최저임금이 16.4%(금액 1060원) 올라 경영계가 부담을 느낀 게 원인이 됐다. 하지만 이전부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제기됐고, 노사 모두 필요성을 공감했다.
그럼에도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경영계는 현물 형태의 급여(기숙사비)까지 최저임금에 넣자고 사실상 무리수를 뒀다. 이 경우 노동시장의 사각지대에 있는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가 피해를 입게 된다. 노사 모두 기존 입장만 팽팽하게 고수하며, 논의를 파행으로 이끈 것이다.
노동계 안팎에 따르면 이 같은 혼란은 저임금 노동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최저임금위는 4월부터 8월초까지 2019년 최저임금 협상을 진행한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정해야 하는데, 핵심 쟁점에 대한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다. 시간도 촉박하다는 게 노사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다. 결국 최저임금 인상 동력마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노동부문의 한 전문가는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기존 입장에서 양보해 절충안을 정했을 때 내부적인 혼란을 고려해 정부에 넘긴 것"이라며 "복잡한 내부 상황을 감안해 (합의를 하는) 책임을 안 지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단축 회의를 열었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 최대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단축됨에 따라 현장에서 안착될 수 있게 후속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신규 채용, 임금 저하에 대한 노사의 부담을 줄일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일과 삶의 균형, 이른바 '워라밸'이 확산되도록 범국민 캠페인에 나선다.
지난달 20일 민주노총이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최저임금 개편 반대 집회를 열었다. 사진/뉴시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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