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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국내 조종사들 100시간 이상 비행 '비일비재'…주요국들은 엄격히 제한
국내 항공사 기장 3월 스케줄 입수…110시간 가까운 살인적 일정
2018-03-15 06:00:00 2018-03-15 06:00:00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미국 등 주요국들이 최대 비행시간을 최대 100시간 이내로 엄격히 제한하는 데 비해 국내에서는 100시간을 훌쩍 넘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종사와 승무원 인원은 부족한데 인력부족으로 비행스케줄이 몰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조종사의 과로와 피로 누적은 대형사고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뉴스토마토>는 국내 항공사 조종사의 3월 비행스케줄을 입수했다. 사진/뉴스토마토
 
14일 <뉴스토마토>는 국적 항공사 조종사 김모씨의 3월 비행스케줄을 입수했다. 이 스케줄은 이달 김씨가 실제 운항을 해야하는 노선으로, 이를 보면 조종사들이 왜 피로에 시달리는지 알 수 있다.
 
우선 기장인 김씨는 이달에만 110시간에 가까운 비행스케줄이 잡혔다. 실제 비행시간은 90시간을 좀 넘는데, 엑스트라(기내 좌석대기) 근무까지 합치면 100시간을 훌쩍 넘는다. 쇼업(공항 출두시간), 브리핑, 기내 대기시간까지 더 하면 근무시간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다. 비행상황에 따라 근무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기 때문이다.
 
최근 조종사 수가 줄어 스케줄이 예년보다 더 몰리는 추세다. 수요가 늘어 비행시간이 늘어나는 게 싫지만은 않다. 하지만 체력은 점점 고갈되고, 피로도는 전보다 높아졌다. 가족들 볼 시간도 줄어 안타깝다는 게 김씨의 얘기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크는데, 함께 할 시간은 갈 수록 줄고 있다고 그는 토로했다.
 
김씨는 이달만 미주노선 2개, 유럽노선이 1개 잡혀 있다. 아시아 지역의 도시는 5차례 이상을 왕복한다. 비행스케줄을 얼핏보면, 일주일 중 두세 번은 스케줄이 비어있다. 일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이달 이·착륙을 하는 횟수만 최소 19번에 달한다. 이·착륙을 할 때마다 비행준비를 해야 한다. 비행시간이 10시간 이상 소요되는 장거리 노선, 야간비행, 시차까지 고려하면 피로도가 높은 스케줄이라는 게 조종사들의 설명이다. 유럽은 10시간 안팎, 미주는 15시간 안팎의 시차가 난다.
 
김씨는 이달 3일부터 7일까지 미주노선을 다녀왔다. 지난 2일 저녁 공항으로 출발해 3일 새벽 비행을 시작했다. 하루 꼬박 비행기를 몰아, 오후 늦게 미주 지역에 도착했다. 이튿날 오후 다른 주로 출발했다. 6일 현지에서 출발해 7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4박5일의 일정 동안 온전하게 쉰 날은 하루에 불과했다. 김씨는 "3일 밤을 꼴딱 새 비몽사몽으로 지냈다"고 토로했다.
 
13일부터 15일까지는 유럽 노선을 왕복했다. 동유럽을 들렸다 서유럽 국가로 들어가는 노선이다. 이 기간 동안 24시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시차로 인해 숙면을 취하고 휴식을 취하기 어려웠다. 피로에 절은 채 비행기를 끌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출발할 때는 밤이었는데, 도착하고 보니 한국은 오후였다.
 
한달에 최소 3번 이 같은 강행군을 이어간다. 단거리인 아시아 지역 도시를 왕복해야 하는 일정도 있다. 김씨는 "이런 패턴의 비행을 하다 보면 내장기관이 나빠지고, 속이 메슥거린다"고 토로했다.
 
김씨의 비행시간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장의 평균 근무시간(2016년 기준)을 비교하면 40시간 이상 많은 수준이다. 대기시간과 비행시간을 합치면 150여 시간을 근무한다. 주 5일 노동자의 월 근무시간에는 못 미치지만 불규칙한 근무스케줄, 장시간 비행, 시차 등을 고려하면 상당한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게 조종사 노조의 설명이다.
 
본지가 입수해 보도한 '한국형 피로관리시스템(FRMS) 구축 연구용역(국토부)' 보고서에 따르면 조종사 2명 중 1명(52.8%) 꼴로 수면무호흡증을 앓고 있다. 장거리 노선인 미주, 유럽을 오가는 조종사의 경우 비행근무 후 수면시간이 줄어들고, 반응속도도 느려진다. 이 같은 근무가 계속되면서 만성피로, 수면무호흡증을 앓게 된다는 게 조종사 노조의 공통된 설명이다.
 
조종사들은 최대 비행시간 기준이 외국보다 긴 점을 문제로 꼽았다. 우리나라는 연속되는 28일 근무시 최대 승무시간이 120시간(조종사 3~4명 기준)이다. 조종사 2명일 경우는 100시간으로 줄어드는데, 장거리 노선의 경우 조종사 3명이 탑승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미국, 유럽, 호주 등은 최대 승무시간이 100시간이다. 이들 국가는 시차, 비행 출발시각 등을 고려해 최대 비행시간을 단축한다. 반면 국내 항공사는 비행시간 제한이 느슨한 점을 이용해, 적은 승무원으로 장시간 비행을 시키는 실정이다.
 
결국 조종사와 승무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조종사의 피로가 승객의 안전도 위협할 수 있는 실정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연구 중 조종사의 피로는 정확도와 반응속도를 떨어뜨리고, 주의가 좁아지게 한다. 20시간 이상 각성상태에 있을 때 기본적인 항공기 조작에 손상이 나타난다는 해외 연구도 보고서에 담겼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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