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조용훈 기자]박근혜 정부 시절 추진한 국정 역사교과서는 당시 청와대가 기획하고, 그 과정에 국가기관은 물론 온갖 불법과 위법이 동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고석규)는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7개월간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정 역사교과서 추진이 민주적 절차를 무력화시키고, 위헌과 위법, 편법을 총동원한 또 하나의 ‘국정농단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민의’ 없이 청와대가 단독 결정
진상조사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청와대는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청와대 비공식 자문단의 뜻에 따라 개입했다. 백년대계의 주인공인 국민 의사 반영은 애초부터 없었다.
고 위원장은 “청와대는 세부적인 사안까지 일일이 점검하고 개입했다”며 ”‘좌파척결’이란 정치 아젠다를 내세워 국정화에 부정적인 대다수 역사학계와 교육계, 국민을 ‘좌파’, ‘편향된 집단’으로 매도했다“고 말했다.
특히, 교육부는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국정화 비밀 TF를 구성하고, 우호적인 여론 조성 계획을 추진했다. 구체적으로 여당의원에게 역사교과서 관련 우호 발언 및 연설문 작성해 전달하거나 민간단체를 동원한 집단사위, 학계의 역사교과서 지지 칼럼·기고문 등재 등을 부탁했다.
법 위반해 예비비로 홍보비 집행
또 2015년 교육부가 기획재정부에 예비비를 신청하자 바로 다음날 관련 예산이 대통령에 의해 최종 승인됐다. 예비비 44억원 중 24억8000만원이 홍보비에 사용됐으며, 국정화 비밀 TF는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주재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곧바로 집행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계약법, 총리령 등을 위반하기도 했다.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과정과 내용에 있어서도 청와대 입김은 계속해서 작용했다. 청와대가 편찬기준 개발 중 수정 의견을 제시하면 교육부는 이를 상당 부분 수용해 편찬기준을 수정했으며, 편찬기준은 현장 검토본 공개 3일 전인 2016년 11월 25일 공개했다.
또 청와대는 편찬심의위원 선정과정에도 개입해 편찬심의위원 16명 중 13명을 편찬심의위원 선정위원회 추천과 무관하게 낙점하고, 이렇게 선정된 편찬심의 위원은 편찬심의회를 주도해 편찬기준에 영향을 미쳤다.
교과서 국정화, 헌법가치 위반
진상조사위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을 다각적으로 검토한 결과 청와대가 헌법 가치를 위반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많은 실정법 위반 사항과 편법 동원 사실을 확인했다”며 “진상조사 결과 잘못이 드러난 인사들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이 같은 행위에 대한 후속조치로 이 전 비서실장과 김상률 교육문화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의뢰를 교육부에 요구했다. 여기에는 김관복 고위공무원 등 교육부 관련자들도 포함됐다. 아울러 이기봉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비서관 등 교육부 관련자 14명의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에 대한 신분상 조치도 요구했다.
조사활동 결과 백서로 발간 예정
이와 함께 조사위는 초등 국정교과서 폐지를 포함한 교과서 발행 제도와 관련된 조치들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사위는 남은 활동 기간 조사를 마무리하고, 그동안 이루어진 조사 활동 결과를 기록해 백서로 발간해 역사적 자료로 남길 계획이다.
고석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장과 위원들이 2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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