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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강남 한복판에 공실투성이 아파트?…불꺼진 '시프트'
까다로운 입주조건에 전셋값도 천정부지…차별적 시선은 또다른 '벽'
탁상행정 탓 공실 느는데, 서울시·SH공사는 '모르쇠'
2018-03-29 14:20:04 2018-03-29 18:43:42
[뉴스토마토 임효정·김응태 기자] 퇴근시간을 훌쩍 넘겼지만 아파트 동에 불은 서너 곳만 켜졌다. 28일 늦은 저녁 강남 서초구 잠원동의 한 아파트 모습이다. 인기척도 없다. 어둠 속에서도 커튼이나 화분이 보이는 옆동 여느 집들과 분위기가 다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들이다.
 
 
이 동은 81세대가 입주 가능한데 모두 서울시가 지원하는 장기전세주택이다. 지난해 6월 입주자모집공고(34차) 당시 잔여 공실이 59세대였다. 열 집 중 일곱 집이 빈집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31세대가 빈집이라고 밝힌 이후 공실 수를 공개하길 꺼려한다.
 
강남 한복판에 빈집이 넘쳐나는 것은 까다로운 입주 자격과 5억원을 넘는 비싼 전셋값 탓이다. 시프트로 불리는 장기전세임대주택은 주변 시세 80% 수준에 해당하는 전세금으로 최대 20년 동안 거주할 수 있다. 요건에 충족하기 위해서는 세대구성원 모두 무주택자이며, 세대 소득이 한 달 500만2000원(3인가족 기준)을 넘지 않아야 한다. 또 청약통장 가입기간 2년 이상 등 자격도 갖춰야 한다.
 
입주 자격이 된다 해도 만만찮은 전세자금이 필요하다. 강남 아파트는 주변 시세가 워낙 높다 보니 시세 80%에 해당하는 전셋값도 상당하다. 지난해 10월 기준 시프트 물량인 이 아파트 전셋값은 전용면적 59㎡ 기준 5억4670만원이다. 그나마 내린게 그 정도다. 지난해 3월에는 6억880만원이나 됐다.
 
높은 전셋값 탓에 대출도 쉽지 않다. 은행에 장기전세주택 전용 대출 상품이 있지만 전세보증금이 4억원 이하일 때 가능하다. 5억원 이상인 강남권 아파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자 부담이 더 큰 일반 전세 대출 상품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시프트 입주민은 넘어야 할 벽이 또 있다. 임대 아파트를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이다. 이 단지의 경우 특이하게도 시프트 동 자체가 분리됐다. 동마다 시프트 물량이 섞여 있는 다른 아파트에 비해 단절이 심한 듯 보인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임대아파트 동은 다른 동에 비해 교류가 적고 선입견이 작용해서인지 주변과 단절돼 있다"며 "주택을 섞어 놓지 않고 따로 분리해서 이 같은 분위기가 심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처음에는 다른 동과 구분해 펜스까지 치려고 했다"고 귀띔했다.
 
대기 수요층이 두터운 강남 아파트가 빈집으로 남아 있는 곳은 이 곳뿐만이 아니다. 지난 국감에서 장기전세주택 문제를 지적한 이학재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강남구와 서초구에 위치한 장기전세주택 공실 수는 58세대였다. 2년 마다 갱신 시 소득·자산 규모를 다시 따지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강남권 공실 수가 더 늘어났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현재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공실 현황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
 
임효정·김응태 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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