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이야기)노란리본과 함께 동백꽃 배지를
입력 : 2018-04-04 06:00:00 수정 : 2018-04-04 15:32:17
지난달에 제주도에 갔다가 동광리 큰넓궤를 들어가 보았다. 인근 주민 120명이 70년 전, 토벌대의 학살을 피해 두 달 넘도록 살았던 동굴이다. 겨우 몸 하나 들어갈 수 있는 현무암 좁은 구멍 속으로 몸으로 밀어 넣자 어둠이 지배하는 동굴로 곧바로 이어졌다. 비온 뒤의 동굴은 습기가 가득 차 있었고, 거기에 70년 전 은둔해 살던 이들이 남겼다는 항아리며 그릇들 깨진 조각들이 동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앞의 너른 공간을 지나자 굴은 낮아지고 좁아졌고, 마침내는 기어서 가야만 하는 통로가 있었고, 거기를 기어나가자 다시 너른 공간이 나왔다. 180미터의 굴은 이 통로로 이어져 있었다. 이곳은 몇 년 전 영화 <지슬>의 현장이다.
 
그곳에서 랜턴을 일제히 껐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어둠은 옆 사람조차 분간할 수 없는 그런 공포였다. 이 어둠 속에서 120명의 주민들은 두 달 넘게 토벌대를 피해 살았다. 토벌대에 발각되어 이 굴을 나갈 때 임신부는 나가지 못했다. 그 엄마와 뱃속 아이는 어떻게 되었는지는 누구도 전해주지 않았다. 동굴을 나간 이들도 토벌대에 붙잡혀 일부는 정방폭포에서 학살당했고, 거기서도 살아남은 이들도 한라산을 오르다 모두 학살당했다.
 
1947년 3월1일부터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풀릴 때까지 제주도민 3만 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학살…운다고 죽이고, 말 안 듣는다고 죽이고, 심지어 아이마저 돌에 메쳐 죽이고…그리고 중산간 마을마다 모두 불태우고, 주민들을 해안가 4.3성에 소개해서 집단거주를 시키기까지 제주도에는 어느 마을 한 곳도 학살의 피바람을 피해간 곳이 없었다.
 
우리는 종종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가장 끔찍한 인류의 비극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1948년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한국전쟁 시기에 이루어진 민간인 학살의 잔혹함은 말하지 못해 왔다. 독일의 정부와 시민들은 유태인 학살의 기억을 되새기기 위해서 베를린의 복판에 거대한 추모공원을 세웠지만, 제주의 학살을 말하는 것은 1999년 제주 4.3특별법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로 처벌되는 일이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해서 제주도민들에게 사과를 했고, 제주 4.3평화공원도 만들어지고, 국가추념일로 지정도 되었지만 학살 당한 제주도민들에 대한 폄훼도 있었다. 이번에 다행히 대통령으로는 13년 만에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해서 제주 4.3에 대한 더 이상의 폄훼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오는 4월16일에는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안산에서 열린다. 4년 만의 영결식이다. ‘영결’은 영원히 이별한다는 의미지만 역으로 우리는 잊으면 절대 안 된다고 다짐하는 날이어야 한다. 잊히면 반복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유가족들이나 시민들이 말한 것은 “4.16 이후는 이전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4년 동안 온갖 멸시와 모욕을 당하면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행동했고, 그런 행동의 끝에 세월호 참사를 덮으려던 세력은 권좌에서 끌려 내려와 감옥으로 갔고, 새 정부가 탄생했다. 그래서 진상규명은 이제야 시작되고 있다. 이번의 영결식은 새로운 시작점이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의 싸움 상대는 시간일 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또렷했던 기억도, 그때의 분노와 아픔도 점차 희미해져간다. 그렇지만 제주 4.3의 비극에서처럼 말하지 않으면 묻힌다. 제주 4.3이 깊은 어둠 속에서 나와 증언하게 해야 하고, 세월호의 참사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어느 시인은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별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고 노래했다. 이번 4월에는 노란리본과 함께 붉은 동백꽃 배지도 함께 달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결코 잊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과거처럼 뒤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그런 한 달이었으면 좋겠다.
 
박래군 뉴스토마토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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