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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를 기억해’ 이유영 “힘내서 당당하게 살자구요”
“작품 끝날 때마다 악몽 자주 꿔…후유증 앓이”
‘성범죄 여자도 잘못?’…”그런 시각 바꿔야한다”
2018-04-18 15:57:23 2018-04-18 15:57:23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큰 일(?)을 겪었기 때문이란 걱정이 앞섰다. 일반적으로 배우들의 경우 자신이 메인 타이틀인 영화 개봉을 앞두고도 감당키 힘든 일을 겪게 되면 홍보 전면에서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건 인간적인 도리에서 비롯된 배려다. ‘사람이 먼저다’란 정치적 문구를 대입시키지 않아도 누구라도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배우 이유영은 그래서 조금은 안쓰럽단 생각이 먼저 든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영화가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얘기를 담은 ‘나를 기억해’이기에 더욱 그랬다. 앞서 그가 출연해 온 작품들을 보면 이유영은 언제나 당차고 강하고 쎈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를 조금이라도 알고 또 작품 밖에서 본 경험이 있는 기자들이라면 알고 있다. 부서질 듯 예민한 이유영을. 그래서 웃는 그의 모습에 더욱 안쓰러웠던 것은 비단 영화 속 ‘한서린’이 투영됐기 때문은 아니었다.
 
17일 오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유영은 내심 밝게 웃었다. 그 일(?)에 대한 질문은 도의적으로 피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사실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단순하게 배려 차원을 넘어선 것이란 점은 익히 알고 있었다. 전 날에도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나왔다며 조금은 피곤해 했다. 목소리도 너무 작았다. 피곤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오히려 인터뷰어를 배려하는 모습이다.
 
이유영. 사진/오아시스이엔티
 
“사실 깊은 잠을 잘 못 자요. 악몽을 자주 꾸고 있어요(웃음). 평소에도 피곤하면 꿈을 자주 꾸는 데 개봉을 앞두고 긴장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꿈 내용이 악몽이지만 크게 스토리가 있는 건 아니고. 딱 무슨 사건이 생길 때쯤 제가 잠에서 깨요. 그러면 침대 근처에 둔 메모장에 꿈 내용을 적어요. 하하하. 제가 좀 엉뚱한지. 악몽이긴 한데. 되게 재미있단 생각을 먼저 해요. 웬만한 스릴러보다 더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이 나와요.”
 
그는 작품을 끝낼 때마다 악몽에 자주 시달린단다. 필모그래피만 봐도 힘들고 쎈 역할이 많았다. 일종의 후유증이라고. 힘든 역에 대한 후유증만 있는 것도 아니라고. 최근에는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는 인물을 연기한 단막극도 소화했다. 하지만 단막극 촬영이 끝난 다음에도 악몽에 시달렸다. 우리가 아는 작품 속 이유영과 실제 배우 이유영의 갭은 상당해 보였다.
 
“작품 속 캐릭터로서의 이유영과 실제 이유영은 정말 차이가 많아요. 배우 분들 대부분 그러지 않나요? 제가 좀 유독 심한가?(웃음) 강하고 사연 많고 쎈 캐릭터를 좀 많이 했는데 실제로는 빈틈도 많고 주변에서 놀림도 많이 받아요. 먹는 것도 혼자 메뉴 선택도 못해요. 쉽게 말해 줏대도 없고. 하하하. 그래도 뭐 굳이 설명하자면 ‘외유내강’?(웃음) 힘든 일이 막상 닥치면 혼자 끙끙 알면서 해결을 해요. 결국에는.”
 
이유영. 사진/오아시스이엔티
 
결국 혼자 해결하는 방식은 ‘나를 기억해’ 속 자신이 연기한 ‘한서린’과 맞닿아 있었다. 서린도 결국에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접 사건 속으로 뛰어든다. 성범죄의 직접적 피해자이지만 숨지 않는다. 피하지도 않는다. 직접 마주하고 바라본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것을 똑바로 보면서 ‘왜 그랬는지’를 묻고 싶어했다. 영화이지만 실제 이유영과 한서린의 동질감이 궁금했다.
 
“만약, 아주 만약에 제가 진짜로 ‘서린’과 같은 일을 당했다면? 저도 비슷한 선택을 했을 듯 싶어요. 성범죄 피해자? 상상도 안되고 상상하기도 싫죠. 하지만 분명히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고. 막상 당한다면? 떳떳하지 못한 기분이 들겠죠. 선뜻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할 거에요. 없던 일로 하고 내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거에요. 하지만 그럴 수 없잖아요. 지운다고 지워지는 것도 아니고. 결국 마주봐야 할 것 같아요. 내가 그걸 넘어서지 않으면 언제나 그 속에 매몰돼 있게 되잖아요. 한 번은 마주한다면 제대로 봐야죠.”
 
당찬 모습으로 아픔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피하는 것이 도리는 아니라고. ‘나를 기억해’ 역시 그 지점을 강하게 말했다. 물론 힘이 들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나 끌려간다고 조언한다. 그런 점이 이유영이 이 영화를 선택하는 데 가장 큰 역할과 설득을 했을 듯 싶었다. 또한 감독 역시 그런 이유영의 모습을 다른 작품을 통해 엿보며 그의 출연을 강하게 권했다고 한다.
 
이유영. 사진/오아시스이엔티
 
“주연으로 참여한 작품은 몇 작품 되지만 포스터에 제 얼굴이 나오고 주도적으로 극 전체를 이끌어 가는 것은 이번 영화가 처음이에요. 제가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도 아니고. 그럼에도 감독님이 절 강하게 원하셨다고 하더라구요. ‘서린’의 모습을 절 상상하면서 그리셨다고 하니. 배우로선 ㄷ 없는 영광이죠. 작품 적으로도 마음에 들었죠. 요즘 여성 캐릭터가 이렇게 주도적으로 스토리를 끌고 가는 영화가 있었나? 생각을 해봐도 언뜻 떠오르지 않잖아요.”
 
감독의 요청과 상대 배우 김희원의 강한 요구가 있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배우로서 더 없는 대우이자 배려다. 그럼에도 ‘성범죄 피해자’ 역할이다. 쉽지 않은 캐릭터임에는 틀림없다. 작품 속 이미지에 대한 후유증을 심하게 앓는 이유영에겐 더욱 그러할 듯 하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놓치면 안될 작품이란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영화에서도 그는 거의 완벽하게 성범죄 피해자의 심리를 투영시켰다.
 
“성범죄 피해자를 연기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어렵지도 않았어요. 어차피 제가 하는 일이니깐. 하지만 촬영 도중 많이 외롭고 화가 났던 장면은 따로 있었어요. 서린의 약혼자가 성범죄 피해 여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을 얘기할 때 진짜 외롭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저렇게 얘기를 하는데. 대체 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누구에게 기댈까. 그게 과연 약혼자 한 사람의 속내일까. 너무 화가 나더라구요.”
 
이유영. 사진/오아시스이엔티
 
영화에서도 등장하고 사회적으로도 ‘성범죄’를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도 낙후됐다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다. ‘여자가 칠칠치 못하니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다’는 대사는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의 잘못을 꼬집는 가장 매서운 지적이다. 이유영은 이 대사가 담고 있는 속뜻에 대해 심사숙고 한 뒤 대답했다.
 
“여자의 잘못? 이건 절대적으로 아니에요. 미성년자일 경우 분별력이나 통제력 또는 환경적인 분위기에서 압도되는 것이 있다고 봐요. 그런 배경 속에서 당했는데 ‘너의 문제도 있다’고 치부하면 이건 말이 안되죠. 성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폭력은 가해를 하는 쪽이 잘못이잖아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다소 무거운 질문과 답을 주고 받았다. 데뷔 이후부터 강한 역할 쎈 이미지를 가진 여성 캐릭터를 도 맡아 온 이유가 궁금했다. 이번 ‘나를 기억해’도 사연이 깊은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스스로 끌리는 편도 있는 것 같았다. 가끔은 쉽고 편안한 역보다는 어렵고 힘든 역할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점도 분명히 배우에겐 어필이 되는 지점이지만.
 
이유영. 사진/오아시스이엔티
 
“맞아요. 이상하게 좀 사연이 있는 역할이 더 끌리기는 해요. 지금까지도 항상 끌리는 작품을 선택해 왔구요. ‘간신’ 이후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호기심이 좀 많아서 사연이 깊은 역할에 대해 끌리는 것 같기도 해요. ‘이 사람 왜 그렇게 됐지?’ ‘왜 그때 그랬을까?’란 생각을 자꾸 하다보면 그래요. 하하하. 코미디적인 요소도 저한테는 찾아보기 힘들고. 그래서 어렵고 쎈 인물에 자꾸 끌리나? 하하하.”
 
그는 인터뷰 말미에 두 가지를 언급했다. 하나는 영화 속 가해자처럼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 검은 속내를 감추고 사는 현실 속 ‘마스터’에게. 그리고 그런 ‘마스터’에게 뜻하지 않은 피해를 당해 눈물을 삼키고 자신을 감춘 채 살아가는 ‘한서린’을 향해서다.
 
이유영. 사진/오아시스이엔티
 
“최소한의 양심이란 게 있다면 ‘나를 기억해’를 보고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가기 바래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린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리고 우리 주변에 분명 ‘한서린’처럼 삶을 파괴 당한 채 숨죽여 사는 분들. 그 상처를 수치라고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해요. 본인 잘못이 아니잖아요. 당당하게 살아요. 제가 응원할께요.”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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