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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회장님 들어오신다" 통보만 하면 프리패스…구멍 뚫린 세관
의전팀, 재벌일가 등 VIP 수하물 세관 묵인아래 무신고 통관 서비스
"세관과 평소 긴밀한 협조관계…좌석배정에 라운지 이용 등 편의 제공"
2018-04-22 19:04:30 2018-04-23 14:19:40
[뉴스토마토 구태우·신상윤·최영지 기자] "H그룹 부회장도 같은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 역시 몸만 빠져나갔고, 짐은 우리 직원들이 운반했다."
 
지난해 7월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인천공항으로 들어오는 대한항공 KE018편에는 조현아 칼호텔 사장과 함께 H그룹 총수 일가인 J부회장이 탑승했다. 두 사람은 VIP 전용통로로 공항을 빠져나갔고, 수하물은 대한항공 의전팀이 대신 운반했다. 일반 승객들에게 적용되는 통관 절차도 생략됐다. 당시 조 사장은 '땅콩회항' 파문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재판을 받던 피고인 신분이었다.
 
<뉴스토마토>는 22일 대한항공 의전팀이 해당 수하물들을 아무런 제재 없이 공항 밖으로 운반하는 영상을 단독 입수했다. 해당 영상을 보면 의전팀은 세관 직원들에게 편하게 인사를 건네고 짐을 카트 두 개에 나눠 밖으로 빼냈다.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세관신고서와 함께 수하물 점검을 받던 일반 승객들과는 확연히 대조를 보인다.
 
대한항공 의전팀 직원들이 인천세관 직원 안내로 아무런 제재 없이 세관을 통과하고 있다. 영상/독자 제공
 
의전팀은 이른바 VIP의 출국부터 입국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 출입국 절차를 간소화하고, 동선을 확보하는 동시에 VIP의 위탁 수화물도 대신 부치고 운반한다. 승무원들은 이 같은 방식의 의전을 최상급 의전이라고 설명했다. 한 승무원은 "A코드를 받은 VIP라고 해서 최상급 의전을 다 받는 것은 아니다"며 모그룹인 한진 조양호 회장 일가를 비롯해 소수의 재벌에만 국한된 서비스임을 강조했다. VIP의 출입국 시 동선을 최소화하는 전용통로도 있다. 일반 승객은 소지한 물품 등을 일일이 꺼내 보이고 X-ray 검색대를 통과하는 등 출입국 심사대를 거쳐야 하지만, VIP의 출입국 심사는 의전팀이 대신한다. 전용통로를 이용하면 일반 승객과 마주치지 않고 게이트까지 이동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대한항공 한 관계자는 "세관하고 우리 직원하고 협조가 돼 있다"며 "가령, 사전에 세관 쪽에 회장님 들어오신다고 '인포' 주면(얘기해 놓으면) 그냥 통과되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이어 "그 짐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가의 명품이 있다 해도 알 수 없다"며 "수하물은 의전팀 관리 하에 그렇게 무사통과되고, VIP들은 몸만 나오니 모든 게 프리패스"라고 설명했다. 또 "그쪽(세관)도 우리가 부탁하는 만큼 부탁을 해온다"며 "가족이나 지인들 (해외로)나가고 들어올 때 좌석 배치라든지, 라운지 이용 등을 요구해온다. 다 상부상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공항에서 근무했던 현직 세관 직원도 같은 내용으로 증언했다. 그는 "(대한항공) 의전팀에서 VIP 입국에 맞춰 미리 요청이 온다"며 "그러면 사전 인포대로 그냥 통과시킨다. 보면서도 눈감아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항에서 근무하다 보면 비서나 의전팀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된다. 매일 보는 사람들끼리 야박하게 따지기는 어렵다"며 "이게 원래 그랬던 것처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대물림 된다"고 설명했다. 한 전직 세관 직원은 "국토부와 관세청은 예전부터 대한항공 입김이 셌다"며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받으며 움직인다. 마치 운명 공동체처럼 협업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관세청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관세청은 본지 단독보도를 통해 조양호 총수 일가가 세관당국에 아무런 신고 없이 해외 명품 등을 밀반입했다는 의혹(관세법 위반)이 제기되자, 조 회장 일가의 최근 5년치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조사해 세관 신고 및 관세 납부 내역과 일치하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세관당국 관계자조차 "해외에서 신용카드를 쓴 장소와 금액은 알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샀는지 등 세부적인 내용까지는 알기 어렵다"며 "현지에서 소비하거나 지인 등에게 선물로 줬다고 주장하면 이를 반박하기 어렵다. 그래서 내부에서도 하나마나 한 조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면죄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조 회장 일가로만 사건을 국한시키기보다, 아시아나항공을 포함한 대형 항공사와 관세당국의 결탁을 뿌리째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앞서 증언한 대한항공 관계자도 "지금은 우리한테만 시선이 집중돼 있지만 아시아나항공도 똑같다"며 "같은 재벌들끼리 서로 편의를 봐주고, 이를 위해 세관을 미리 구워삶는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도 "우리라고 다르겠느냐"며 "최근 대한항공 사건이 터지면서 최고위층이 승무원 등의 입조심을 특별히 주문했다. 승무원들이 동요되면 그간 소문으로만 돌던 내부 갑질이나 비리들이 봇물처럼 터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VIP 응대 요령. 본지는 대한항공의 대외비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제작/뉴스토마토
 
대한항공이 국내 굴지의 기업 최고경영진까지 특별 관리한 정황도 드러났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대한항공 내부 문건을 보면, 올해 1월 CES 참석차 각 기업의 최고경영진들이 대거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찾았다. CES는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로 언론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이는 데다, 물 밑에서는 북미시장을 놓고 치열한 영업전쟁이 펼쳐진다. 대한항공은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진교영 삼성전자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 송대현 LG전자 사장, 권순황 LG전자 사장, 손옥동 LG화학 사장, 박종석 LG이노텍 사장,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 등을 코드명 'A2'로 분류한 뒤 팀장(사무장)에게 해당 명단을 건네고 VIP 승객 응대 가이드를 다시 한 번 철저히 숙지시켰다. 그러면서 팀장에게 적임자(승무원) 배치와 서비스 선호 유형에 따른 개별 맞춤형 서비스를 지시했다. 해당 문건들은 모두 대외비로, 외부 유출을 엄격히 통제했다.
 
복수의 대한항공 승무원들에 따르면 VIP도 중요도에 따라 코드라 붙여진다. A3는 최고등급의 VIP로 조양호 회장 일가를 비롯해 소수의 재벌 총수 일가들이 해당되며 그외 A1, A2 등으로 분류된다. 한 승무원은 "DDY(조양호)가 탑승하기 전 일주일 전부터 연락이 온다. 그리고 그에 따른 응대 연습을 한다"며 "DDA(조현아), EMQ(조현민)가 탈 때는 하루 전날 주의사항을 교육한다"고 설명했다.
 
구태우·신상윤·최영지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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