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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살인소설’ 지현우 “전 공감이 안되면 못해요”
“‘살인소설’ 연극적 요소 강해서 끌렸던 작품”
“어떤 배역 어떤 작품이라도 공감이 가장 중요”
2018-04-23 17:19:41 2018-04-23 17:19:4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스크린에선 분명히 낯선 이름이었다. 음악 활동과 안방극장 드라마 속 달콤한 연하남 이미지로만 각인돼 왔었다. 물론 때로는 사회성 짙은 캐릭터로 시청자들과 만나왔다. 스크린을 무조건 멀리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필모그래피엔 분명히 몇 작품의 영화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배우 지현우는 의외였다. 색깔이 뚜렷한 저예산 영화 속에서 속을 알 수 없는 의뭉스런 캐릭터 ‘김순태’란 인물과 지현우의 교집합을 찾기란 사실 여건 곤욕스러운 게 아니었다. 187cm의 훤칠한 키와 웃는 인상의 눈매는 선한 이미지로만 자리 매김 해온 기본 골격이었다. 그런 모습에서 ‘살인소설’ 속 판을 짜는 인물의 치밀함 그리고 선과 악을 넘나드는 이중적인 속내의 모습은 언뜻 상상도 되기 힘들었다. 물론 영화를 본 뒤 지현우에 대한 이 같은 선입견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 근처 한 카페에서 지현우를 만났다. 영화 ‘살인소설’ 언론 시사회 후 바로 다음 날이었다. 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가 나오지 않았기에 그 역시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궁금했다. 영화는 2011년 ‘Mr. 아이돌’ 이후 7년 만이다. 방송은 꾸준히 출연해 왔지만 2015년 ‘송곳’이 가장 화제작이었다. 그에게선 의외로 상업적인 냄새가 덜 났다. 스타성과는 사실 반대로 가는 행보였다.
 
지현우. 사진/리틀빅픽처스
 
“하하하. 글쎄요. 뭐랄까. 전 이유를 스스로가 찾지 못하면 도저히 그 작품을 할 엄두가 나질 않아요. 남성미 넘치는 액션이나 마초적인 느낌이 강한 남성 영화? 저하고는 전혀 안 맞는 작품이라고 지금도 생각해요(웃음). 어떤 영화나 방송을 하던 ‘뭘 보여주자’란 생각으로 접근하지는 않아요. 이번 ‘살인소설’은 저랑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겠단 확신이 있었어요. 특히나 연극적인 요소가 강했어요. 연극을 못해 본 저로선 두 가지 매력을 모두 잡을 수 있겠단 생각이 있었죠.”
 
지현우의 그런 마음을 사로 잡은 ‘살인소설’은 한정된 공간에서 많지 않은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일종의 촘촘한 심리 스릴러 장르에 가깝다. 그는 모든 인물들의 행동과 감정을 조정하는 거의 절대적인 위치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 보는 인물이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감정을 잃을 수가 없다. 느릿하고 여유로운 말투다. 얼굴은 항상 웃고 있다. 하지만 눈은 무언가 다른 지점을 보는 듯 했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캐릭터다.
 
“너무 마음에 들었죠. 속을 알 수 없는 인물. 사실 감독님의 모습을 많이 참조했어요. 하하하. 감독님이 현장에서 그렇게 하세요. 입은 웃고 계시는 데 눈은 정말 초롱초롱하세요. 거의 10년 동안 준비를 하다가 만들게 된 영화에요. 얼마나 감격스러우시겠어요. ‘순태’도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죠.
감독님에게 많은 부분을 여쭤보고 또 참고를 많이 했어요. 순태가 보는 시선과 감독님이 현장에서 배우들을 보는 시선이 거의 비슷할 것이라고 봤죠. 아! 감독님이 의뭉스런 그런 분은 절대 아닙니다 하하하.”
 
지현우. 사진/리틀빅픽처스
 
영화를 보면 지현우가 연기한 ‘순태’는 항상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직업 자체가 소설가이기에 무언가 영감이 떠오르면 적어 나가는 모습이 있었을 수도 있을 듯 하다. 의도된 것인지 계산된 것인지 아니면 감독의 디렉션 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순태의 일관된 행동을 통해 지현우의 습관과 순태의 모습은 어느 정도 오버랩됐다. 결과적으로 순태의 모든 것을 설득시키는 하나의 요소가 됐다.
 
“하하하. 영화에서 제가 자꾸 뭘 쓰죠? 그게 실제로 앉아서 시나리오에 나온 대사를 자꾸 쓰는 거에요. 제 분량뿐만 아니라 대본 전체를 거의 외웠어요. 뭐랄까. 이게 제 스타일인가봐요. 전 그냥 외워요. 지문까지. 무식할 정도로 다 외워요. 이게 아무래도 음악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음악을 할 때는 녹음을 하면 한 곡을 7~8시간 정도 계속 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뭔가 보여요. 어떤 지점에서 템포를 좀 늦출까. 어떤 지점에서 반 템포만 좀 올릴까 등등. 그렇게 하면 상대방 대사에 이어진 내 대사 속도를 결정하고 의미와 늬앙스까지 조절이 가능해요.”
 
그의 연기 스타일이나 캐릭터 적인 면도 분명히 ‘살인소설’ 속 ‘김순태’와 다른 점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연하남’ 대명사로 통하던 지현우의 ‘김순태’가 이질적으로 다가온 것이 가장 컸다. 이질적이란 단어가 공감력 부족이란 뜻으로 확대 해석될 수도 있지만 아니다. 오히려 지현우에게 이런 모습을 본 다는 것 자체가 묘한 쾌감이 들었다. 그 역시 이런 역에 대해 색다르게 느낀 점이 많았던 것 같다.
 
지현우. 사진/리틀빅픽처스
 
“사실 회사에서도 이런 역을 저한테 많이 시키려고 했었어요. 저 역시 기존의 제 모습과는 좀 다른 캐릭터에 묘하게 끌렸던 것도 사실이고요. 연하남? 글쎼요. 어릴 때는 어려서 귀엽게 봐주시는 면도 있었다면, 나이를 먹어선 연기를 못하면 더 이상 봐주실까요? 냉정하잖아요. 이젠 ‘연하남’ 은 저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물려 주는 게 맞다고 봐야죠. 하하하. 갈수록 잘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고. 작품 선택 폭도 그래서 저 스스로 많이 넓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여성분들에게 공감 받는 역할로 갔다면 요즘에는 대중들에게 공감 받을 수 있는 배역? 그렇게 제 선택이 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고르고 골라서 무려 7년 만에 선택한 영화가 ‘살인소설’이었다. 자본이 집중된 상업적 규모의 영화는 분명 아니었다. 지현우의 스타일에서 보자면 분명히 괜찮은 선택이었음은 분명했다. 대중들이 알고 있고, 대중들이 원하는 지현우의 스타일이었다면 분명 달랐다. 그럼에도 수 많은 작품이 그의 손을 타고 넘어갔음에도 그는 7년 만에 ‘살인소설’을 선택했다.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앞선 설명 외에 조금 더 디테일함을 더했다.
 
“뭐 많은 작품이 저한테 오지는 않았어요(웃음). 살인자 역할도 있었고. 그런데 전 도저히 공감이 안되서. 하하하. 7년 만에 영화를 했죠. 글쎄요. 정확하게 말하면 못한 거에요. 영화는 기본적으로 거친 남자들의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지현우란 배우가 쓰일 공간이 많지가 않았어요. 그런 작품도 해봐야 한다? 그런데 전 스스로가 공감이 안되면 아무리 저 자신을 강하게 밀어 붙여도 안되요. 영화는 관객이 직접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보는 것이잖아요. 억지를 보여드리면 안된 단 생각이 전 분명해요.”
 
지현우. 사진/리틀빅픽처스
 
그는 이번 영화를 하면서 나름 배우로서의 쾌감을 많이 느꼈단다. 어느 순간 자신이 ‘순태’가 돼 모든 것을 조종하는 모습에 묘한 자신감이 붙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결과적으로 영화 속 ‘김순태’에게 이입돼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극 전체를 조율해 가는 자신의 모습에 소름이 끼치기도 했단다. 배우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이며 배우라고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그런 흔한 쾌감도 아니었다.
 
“전 평소에 욕도 안해요. 그런데 ‘순태’를 연기하면서 제 입에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욕이 나온 것도 처음이에요. 사실 편집된 장면도 있고, 그 장면에선 상영 버전에 담긴 것보다 더 심한 장면도 있어요. 저 스스로도 놀랐어요. ‘내게 이런 면이 있었나?’라고. 그렇게 따지고 보면 이번 작품에서 제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닌 거 같아요. 딴 생각을 하거나. 다른 마음으로 캐릭터를 대한 느낌은 없었으니. 아마 ‘살인소설’ 같은 작품은 앞으로도 만나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되요.”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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