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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토 기획) 신인 여배우 ‘노출 데뷔’ 신데렐라 등용문 될까?
2018-05-03 17:16:43 2018-05-03 18:25:5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그랬다. 여배우 노출은 ‘에로’란 이미지가 명확하게 굳어지는 지름길이었다. 굳이 ‘에로’란 이미지가 부정적인 뜻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그것을 첫 모습으로 출발하는 것 자체가 분명히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충무로 상업 영화 시장에서 노출은 하나의 방식이란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나아가 신인 여배우의 등용문으로까지 활용되면서 ‘여배우=노출’의 공식이 더 이상 부담이자 치부가 되지 못했다. 2012년 영화 ‘은교’를 통해 데뷔한 김고은의 경우 이른바 ‘헤어 노출’까지 감행한 파격적 이미지를 선보였지만 현재 그는 또래 연기자 중 가장 잘나가는 스타가 됐다.
 
영화 '버닝' 의 전종서
 
♦ ‘상당한 노출을 요함’
 
최근 영화 오디션 현장에 심심치 않게 붙은 문구다. 주연 여배우를 오디션으로 캐스팅하는 영화의 경우 많지는 않지만 일부 작품이 ‘강한 노출’을 요구한다. 오디션 현장 및 공고문에는 필히 이 같은 문구가 공지돼 있다.
 
2012년 개봉한 정지우 감독의 ‘은교’ 오디션 당시에도 이 같은 문구가 공지됐었다. 무려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신예 김고은이 캐스팅됐다. 순수와 관능을 동시에 지닌 인물 ‘한은교’ 역을 위해 그는 전라 노출은 물론 중요 부위의 ‘헤어’ 노출까지 불사했다. 70대의 국민 시인 이적요(박해일) 그리고 그의 제자 서지우(김무열)와 각각 정사신을 소화하면서도 김고은은 기존 여배우 못지 않은 능숙한 소화력을 선보였다. 이후 그는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김고은은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들며 최고의 스타로 군림 중이다.
 
지난 해 ‘1987’ 그리고 올해 ‘리틀 포레스트’로 전혀 다른 장르에서 완벽한 작품 소화력을 선보인 배우 김태리 역시 데뷔작의 충격적 모습은 두고두고 회자가 됐다. 박찬욱 감독이 영국 소설 ‘핑거 스미스’를 원작으로 한 ‘아가씨’ 오디션을 통해 신인 여배우를 찾는다는 오디션 정보가 충무로에 파다했다. 당시 이 오디션에는 ‘강도 높은 노출을 요함. 수위는 타협 불가’란 단서가 포함돼 있었다. 우선 원작 자체가 상당한 노출을 요하는 작품이었다. 더욱이 국내에선 생소한 레즈비언 소설이었다. 먼저 캐스팅된 배우 김민희와의 파격 정사신이 예고됐다. 단편 영화 출연이 전부였던 김태리는 그렇게 데뷔작 ‘아가씨’를 통해 전례 없는 강력한 노출 연기를 선보였다. ‘아가씨’의 칸 영화제 초청으로 데뷔작으로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는 영광까지 누렸다. 이후 행보는 ‘1987’ 그리고 ‘리틀 포레스트’다.
 
무려 1500대 1의 경쟁률 속에 김태리를 발탁한 박찬욱 감독은 당시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김태리의 소신을 높이 평가한다”면서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여느 기성 배우들 못지 않다. 그런 자세가 남다르게 다가왔다”고 평한 바 있다. 실제로 주가가 급등한 김태리이지만 그는 ‘1987’의 멀티 캐스팅 속 한 배역을 선택했다.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리틀 포레스트’도 선택했다. 그 흔한 예능 프로그램이나 광고 촬영도 거의 배제하고 있다.
 
영화 '은교'의 김고은
영화 '아가씨'의 김태리
 
♦ ‘노출’ 통한 강렬한 이미지→스타 지름길?
 
김고은 그리고 김태리의 성공을 통해 결과적으로 노출 자체가 신인 여배우들의 스타 등용문이란 인식이 자리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실제 일부 기획사의 경우 ‘강한 노출’을 필요로 하는 일부 영화 오디션에 소속된 신인 여배우들을 필수적으로 참여시키기도 한다고.
 
현직 한 영화 프로듀서는 뉴스토마토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름값이 높은 거장 감독님들의 신작 그리고 그 신작이 노출을 포함한다면 신인 여배우들의 오디션 문의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면서 “노출 때문에 감독님들이 기성 여배우들보단 신인 여배우들을 선호하기도 하는 경향이 많다”고 전했다.
 
물론 ‘아가씨’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처음부터 신인 여배우를 기용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노출에 대한 기성 여배우들의 노출 거부감 때문에 신인 여배우 캐스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때문에 오디션 당시 '강한 노출, 타협 불가'란 사전 공지를 한 바 있다.
 
오는 8일 개막하는 제71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이창동 감독 신작 ‘버닝’도 여주인공 ‘해미’역 오디션을 진행하면서 ‘타협 불가의 노출’을 공지했다. 그리고 연기 경험이 전무한 신예 전종서가 캐스팅 됐다. 앞서 파격 노출의 데뷔작으로 충무로 스타 여배우로 발돋움한 김고은 김태리와 너무도 흡사한 행보다.
 
이밖에 영화 ‘인간중독’의 임지연, 영화 ‘마담 뺑덕’의 이솜도 파격 노출로 스크린 데뷔를 한 여배우들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뉴스토마토와의 전화통화에서 “국내 기성 여배우들이 노출에 보수적이다보니 반대로 신인 여배우들이 데뷔의 방법으로 ‘노출’을 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면서도 “사실 그들을 캐스팅하는 감독들도 단순하게 ‘노출 여부’ 수용으로 해당 신인 여배우를 캐스팅 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가능성을 더 크게 보는 것이다”고 전했다.
 
노출 자체가 강렬한 임팩트와 이미지 각인에는 분명히 큰 작용을 한다. 하지만 여러 영화 관계자들은 ‘자칫 연기력 부족을 노출로 덮으려는 의도로 관객들에게 다가서게 되는 단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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