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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레슬러’ 유해진 “저요? 속만 썩이던 막내였죠”
아들 뒷바라지 아빠 역할…”촬영 동안 부모님 생각 많이 나”
“험악한 인상 속에 ‘인간미’?...아무래도 ‘삼시세끼’ 영향 때문”
2018-05-08 11:44:44 2018-05-08 11:44:44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정확하게 20년 전이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험상궂게 생긴 ‘양아치’가 등장한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외모도 그렇지만 연기인지 실제인지 분간하기 힘든 모습에 모두가 ‘실제 깡패’를 섭외한 줄 알았다. 물론 2% 부족한 인간미 넘치는 모습은 반전이었다. 배우 유해진이 대중들에게 처음 존재감을 각인시킨 순간이다. 지금이야 호감적인 외모라고 해도 당시 그의 외모는 ‘악역 전문’ 타이틀이 제격이었다. 그런 유해진이 어느 순간부터 인간미를 더했다. 소탈한 모습을 전했다. 유머를 선보였다. 진솔도 선보였다. 누구라도 인정했다. 그게 유해진이라고. 인터뷰를 하는 날도 인터뷰 장소인 카페 근처를 마실 하듯 돌아다녔다. 그를 알아본 외국인 관광객들과 스스럼 없이 인사를 하고 사진 촬영도 흥했다. 험상궂던 데뷔 당시 외모가 지금은 왜 그렇게 친근해 보이는지 알 수 있었다.
 
배우 유해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3일 오후 점심 시간을 막 지난 시간 삼청동 인근 카페에서 유해진과 만났다. 영화 ‘레슬러’를 통해 다시 한 번 인간미 넘치는 유머 코드를 관객들에게 선보일 채비를 끝냈다. 이번에는 유머에 더욱 진한 인간미까지 더했다. 부자간 묘한 코드까지 덤으로 얹었다. 극중 노모와의 모자 케미는 양념이었다. 유해진은 ‘가족’이란 단어로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을 알아봤단다. 그가 이 작품을 선택한 가장 확실한 이유였다.
 
“제가 출연했던 영화들 가운데 가장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라고 소개드릴 수 있어요. 사실 기존에 출연했던 코미디 영화 정도 웃음만 있었다면 선택 안 했어요. 특히 눈에 띄는 게 부자간의 얘기였어요.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자식도 없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지점이 더 가슴에 와 닿아요. 사람 냄새,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 그런 게 눈에 보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레슬러’가 그걸 담고 있더라구요.”
 
그는 이 영화를 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데뷔 당시 그리고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아버지와의 갈등에 대한 얘기를 가장 많이 털어놨다. 인터뷰 중간 중간 ‘이걸 얘기해야 하나’라면서 혼자 잠시 곱씹었다. 하지만 이내 술술 속내를 드러내면서 묵혀 있던 체증을 홀로 뚫어버리는 듯 했다. 이 영화가 본인에겐 소화제라도 되는 듯 했다. 연신 ‘(이 영화를 선택한 게) 잘 한 것 같다’며 사람 좋은 인상의 웃음을 선보였다.
 
배우 유해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도 결국에는 ‘성웅’(김민재 분)가 귀보 속을 섞이잖아요. 에휴~제가 딱 그랬어요. 정말 못된 아들놈이었죠.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서. 연극한다고 속 썩이고, 철 없어서 속 썩이고. 대체 왜 그랬는지 몰라요. 정말(웃음). 나이 먹으니깐 딱 알겠더라구요. 속담에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잖아요. 이 영화 하면서 정말 많은 걸 느꼈어요.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 건강이 너무 안 좋으신 아버지 생각, 그때 왜 그랬을까란 후회가 너무 되요.”
 
영화 속 ‘귀보’(유해진 분)는 아버지인 동시에 아들이다. 아들 성웅 때문에 뒤늦게 속을 끓이지만 노모(나문희)에겐 또 다른 골치덩이가 바로 귀보다. 노모에게 위로를 받기 위해 털어 놓는 대사에서 모자 간의 관계와 자신의 옛 이야기가 더욱 떠오른다며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더했다. 영화 속에선 웃음 코드이지만 실제로는 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던 대사였단다.
 
“나문희 선생님이 ‘너는 (아들이) 속 썩은 지 이십 년이지, 나는 사십 년 됐어’란 말이 참 인생 같아요. 이 영화는 부자지간의 성장 드라마이지만 아이의 성장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부모의 그런 시간까지 짚어보는 얘기라고 봤어요. 촬영하면서 어머니 생각이 왜 그렇게 많이 나던지. 막내 놈 잘되는 모습도 못 보시고 일찍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너무 엄하시고 무서우셨죠. 지금은 건강도 안좋으시고. 병원에 계시는 데, 뵈러 갈 때마다 사실 건성이지만 ‘네 네 사랑해요’라고 말이라도 건내 드려요(웃음)”
 
배우 유해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속에선 그렇게 자신의 속을 썩이는 아들 녀석이었지만 실제의 배우 김민재는 너무도 진득한 동생이었단다. 일찍 결혼했으면 아들이라고 해도 될 나이차였다. 크게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민재 또래의 자식을 둔 친구들도 실제로 많다’며 웃는다. 현장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 준 아들 녀석과의 호흡은 오랜만에 느껴 본 기분 좋은 맛이었단다.
 
“부자로 등장했지만 참 좋은 느낌이었어요. 아니 형 동생 같은 느낌이 강했어요. 녀석이 아주 든든하고 진득한 맛이 있어요. 이게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면 궁합이란 게 실제로 존재를 해요. 불편한 사람이 왜 없겠어요. 뭐 이런 거잖아요. ‘이 회사에서 저 사람이 맘에 안 들어 저 회사로 이직하니 또 이 사람의 이런 게 맘에 안 들고’. 아빠 역할로 몇 작품 했었는데. 전 의외로 자식 복이 많아요. 하하하.”
 
한 동안 부모님 얘기로 시간을 보내던 그는 아들 얘기에 ‘자식 자랑’으로 시간을 다시 보냈다. 영화 속에서도 그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프로 살림러’로 돌변해 능숙한 살림 살이 솜씨를 선보인다. 오랜 혼자살이 생활이 엿보이는 실력이었다. 지금도 세밀한 것은 도우미 아주머니의 손을 빌리지만 웬만한 것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린단다. 영화 속 손빨래 장면에선 착착 감기는 맛이 더 없이 좋았단다.
 
배우 유해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하하하. 전 지금도 손빨래 자주 해요. 이게 손으로 빨아야 하는 게 있잖아요. 모르시죠(웃음) 화장실에서 손 빨래 하는 장면을 찍는 데 왜 그렇게 편한지 몰라요. 하하하. 지금도 집안 일은 거의 제가 다 해요. 촬영을 가거나 도움을 받을 때도 있는데 거의 제가 다 해요. 직장인이 아니니깐. 요리도 뭐 제가 거의 다 해 먹고. 그냥 성격인가 봐요. 내가 해 먹고 내가 해야 직성이 풀리니.(웃음). 뭐 영화 속 귀보하고 딱 맞지 뭐. 하하하.”
 
데뷔 당시에는 험악한 인상에 악역 전담 배우로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모습에서 인간미를 찾으려는 감독들의 시선이 눈길을 끌었다.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모습에서도 그랬다. 아무리 강하고 나쁜 인물이라도 ‘유해진’이라면 ‘이유’를 찾게 되는 관객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유해진은 어느덧 인간미의 다른 말이 돼 있었다.
 
배우 유해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하하하. 글쎄요. 아무래도 ‘삼시세끼’ 영향이 컸던 거 같아요. 그 프로그램을 할 때 그랬거든요. 나 스스로에게. ‘절대 짜증 내지 말자’라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에서 조금만 즐겨 보자. 즐기는 가운데 드라마를 보여 드리자. 이번 ‘레슬러’도 마찬가지에요. 시작할 때 관객 분들이 느끼기에 ‘골 때리는 영화구나’라고 느껴지는 구석이 한 군데라도 있었다면 안했어요. 웃음도 있고 유쾌함도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그 안에 진짜는 드라마였거든요. 그 드라마를 이어가는 게 배우 유해진이 전해 드려야 하는 재미가 아닐까요.”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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