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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조정제도 두고 '시끌'…"이중규제? 사업조정은 유통법 보완책"
미국 기업, 산자부에 이례적 항의…전문가들 "통상문제보다 보호장치 훼손 경계해야"
2018-05-15 17:22:51 2018-05-15 17:22:55
[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대기업들의 골목상권 침해를 막는 장치로 사용되던 사업조정제도가 뭇매를 맞고 있다. 최근 유진기업과 손 잡고 국내 산업용재 시장 진출을 시도했던 미국 기업이 중소벤처기업부의 점포 개점 연기 결정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에 통상마찰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중소기업 간 상생의 영역에서 이뤄지던 사업조정 논의가 무역 분쟁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사업조정제도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 개입이 과도하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통상마찰 가능성 자체를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며 오히려 골목상권 보호장치 훼손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산업부와 업계 등에 따르면 미국의 건자재업체 에이스하드웨어(AH)는 지난 4일 한국 정부의 사업조정제도가 부당하다는 서한을 주한 미국대사관에 전달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관련 문서가 대사관에 접수된 것은 확인됐지만 아직 산업부에 내용이 전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진기업에서도 "AH가 우리와 상의 없이 서한을 보낸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유진기업은 앞서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에 중기부의 사업 연기 결정에 대해 행정심판 소송과 함께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AH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도 검토하겠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AH는 한국 정부가 소상공인의 피해를 가정해 시장 진출을 막고 있어 자사 이익이 침해된다는 입장이다. AH가 중기부가 아닌 산업부에 이의를 제기한 데 대해 통상문제 확대로 확대될 가능성도 나온다.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확대 해석을 우려하는 시각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외국인 투자를 일부 제한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돼 있어 소상공인 보호법에 대한 조항이 이번 사안에 적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WTO의 서비스 교역에 관한 정부간 협정(GATS) 14조에 규정된 일반적 예외조항에서도 자국의 안보이익 보호를 위해 통상규제 가능성이 언급돼 있다. 미국 기업이 통상 분쟁을 제기할 수 있지만 다퉈볼 여지가 있는 문제로, 국내 산업 보호가 우선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양창영 법무법인 정도 변호사는 "한미 FTA에 담긴 '포괄적 유보조항'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공공질서 유지와 취약계층 우대 등을 위해 투자 일부 제한을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은 "대형마트 규제 논의가 전개되는 과정에서부터 관련 논의가 이어졌는데, 협정 위반 사례가 나오더라도 예외조항에 해당될 경우 정당화될 수 있다는 연구가 많이 나와 있다"며 "해당 사안이 예외조항에 적용되는지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기부의 이번 결정이 시장 보호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점에서 실제로 통상문제로 번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본적으로 통상법을 따라야 하지만 예외조항이 적용되면 국내법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또 다른 전문가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사업 연기는 철회에 비해 훨씬 약한 결정으로, 논란이 커진 시점에 중기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그 만큼 피해 규모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해석의 여지가 있겠지만 문제가 될 가능성은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업은 문제가 될 여지가 10%만 돼도 이의를 제기하며 번복을 요구한다"며 "과거 대부분 기업들이 사업조정 결정을 대부분 수용한 데 비해 유진기업이 행정소송을 제기하거나 미국기업을 통해 다시 문제제기하는 점 등을 보면 회사에서 의지가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는 "유진기업이 사업 준비 초반부터 골목상권 침해 문제제기가 있었는 데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문제를 키운 측면이 있다"며 "시장 상황이나 규제를 고려하지 않은 점이 논의 과정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마했다.
 
한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제도가 통상마찰 우려로 인해 훼손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유통산업발전법과 상생법의 이중 규제로 기업 활동을 제한한다는 기업들의 불만에 대한 비판이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유통법은 유통산업 발전을 목적으로 생긴 법이기 때문에 시장 보호조치가 충분하지 않다"며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상생법이 존재하는 데 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상생안을 찾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충렬 국회입법조사처 선임연구위원이 2015년에 발간한 보고서의 내용 또한 주목할 만하다. 박 연구위원은 이 보고서에서 "기업형 슈퍼마켓(SSM) 문제로 사업조정제도에 대한 관심이 커진 이후 제도개선 요구가 이어지면서 실효성 강화 조치가 이어졌다. 하지만 법 개정 과정에서 대기업이 중소상인 사업영역에 진출을 자제할 거란 기대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기업들이 사업조정 신청 대상이 아닌 영역에 끊임없이 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법 개정을 통해 기업형 슈퍼마켓(SSM)과 대형마트 등의 사업 철회 성과가 있었다. 유통 대기업들이 출점을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사업조정제도가 중요 고려사안이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3월 한국산업용재협회가 정부대전청사 앞에서 유진기업의 산업용재 도소매업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총궐기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한국산업용재협회

 
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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