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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세상읽기)마시멜로와 참는 자
2018-06-08 06:00:00 2018-06-08 06:00:00
독일 유학 시절 좋았던 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고기를 꼽는다. 정말 고기는 원 없이 먹어봤다. 여름이면 주말마다 바비큐 그릴 파티를 한다. 이때 한국 유학생들은 인기가 아주 좋았다. 바로 불고기 덕분이다. 하지만 돈이 조금 든다. 그런데 미국 친구들은 얄밉게도 마시멜로라고 하는 싸구려 사탕만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마시멜로를 바비큐 판에 구우면 입에서 녹는 맛이 기가 막히다. 나도 한 번 입에 맛을 들인 다음에는 채 익기도 전에 주워먹곤 했다. 부드러운 달콤함은 매혹적이다. 이때 친구들이 말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우리나라에서는 마시멜로는 사탕이 아니라 심리학 용어로 더 유명하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은 1967년부터 몇 년에 걸쳐서 마시멜로를 가지고 심리학 실험을 했다. 실험은 간단하다. 아이에게 마시멜로 하나를 주고서는 "얘야, 지금 이 마시멜로를 먹어도 돼. 그런데 선생님이 잠깐 나갔다 와야 해. 그때까지 먹지 않고 참고 있으면 선생님이 마시멜로를 하나 더 줄게"라고 이야기하고는 15분 동안 방을 떠났다가 돌아온다. 시험자가 나가자마자 3초 만에 마시멜로를 먹는 아이도 있고 7분 정도는 참았지만 견디지 못하고 결국은 먹는 아이도 있지만 끝까지 참고 기다렸다가 하나 더 먹는 아이도 있다.
 
이 실험의 목적은 단기 충동에 휘말렸던 아이들과 장기보상을 받기 위해 참았던 아이들이 어떻게 다른 인생을 살게 될지 추적하는 것이었다. 13년 뒤 아이들의 상태를 추적했다. 인내력을 보였던 아이들은 대학입학 성적이 좋았다. 20년 뒤 대학 졸업성적도 좋았고 30년 뒤에 받는 연봉도 더 높았다. 반대로 인내력이 없던 친구들은 성적이 나빴고 약물에 중독되는 비율이 높았으며 감옥에도 더 많이 갔다. 연구팀은 인내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는 것이며 자기 통제력에는 이성이나 의지보다는 마치 거기에 마시멜로가 없는 것으로 여기는 지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심리학 연구가 세상에 급속히 전파되는 것은 당연지사인데 실험결과만 널리 퍼질 뿐 정작 연구팀의 해석은 별로 전달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자기통제력은 대상을 어떻게 상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석했지만 교육자와 부모들은 아이들의 인내력을 키우기 위한 엄격한 교육에만 매진했다.
 
심리학자들과 달리 자연과학자들은 마시멜로 실험에 대해 큰 의의를 두지 않았다. 우선 통제되지 않은 변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이 마시멜로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하도 먹어서 질렸을 수도 있다. 참을성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 형편이나 형제의 수가 문제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4형제인 나는 어린 시절 집에 과자가 보이면 무조건 먹었다.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금 안 먹으면 다른 형제들이 먹어 치울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시험자의 수가 너무 적었다. 연구팀이 나중에 성장과정을 살펴본 사례는 50건에 불과했다.
 
마침내 심리학계에서도 월터 미셸의 실험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는 주장이 나왔다. 뉴욕대와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 공동연구팀은 마시멜로 실험을 처음부터 다시 했다. 이들은 생후 54개월 된 유아 918명을 대상으로 했는데, 이 가운데 554명은 엄마가 대학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 가운데 골랐다. 분석의 초점을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와 가정환경까지 확장한 것이다. 또 마시멜로만 놓고 실험하지 않고 쿠키, 초콜릿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간식을 선택하게 했다. 그리고 시간도 15분에서 7분으로 줄였다(솔직히 15분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이번 실험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인내심을 보인 데는 엄마의 학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엄마가 대졸 이상의 학력인 경우에는 68퍼센트가 7분 동안 인내심을 발휘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45퍼센트만이 참았다. 연구팀은 엄마의 학력은 결국 가정의 경제력을 반영한다고 봤다. 참지 못하고 간식을 먹는 아이들은 미래 보상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려운 경제 형편이었다. 또 아이들을 장기 추적해 본 결과 참을성은 계산능력이나 읽기능력과는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었다.
 
참는 자에게는 복이 있다고 한다. 복 있는 개인이 모여 복 있는 사회가 된다. 명랑한 사회가 되려면 미래 보상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시민 특히 젊은이들을 속여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치, 경제, 문화 환경이 만들어지면 우리는 모두 복을 누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오늘부터 사전투표가 시작된다. 표를 줬으면 보상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참을성을 시험하지 마라.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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