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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이야기)전쟁기념관을 이대로 둘 것인가
2018-06-20 06:00:00 2018-06-20 06:00:00
용산 삼각지역 국방부 건너편에 전쟁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스 신전을 옮겨놓은 듯한 건물과 큼지막한 조형물들, 그리고 야외 무기전시장에 사람들이 몰린다. 미술전시회도 열리고, 음악회나 다종다양한 이벤트도 열리고 주말이면 결혼식도 열린다. 그 앞을 그냥 무심코 지나쳐다니다가 10년 쯤 전에 ‘전쟁기념관’이란 명칭도 의아하고, 그곳에는 어떤 전시가 있을까 해서 들러본 적이 있었다. 그 뒤 종종 전쟁기념관을 가보게 된다.
 
1년이면 2백만 명이나 다녀가는 곳, 유명한 관광명소에 결코 뒤지지 않는 곳이다. 외국인들도 제법 눈에 띄는데 가장 많은 관람객은 아마도 유치원부터 초중고생들일 것이다. 선생님의 안내로 현장학습을 와서는 해설사들의 해설을 귀담아 듣는다. 야외전시장의 탱크며, 전투기며, 전투함들은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그리고는 전쟁 무기들에 올라가서 인증 샷도 찍는다. 그 무기들이 사람을 죽이는데 쓰이는 도구라는 걸 설명하는 문구도 해설사도, 선생님도 보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평화의 가치를 소중하게 알면서 크도록 배움을 주는 곳이 아니라 무기와 전쟁을 친근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곳이 전쟁기념관이다.
 
전쟁기념관은 우리사회가 민주화되는 시기에 만들어졌다. 민주화를 국가안보의 위기로 인식한 당시의 군부의 인식은 당시 이상훈 국방장관의 말로 집약된다. 민주화를 “체제 전복을 꾀하는 좌익세력들이 준동”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올바른 호국정신을 함양시키고자” 기념관을 건립한다고 취지를 설명한다. 그들이 바라는 대로 “안보의 성역”으로 자리 잡은 전쟁기념관이다.
 
전쟁기념관의 육중한 건물과 장엄한 조형물들 앞에서 애국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전쟁기념관이라고 해서 따분하거나 고리타분한 전시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기념관의 전시는 갈 때마다 업그레이드되고, 첨단 전시기법을 동원한다. 특히 청소년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컴퓨터 게임하는 것처럼 전쟁의 장면들을 느끼도록 전시기법을 사용한다. 노량진 전투도, 백마고지 전투도 그런 기법으로 설명한다. 거기에는 노량진 전투로 6일 동안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했다는 무공을 찬양한다. 서울시민을 두고 도망쳤다가 수복 이후에는 부역자로 수많은 이들을 처형하면서 고통을 주었다는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고지전이 숱한 젊은 목숨들을 산골짜기와 산봉우리에서 죽게 한 잔혹한 전쟁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일방적으로 선택되고 삭제된 기억들로 가득 찬 곳이 전쟁기념관이다. 북한 인민군에 의한 학살은 비난하지만, 국군과 미군이 저지른 학살에는 침묵하거나 외면한다. 그것은 베트남전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베트남 민중들을 학살한 범죄에 대한 인정도 사과도 없이 한국전 때의 ‘견벽청야’ 작전을 그대로 실시한 것을 자랑한다.
 
고인이 된 건축가 정기용은 전쟁기념관을 둘러보고는 “전쟁을 기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은 있는 자들이 죽은 사람들의 생명에 진 빚을 엄숙히 하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모든 죽음에 대한 경건한 마음가짐”을 갖도록 하고 빚진 생명들에 “진지하고 지속적인 연대”를 하는 것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민족이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닐까 한다.
 
전쟁기념관이 건립된 지도 24년이 지났다. 마침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북미 정상회담도 열렸고, 각급 회담들이 줄지어 열리고 있고, 한미 간의 군사훈련도 유보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대결과 긴장을 넘어서 평화의 연대의 미래를 만들자고 머리를 맞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북한을 섬멸해야 할 주적으로 상정해놓고 적개심을 고취하면서 북진을 해서라도 통일을 하자는 이념을 고취하는 전쟁기념관을 그대로 두어야 할까?
 
이런 낡은 이념을 애국심이라고 강요하는 전쟁기념관이 아니라 평화의 소중함을 자연스레 배울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전쟁으로 죽어간 모든 이들의 죽음에 경건한 마음으로 연대하는 일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다시는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짐하는 기억의 장으로 전쟁기념관을 바꾸고 싶다.

박래군 뉴스토마토 편집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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