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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희애, ‘허스토리’가 고마웠고 감사했던 이유
“위안부 피해 할머니 소재보단 그분들의 당당함 끌렸다”
“배우로서 이런 감정 느끼게 해 준 ‘허스토리’ 고맙다”
2018-06-22 16:29:39 2018-06-22 16:29:39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 ‘허스토리’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의 모습에 사실 배우 김희애는 좀 당황했다고 말한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주인공인 실제 벌어졌던 ‘관부 재판’을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에 대한 처음 감정은 당당함 이었단다. 물론 할머니들의 고통과 상처는 단순히 텍스트와 영상으로 옮길 수 있는 깊이가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건 누구라도 인지하고 있는 지점임을 김희애에게도 또렷했다. 하지만 그가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한 여성으로서 자신들에게 상처를 준 일본이란 나를 상대로 그렇게 대담하고 똑 부러지게 훈계를 하던 할머니들의 모습을 상상한 지점이었다. 너무도 멋지고 통쾌했단다. 처음 마음은 그랬다. 이건 해야 하는 영화라고. 김희애와 ‘허스토리’는 그렇게 만났다.
 
언론시사회 후 며칠 뒤 서울의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희애는 우선 웃음부터 터트렸다. 일부 매체에서 자신을 두고 전한 ‘우아함’에 민망함과 쑥스러움을 전한 것이다. 데뷔 이후 지금까지 우아함의 대명사로 꼽히는 그에게 당연히 전달될 질문이었고 그는 이런 질문에 난감해 하면서도 멋쩍은 웃음으로 손사래를 치며 ‘보통 아줌마’로서의 김희애를 전했다.
 
배우 김희애. 사진/YG엔터테인먼트
 
“그저 집에선 그냥 아줌마일 뿐이에요(웃음). 아휴, 다른 매체 기자님들이 질문을 해줘서 하하하. 저희 집 애들이나 남편이 보면 아마 웃을 거에요. 일단 저희 집 애들은 TV에서 제가 나오면 화들짝 놀라서 다른 채널로 돌려요. 저희 남편도 마찬가지고. 일과 가정에서의 김희애는 철저하게 분리돼 있어요. 그래서 사실 되게 편해요. 동네 분들하고도 마찬가지고. 찬거리 사러 마트 갈때는 그냥 아줌마에요. 배우가 하는 일이다 보니 좀 포장이 된 모습일 뿐이에요.”
 
사실 그런 우아함은 영화 속 ‘문정숙’ 캐릭터와도 조금은 맞닿아 있었다. 실제 모델인 관부 재판의 원고단 단장을 맡았던 김문숙 사장은 평범한 주부였다. 부산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던 중 우연하게 할머니들의 얘기를 듣고 지금까지 할머니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 중이다. 김희애는 그런 실제 모델의 모습을 통해 공감과 함께 몰입을 이끌어 냈다.
 
“그런 점 때문에 더 몰입이 됐어요. 60대까지 그저 평범하게 아이들 키우며 가정 주부이고 사업을 하던 분이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이런 분이 어떻게 이 일에 몰입을 하셨을까. 궁금했죠. 그저 책에서나 봤을 법한 그런 의인이나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분이 아니잖아요. 지금의 나와 그리고 주변의 모든 분들과 비슷한 분이죠. 그런 점에서 마음이 닿더라구요. 그런 점에 영화를 보신 분들에게도 큰 저항 없이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배우 김희애. 사진/YG엔터테인먼트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 먼저였다. 그 공감은 쉽게 됐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겪은 상처는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이 안될 깊이다. 그 지점은 김희애도 마찬가지였다. 아프고 눈물 나는 공감은 주변에서 입을 모아 전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김희애는 다른 감정이 먼저 와 닿았단다. 할머니들의 당당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고.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며 변하지 않고 있단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소재에 대한 사명감이나 고민은 사실 오래하지 못했어요. 이건 ‘해야한다’란 대의 명분은 아니었죠. 하지만 전 다른 점이 끌였어요. 배우지도 못하고 일생을 상처만 받아온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이 너무 끌렸어요. 너무 멋졌죠. 만약 나라면 저렇게 했을까? 할 수 있었을까? 그런 할머니들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쏟아낸 문정숙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을까? 조금은 마음이 열렸어요. 그러면서 느꼈죠. 이렇게 가까운 얘기를 왜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을까. 반성도 많이 했어요.”
 
지금도 기억이 오롯이 남는 촬영 현장은 ‘재판 장면’이었다. 몇 십 년의 연기 내공을 소유한 선배 배우들이 혼신을 다해 소화하는 모습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단다. 하루에 한 명씩 촬영을 이어갔다. 그것을 눈 앞에서 함께 지켜보며 장면을 소화하는 김희애의 체력도 점차 바닥을 향해 갔다. 하지만 너무도 다행스러웠다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고.
 
배우 김희애. 사진/YG엔터테인먼트
 
“선배님들이 재판 장면을 촬영하면서 내 뱉는 모습을 볼 때 그저 연기자 선배님들이 아닌 실제 할머니처럼 보였어요. 그 당당함으로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죠. 한 분 한 분 혼신을 다해 온 몸의 기운을 다 뽑아내 촬영을 마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감동이었어요. 내가 선배님들 나이가 돼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신인 같은 자세로 임할 수 있을까. 정말 새로운 자극이 됐어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터지더라구요.”
 
그저 선배 연기자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에 감동을 받고 마음을 다 잡은 것만은 아니다. 김희애 역시 ‘문정숙’ 단장을 연기하며 ‘허스토리’에 담긴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진심을 뿜어냈다. 그는 배역을 위해 일본어는 물론 전혀 써본 적 없는 부산사투리 그리고 헤어스타일의 변화와 체중까지 불렸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한 김희애였지만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
 
“휴(웃음) 정말 ‘하겠다’고 민규동 감독님에게 연락을 드릴 때만 해도 걱정은 조금도 없었어요. 그런데 촬영을 시작하면서 뒤늦게 후폭풍이 강하게 밀려왔죠. 너무 컸어요. 말도 못할 정도였어요(웃음). 우선 일본어가 문제였죠. 달달달 외우는 방법뿐이 없었죠. 작년에 촬영이 끝났는데 지금도 긴 일본어 대사는 외울 수 있어요. 하하하. 진짜 죽을 맛은 부산 사투리에요. 일본어야 외국어이니 뭐 좀 티가 나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사투리는 기본적으로 우리말이잖아요. 정말 너무 어려웠어요(웃음)”
 
배우 김희애. 사진/YG엔터테인먼트
 
중견을 넘어 이젠 신인 배우들에겐 ‘선생님’ 호칭을 들을 정도가 된 김희애다. 그 단어에 몸서리가 처질 정도라며 웃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고참의 위치에서 여배우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아쉬움과 작품 속에서 여배우들이 소비되는 모습과 트랜드에 아쉬운 마음도 전했다. 그래서 어쩌면 ‘허스토리’가 그에게 더 깊게 다가왔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여배우들을 위한 역할이 사실 많이 없잖아요. 작품을 촬영하면서도 남자 배우 역할이 남으면 ‘이거 누가 하지’라고 제작진들이 말해요. 그럼 난 속으로 ‘내가 머리를 확 밀고 할까’란 생각도 들어요. 뭐 재미 삼아 그런 생각을 해보지만 아쉬움은 분명 있죠.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은 욕구는 나이를 들어서도 남아 있어요. 배우인데요. 그래서 이번 여장부 스타일의 ‘문정숙’ 캐릭터가 참 와닿았나 봐요.”
 
그는 이번 ‘허스토리’가 어쩌면 자신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새로운 도전이자 전환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도 전했다. 단지 소재로서의 중요성과 의미 그리고 대의명분도 좋지만 배우로서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단 사실이 고맙고 또 고마웠단다.
 
배우 김희애. 사진/YG엔터테인먼트
 
“그렇게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해봤지만 촬영 끝나고 울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정말 펑펑 눈물이 쏟아지더라구요. 어떤 감정이 밀려와서 그랬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시원함도 있었고 개운함도 있었고. 배우로서도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준 ‘허스토리’에 참 고마워요. 또 인간으로서 몰랐던 점을 알게 해 준 것에도 감사하구요.”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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