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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녀’ 최우식, 그가 ‘악’에 목말랐던 이유
평소 왜소하고 찌질한 남자 전담…”’마녀’ 속 악역 걱정됐다”
‘거인’ 이후 극심한 슬럼프…”스타보단 배우로서 남고 싶다”
2018-07-02 13:47:12 2018-07-02 13:47:1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인터뷰 장소에서 만난 최우식. 우선 너무 놀랐다.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에서 봐왔던 최우식을 생각하면 굉장히 작고 왜소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만난 최우식은 키가 상상 이상으로 훤칠했다. 그는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1000만 흥행작 ‘부산행’에서 그가 애드리브로 내 뱉은 대사가 실제 이런 오해에 대한 해명이었단다. 그는 “’부산행’ 때 ‘내가 이래봬도 키가 180cm이야’란 대사가 애드리브였는데 이런 오해에 대한 해명이었다”고 다시 웃었다. 이런 단순한 오해처럼 그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항상 약자였다. 가녀린 몸매(?)와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그의 순둥한 얼굴은 그 오해의 원천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최우식은 좀 더 ‘깡다구’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마녀’ 속 악역 ‘귀공자’를 연기하며 그러낸 모습이 배우 최우식이 갖고 있는 마초성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단 사실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배우 최우식.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지난 달 언론시사회 이후 며칠 뒤 만난 최우식은 유쾌하고 즐겁고 또 가벼웠다. 여기서 ‘가벼웠다’는 단어는 부정적 의미보단 긍정의 표현이 더 강하다. 워낙 영화 속 모습이 그동안의 ‘최우식’과는 다른 모습이었기에 실제의 ‘가벼움’과는 좀 부딪치는 느낌이었다. 사실 최우식 본인도 그 지점이 걱정이었단다. 워낙 강하고 임팩트가 있는 악역에 대한 욕구는 분명히 강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강렬함은 스스로도 걱정이 됐었다고.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감독님 사무실로 찾아갔죠. ‘하고 싶다’가 아니라 ‘제가 할 수 있을까요?’를 몇 번은 되물었어요. 그동안 제가 해 온 작품 속 이미지가 있잖아요. 만날 얻어 맞고 도망치고 울고 찌질한 모습은 도맡아 하던 놈이(웃음) 우선 이름부터 ‘귀공자’에요. 와~ 이거 될까? 내가? 그런데 감독님이 ‘당연히 할 수 있죠’라고 하시길래. 더군다나 ‘박훈정 감독님’ 이잖아요. 믿을 수 밖에 없었죠. 내가 되는 건가? 라고 의심도 있었지만요.”
 
촬영을 하면서 그리고 작업을 해가면서 걱정이 되는 부분은 매번 박훈정 감독과 대화를 통해 풀어갔다. 점차 자신의 내면이 기본으로 담겨 있던 발랄하고 개구진 모습이 냉혈한의 ‘귀공자’와 조금씩 교집합의 범위를 넓혀갔다고. 그렇게 이해를 넓혀가다 보니 한쪽으로만 치우친 인물은 아닌 것도 다가왔다. 다양한 느낌의 ‘귀공자’, 아니 전형적인 악역의 ‘귀공자’가 아닐 수도 있겠단 확신이 들었다.
 
배우 최우식.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콤플렉스가 강한 인물이라고 봤어요. 영화 속 자윤(김다미)을 향한 질투와 부러움이 컸던 인물. 그저 환경이 만들어 낸 악인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왔어요. 사실 불쌍한 놈이죠. 넘어서지 못할 상대에 대한 콤플렉스를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에 어쩌면 제가 그동안 연기해 온 찌질한 캐릭터의 모습도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약간 제가 트릭처럼 첨가한 게 ‘귀공자’가 손톱을 자꾸 물어 뜯어요. 이거 되게 중요한 힌트인가? 하하하.”
 
그는 머뭇거리다가 ‘사실 공개해야 하나’라며 웃었다. 워낙 왜소한 체격 탓에 ‘귀공자’ 캐릭터의 콘셉트가 몇 가지가 바뀐 게 있다고 귀띔했다. 당초 시나리오와 박훈정 감독이 생각하고 떠올린 귀공자는 더 만화적인 콘셉트의 인물이었다. 흡사 완전무결한 멋짐을 뽐내는 남자 악역의 느낌이 강했었다고. 하지만 최우식의 손에 이 역할이 쥐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콘셉트 몇 개를 바꿀 수 밖에 없었단다.
 
“하하하. 이건 되게 창피한데. 원래는 되게 잘생기고 멋진 인물로 그리고 싶으셨나 봐요. 그런데 감독님도 무슨 생각이 있으신건지 저한테 배역이 왔구요(웃음). 우선 의상 피팅을 하는 날 다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셨어요. 하하하. 제 체격에 의상을 입으니 무슨 코스프레 느낌이 나는 거에요. 아이고 하하하. 더군다나 머리까지 백발로 해야 됐거든요. 감독님이 ‘안되겠다’라며 다 바꾸셨어요. 하하하. 뭐 잘 결정하신거죠. 그대로 했다간 큰일 날 뻔 했으니.”
 
배우 최우식. 사진/JYP엔터테인먼트
 
물론 연기까지 악역 코스프레는 아니었다. 박 감독은 최우식의 ‘귀공자’에 강한 만족감을 드러낸 바 있다. 영화는 극중 ‘자윤’을 연기한 김다미를 위주로 구성돼 있고 흘러간다. 이 느낌을 강하게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선 그 반대에 서 있는 ‘귀공자’의 역할이 아주 중요했다. 우선 감정적으로 흐름의 조율이 킬링 포인트였다. 강약 조절에 대한 지점이었다.
 
“만약 영화를 안보신 분들이 이 인터뷰 기사를 보신 뒤 관람을 하신다면 ‘귀공자’의 감정 연기를 잘 보시면 알 수 있어요. ‘악’을 연기하지만 어떤 지점을 넘어가지 않아요. 딱 넘어가야 할 순간에 스톱을 해요. 그건 저처럼 베테랑이 아닌 배우는 연기 중간에 놓칠 수 있어요. 그때마다 감독님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매 촬영마다 시나리오의 텍스트대로 거의 안 했던 거 같아요. 어떤 순간에는 좀 떠있는 귀공자, 어떤 순간에는 바닥으로 가라앉은 귀공자. 이런 느낌으로 작업했어요. 정말 저한테는 좋은 경험이었어요.”
 
그런 좋은 경험은 상대역인 김다미와의 호흡에서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박훈정 감독의 세밀한 연출과 디렉션도 있었지만 배우는 기본적으로 상대와의 호흡에서 보이지 않는 힘과 그 장면에서만 관객들이 느낄 수 있는 아우라를 뿜어낸다. 그는 김다미의 강단과 배우로서의 기운에 엄지손가락을 추겨 세우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배우 최우식. 사진/JYP엔터테인먼트
 
“물론 제가 선배는 맞지만 그 친구에게 뭐라고 코치를 할 수준도 아니고. 그럼에도 대단했던 건 데뷔작이고 95% 이상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분량이고. 저라면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을 거에요. 진짜 대단한 깡이에요. 배우끼리는 투샷으로 잡히는 장면에선 호흡을 나눠 먹는다고 해요. 그걸 정말 기가 막히게 잘하더라 구요. 박희순 선배님이나 조민수 선배님도 그 지점을 칭찬하시더라구요. 몇 년 뒤면 더 엄청난 괴물로 성장하지 않을까 여겨져요.”
 
그가 말한 괴물 같은 후배 김다미처럼 그 역시 지난 몇 년 동안 충무로에서 괴물 신인으로 불리던 장본인이었다. 영화 ‘거인’을 통해 각종 영화제에서 신인배우상을 휩쓸었다. 그 영화 한 편으로 최우식은 충무로 최고의 라이징 스타가 됐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거인’ 속 최우식의 존재감은 그를 극단적인 슬럼프의 세계로 이끌어 버린 지름길이 됐다고.
 
“주변에서 다들 칭찬을 해주시고 상도 정말 많이 받았었죠. 그러다 보니 이게 되게 묘했어요. ‘더 좋은 모습’ ‘더 새로운 모습’ 등에 대한 부담감이 강하게 왔었죠. 어느 순간 이게 맞는 건지 틀린 건지도 모르겠더라구요. 내 연기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지고. 이게 슬럼프구나. 그때 알게 됐죠. 정말 고생했어요.”
 
배우 최우식. 사진/JYP엔터테인먼트
 
그는 스타가 되고 싶지도 성공을 하고 싶지도 않단다. 그게 어떤 의미에선 판에 박힌 생각이고 바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그랬다. 그저 배우로서 계속 다른 옷을 입어가면서 경험을 넓혀가고 싶단다. 그 안에서 또 다른 최우식과 만날 날을 기대하고 또 기다리는 떨림을 즐기고 싶단다.
 
“그저 지금은 제가 주는 대로 가리지 않고 흡수를 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봐요. 제가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저 만의 레시피를 만들어가는 시간이고 단계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만들어 간다기 보단 지금은 딱 그런 시간이에요. 이번 ‘마녀’ 속 ‘귀공자’처럼 이런 배역을 또 제가 언제 해보겠어요. 이번에 입어 봤으니 만약 다음에도 행운처럼 다가오면? 입어 본 기억을 꺼내서 또 다른 새로운 ‘귀공자’를 만들어야죠. 즐겁게(웃음)”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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