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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물’이 적폐 불렀다…경총, 3일 임시총회 고비
김영배 14년간 상임부회장 '장기집권'…송영중 취임 직후 사무국과 갈등 '본질은 내 밥그릇'
2018-07-02 18:45:24 2018-07-02 18:45:24
[뉴스토마토 채명석·구태우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경유착 적폐로 존재감을 상실한 가운데 한국경영자총협회마저 비자금 조성 의혹에 휩싸이면서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문제의 성격은 다르지만, 두 단체 모두 ‘상근부회장의 장기집권’이 낳은 폐해가 원인이었다는 점은 동일하다.
 
김영배 경총 전 상임부회장과 이승철 전 상근부회장은 모두 내부 출신으로, 조직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 김 부회장은 1979년 경총에 입사, 1992년 정책본부장(이사), 1996년 상무, 2001년 전무에 이어 2005년 상임부회장에 올라 지난해까지 14년간 자리를 지켰다. 회장 대행 두 번을 포함해 상임부회장 연임만 일곱 차례였다. 이승철 전 부회장은 1990년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입사해 1999년 전경련으로 자리를 옮긴 뒤 2003년 경제조사부장(상무), 2007년 전무, 2013년에는 상근부회장에 올랐다. 관계나 재계 최고경영자(CEO) 출신이 맡아오던 전경련 상근부회장을 내부 출신이 차지한 것은 27년 만이었다.
 
 
각각 38년과 27년을 경총과 전경련에서 보낸 두 사람은 재계 대표인사 격인 회장을 대신해 조직의 안살림을 챙겼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인맥을 요직에 고루 배치, 조직의 모든 업무를 자신의 뜻에 맞춰 진행했고, 회장이 바뀌어도 조직은 상근부회장 체제로 운영됐다.
 
전경련의 경우 이 전 부회장이 위원회 위원장 등을 모두 독차지해 그가 자리를 비우면 모든 업무가 중단될 만큼 권한이 집중됐다. 경총도 상황은 같았다. 회계부정 및 비자금 조성설이 터진 2일, 경총은 김 전 부회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연 것으로 사태를 무마하려고 했다. 해명자료만 배포했을 뿐 경총 임원들은 하나같이 침묵했다. 이를 두고 “경총이 떠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김 전 부회장 뒤에 숨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재계 안팎에서 터져나왔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이나 경총이나 장기간 한 사람의 부회장 체제가 이어졌다. 그들이 떠났다고 해도 영향력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라면서 “그들 체제에서는 속으로는 곪아왔지만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는 부적절한 관행을 바꿀 필요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인이 들어와 잘못을 발견해도 ‘왜 우리를 건드리느냐’며 반감을 세우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고 지적했다.
 
김 전 부회장은 이날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해명에 나섰다. 그는 “민간기업에서는 특별상여금을 이사회 결의를 거쳐 지급하지 않는다”며 경총의 상여금 유용 의혹은 전혀 불법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경제단체지만 경총도 민간인 만큼 민간기업의 절차를 따랐다는 주장이다.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서도 “직원들에게 특별상여금을 주는 부분을 이사회에 (보고하는 것을)누락했기 때문에 그렇게 (기사를)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총을 바라보는 여론은 싸늘하다. 경총은 경질 위기에 내몰린 송영중 상임부회장이 문제를 지적한 뒤에야 2004년 이후 일부 사업 수입을 이사회나 총회 등에 보고하지 않고 별도로 관리하면서 이중 일부를 임직원 격려금 지급에 사용했다고 시인했고,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특히 상여금 지급 관행을 송 부회장이 제동을 걸자, 송 부회장과 사무국 간 갈등이 심화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결국 이번 문제가 돈 때문에 벌어진 파워게임이었다는 비난도 회원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김 전 부회장은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로 지목된 송 부회장의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경총을 위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3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송 부회장의 해임 안건을 다루는 임시총회가 열리는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말이 많다”는 그의 말에는 송 부회장에 대한 강한 불신이 묻어났다는 게 기자회견 참석자들의 일치된 반응이었다.  
 
당초 송 부회장 해임 안건이 쉽게 통과될 것으로 예견됐던 경총의 임시총회는 내부 비리 폭로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갯속이 됐다. 사무국의 밀실 행정에 불만을 안고 있던 회원사들도 비자금 조성 및 회계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신뢰를 하나둘 거두는 형국이다. 도적적 시비를 넘어 법적 문제로까지 비화될 경우 전경련과 같이 주요 회원사들의 연쇄 탈퇴라는 최악의 경우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회원사 관계자는 “경총 측으로부터 들은 설명과 현 상황의 괴리가 커 상황을 충분히 검토해 총회에 임할 것”이라면서 “경총의 쇄신을 원하는 회원사들이 많다면 송 부회장의 유임 등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회원사 관계자는 "경총의 주요 수입처가 회비인데, 이를 또 다른 곳에 유용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냐"며 "괜히 재계 전체로 불똥이 튈까 염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송 부회장은 이날 언론과의 연락을 끊은 채 두문불출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 측은 예정대로 송 부회장을 해임하는 한편 강도 높은 내부 개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채명석·구태우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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