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이정모의세상읽기)월드컵과 하야부사
2018-07-06 06:00:00 2018-07-06 06:00:00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1억 4400만킬로미터.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돈다는 빛의 속도로도 8분20초가 걸린다. 하지만 태양으로 탐사선을 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 태양이 워낙 밝으니 빛만 쫓아가면 길 잃을 염려가 없다. 또 열에 타지만 않는다면 정확히 태양에 착륙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태양의 지름은 지구보다 109배 큰 139만 킬로미터나 되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것은 어떨까? 서울시청 광장에서 티끌만 한 비행체를 발사해서 1만킬로미터 떨어진 뉴욕시청 광장에 놓인 지름 3센티미터짜리 구슬을 맞출 수 있을까? 터무니없어 보인다.
 
그런 일이 일어났다. 2018년 6월27일. 러시아 월드컵에서 세계 랭킹 57위인 한국이 세계 랭킹 1위 독일을 2대 0으로 꺾은 바로 그날이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3년 반 전에 발사한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 2호가 소행성 류구(Ryugu) 궤도에 안착했다. 지구-류구 거리는 지구-태양의 두 배가 넘는 3억킬로미터. 이에 반해 류구의 지름은 태양의 15만분의1에 불과한 900미터다. 이걸 3만분의1로 축소하면 서울-뉴욕 사이의 거리에 떨어져 있는 구슬이 된다. 하야부사는 사실 이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걸 해냈다. 왜냐하면 류구는 우주에 가만히 떠 있는 천체가 아니라 총알보다 열배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야부사 2호는 아직 류구에 착륙하지 않았다. 류구는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경사도 급하다. 지구와 교신을 하면서 착륙지점을 찾고 있다. 작은 탐사선이 내릴 곳은 반드시 있다. 하야부사 2호의 임무는 류구 표면의 암석을 채취해서 지구로 다시 돌아오는 것. 일본 과학자들은 하야부사 2호가 암석을 채취해 온다면 태양계의 발생 과정과 생명 탄생의 수수께끼를 해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8년 전인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로 돌아가 보자. 6월12일 C조에 속한 우리나라가 그리스에게 2대 0으로 이겼다. 그리고 6월14일 E조의 일본도 예상을 뒤엎고 카메룬을 1대 0으로 이겼다. 우리나라는 다시 16강에 진출할 것 같아 열광에 빠졌다. 하지만 일본은 의외로 월드컵 첫승에 대해 차분했다. 그들에게는 열광할 대상이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6월13일 뜬금없이 일본의 소행성 탐사선 하야부사 1호가 귀환한 것. 하야부사 1호는 2003년 5월에 발사됐다. 목적지는 3억킬로미터 떨어진 소행성 이토카와. 지구 궤도를 넘나드는 이토카와에는 태양계가 형성될 당시의 물질이 많이 남아있다. 하야부사 1호는 이토카와에 정확히 2초 동안 착륙해 암석을 채취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하야부사 1호는 이미 망가진 상태. 균형을 잡지 못했다. 급기야 지구와의 통신도 두절됐다. 우주 미아가 된 것이다.
 
2007년에 돌아올 예정이었던 하야부사 1호는 3년을 미아 상태로 떠돌다가 2010년에야 귀환했다. 그 사이에 우주를 60억 킬로미터나 떠돌았다. 지구-태양 거리의 40배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에 중국에 아시아의 우주 개발 선두 주자 자리를 내줬다. 이런 상황에서 하야부사 1호의 실종은 또 하나의 커다란 좌절이었다. 그런데 하야부사 1호가 되돌아온 것. 일본 열도는 하야부사 호의 귀환에 환호했고 우주탐험의 열기가 더 강해졌다. 하야부사 1호의 귀환은 일본 우주과학기술자와 국민에게 엄청나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선사했고 그 결과 지금 하야부사 2호가 류구의 궤도에서 착륙지를 찾고 있다.
 
이토카와 소행성의 지름은 불과 500미터, 류구 소행성도 900미터에 불과하다. 소행성이라고 모두 작은 것은 아니다. 지름 수십 킬로미터짜리 소행성도 있다. 그런데 왜 소행성 탐사선은 굳이 작은 소행성만 찾아갈까? 돌아오기 위해서다. 작은 소행성은 중력도 작다. 중력이 작으면 탈출 속도가 낮다. 따라서 탐사선의 추진력만으로도 소행성에서 탈출할 수 있다.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아시아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조별리그를 통과해 아시아의 체면을 살려준 일본이 16강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인 벨기에에 패해 탈락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하야부사 2호가 있다. 우리나라는 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정작 아쉬운 것은 따로 있다. 우리는 아직 소행성 탐사는 꿈도 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야부사 2호가 2020년 말 무사히 귀환하기를 빈다. 2030년에는 문재인 대통령 뜻대로 남북한이 공동개최하는 평화 월드컵이 열리고 이때쯤에는 우리도 우주 탐사선을 발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penguin1004@me.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