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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20년, 중단 10년’···금강산 관광 재개 희망의 빛 밝힌다
정치·외교 걸림돌 완화로 분위기 고조, 현대 "갈수 있길"
2018-07-10 17:06:56 2018-07-10 17:17:48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야. 관광 사업이 단순한 수익 사업 차원을 넘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 정치적인 부담이 적은 일들부터 시작해 자주 만나면 서로를 알게 될 기회도 많아지게 되지. 그러면 서서히 경계심도 늦춰지게 되고 신뢰감도 쌓이게 되지.”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생전 남북경제협력사업의 첫 물꼬로 관광 사업을 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경협을 통해 수익을 얻으려면 남북 관계가 안정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평화산업인 관광 사업만한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업 중단 후 남북 대화도 끊겨
11일은 금강산 관광사업이 중단 된 지 10년이 된다. 올해는 사업이 시작된 지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금강산 관광이 완전 또는 부분 중단된 것은 1999년과 2003년, 2008년 등 세 차례였다. 앞서 두 차례는 남북간 대화로 금세 재개했다. 하지만 2008년 7월11일 관광객 고 박왕자씨 피격사건으로 벌어진 세 번째 중단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후 남북 또한 사실상 대화를 끊고 10년간 대치 상태를 유지해왔다.
 
사업이 진행된 1998~2008년 기간 동안 금강산을 다녀온 관광객 수는 195만5951명으로, 관광객 왕래와 사업자간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남북 주민 간 이질감을 낮추는 데 기여했다. 양측간 가교 역할도 담당해 2000년 남북정상회담(6·15공동선언)을 견인했으며,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및 남북교류협력 활성화를 추동했다. ▲장관급 회담 ▲적십자회담 ▲철도 및 도로연결 실무협의회 등 중요한 당국회담이 금강산에서 개최되어 남북관계 개선에도 기여했다. 정 명예회장의 의도는 그대로 들어맞았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10년을 주기로 부침을 반복해왔다. 29년 전인 1989년 1월23일 정 명예회장이 대기업 총수 가운데 처음으로 방북했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북측에 금강산 개발사업을 제안해 ‘금강산 관광 및 시베리아 공동 개발과 원동지구 공동 진출에 관한 의정서’ 체결을 이끌어냈다. 이후 1998년 11월18일 현대는 실향민과 관광객, 승무원 등 135명을 태운 금강산 첫 관광선 ‘현대 금강호’를 동해항에서 금강산으로 보냈다. 그리고 10년간 사업이 진행되다가 2008년 중단됐고, 현재까지 이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10년 부침’ 세번째···재개 기대감 최고조
올해 들어 상황은 반전됐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남측의 대북 정책이 강경 대응에서 대화로 전환됐고, 핵미사일 도발로 위기를 조장해 오던 북측이 자발적 비핵화를 제시하는 등 전향적으로 태도를 바꾸면서 남북간 대화의 물꼬가 텄다.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두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개최로 이어졌다. 북한과 대립각을 세워왔던 보수층들도 남북 갈등 무드가 화해되는 것을 반기는 분위기다.
 
무엇보다도 남북경협을 반대해왔던 미국 정부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북미 정상회담을 가짐으로 개최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금강산 관광을 포함한 남북경협사업이 부진한 데에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다는 정치·외교적 대립이 더 큰 원인이었다. 이를 놓고 볼 때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남북경협, 금강산 관광사업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재계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에서 시작해 개성공단 폐쇄로 이어진 지난 10년은 남북 경협에 있어 ‘잃어버린 10년’이었다”면서 “서로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남긴 만큼 남북 관계의 빠른 진전을 위해서라도 경협은 조속히 재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귀하는 ‘현대맨’, 남북경협 준비 전념
10년 만에 남북경협 재개를 위한 최고의 기회를 잡은 현대그룹도 오랜만에 활기찬 움직임이 엿보인다. 지난 5월8일 현정은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현대그룹 남북경협사업 TFT’를 가동했다. 현 위원장 아래에 현대아산 대표와 그룹 전략기획본부장이 대표위원을 맡아 실무를 지휘하고, 각 계열사 대표들은 자문역할을 담당한다. 실무조직에 현대아산 남북경협 운영부서와 현대경제연구원 남북경협 연구부서, 전략기획본부 각 팀, 그룹 커뮤니케이션실이 배치됐다. 남북경협사업 최고 의사 결정기구로 주요 전략과 로드맵을 짜고 있다. TF는 매주 1회 정기 회의를 열고 사안이 발생할 경우엔 수시로 회의를 소집하고 있다.
 
과거 남북경협사업을 주도했던 ‘현대맨’들도 현역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아산은 지난해 말 명예퇴직한 김한수 이사를 최근 복귀시켜 TF내 ‘북한관광총괄’을 맡겼다.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실무를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그는 또한 현대아산의 ‘금강산팀’도 이끌고 있다. 과거 고려산업개발 기획실에서 근무하던 김 이사는 현대아산이 설립된 해인 1999년 회사를 옮긴 뒤 퇴직할 때까지 줄곧 대북사업에서 경력을 쌓았다. 다음달 말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앞두고 금강산 면회소 등의 시설을 손보기 위해 지난 9일 파견된 ‘시설 개보수단’ 18명에 참여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를 시작으로 현대그룹은 순차적으로 남북경협사업 부진으로 물러나야 했던 대북사업 전문가들을 재입사시켜 TF를 보강한다는 계획이다.
 
현대그룹은 지난 2000년 8월 북한과 체결한 ‘경제협력사업권에 관한 합의서’에 따라 전력·통신·철도·통천 비행장·댐·금강산 수자원·명승지(백두산, 묘향산, 칠보산) 관광 등 ‘7대 대북사업 독점권’을 보유하고 있다. 합의서에 따르면 현대는 이들 분야에서 30년간 개발, 건설, 설계, 관리, 운영과 이에 따른 무역 등을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대북 사업 중단으로 그룹의 위상마저 중견기업으로 내려앉은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 사업을 재개해 남북경협사업 선도기업으로서 영광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현 회장은 “남북경협사업을 통해 남북 화해와 통일의 초석을 놓고자 했던 고 정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의 유지를 잘 받들어 계승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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