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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파업에 뒤숭숭한 '현대시' 울산…"죽은 도시 됐다"
조선업 위기로 직격탄…현대중공업과 노조 양보없는 대립에 활력 잃어
2018-07-22 16:40:26 2018-07-22 16:40:26
[울산=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날씨도 덥고 손님도 없고 웬만하면 저녁 9시 전에 장사를 파하지요." 지난 20일 찾아간 울산광역시 동구 명덕시장내 국밥 식당에서 여주인이 순대국밥을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다. 명덕시장은 현대중공업 본사 정문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이 곳에는 순대국밥이나 돼지국밥, 돼지수육, 칼국수, 추어탕, 해장국 등을 파는 식당들이 10여개 붙어 있다. 한창 때면 줄을 서서 먹어야 할 만큼 붐볐던 지역 명소였다. 지금은 한창 저녁장사를 하는 저녁 8시에도 술을 마시거나 국밥을 먹는 손님은 드물었다. 바로 앞이 현대중공업인데 퇴근 후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한잔하는 시끌벅적한 풍경이 없었다. 주인은 "시장이 한 30년 됐는데 4~5년 전부터는 장사가 안된다"며 "요즘은 그냥 오는 분들만 가끔 온다"고 우울해했다.
 
울산광역시 동구 명덕시장은 현대중공업 정문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지만 점심이고 저녁이고 손님이 드물었다. 사진/뉴스토마토
 
그날 울산은 한낮 기온이 38도까지 올라간 무더위에 풀이 죽었는지 도시 자체가 활력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마침 현대중공업 노조는 전날부터 오는 24일까지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1994년 이후 28년 만이다. 지난 2014년부터 조선업이 불황을 겪으며 현대중공업이 부진에 빠지자 울산, 특히 동구는 경제가 쇠락했다. 이번 파업으로 시내 분위기는 더 침울해졌다. 조선업이 황금기를 보내던 2010년대 초 동구는 전국에서 가장 잘 사는 동네였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이 있고, 북서쪽으로는 염포산을 끼고 북구의 현대자동차도 인접했다. 사람과 재물이 몰렸다. 지역 소득수준으로 따지면 전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우스갯소리로 울산을 '현대시', 동구를 '현대구'로 부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그 영광은 찾을 수 없다. 울산 동구청에 따르면, 동구 조선업 종사자 중 51.8%가 현대중공업 직원 또는 그와 연계되는 업체 소속이다. 현대중공업이 몇년째 수주 부족으로 실적을 못 내자 2015년 2만8000명이었던 현대중공업 정직원은 올해 5월 1만5000명으로 줄었고, 같은 기간 협력사 직원도 3만9000명에서 1만3000명으로 급감했다. 동구 인구도 18만명에서 16만여명으로 감소했다. 현대중공업이 동구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지역 경제가 파탄 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울산광역시 동구 전하동 일대. 왼편으로 현대중공업 조선소가 보인다. 사진/뉴스토마토
 
현대중공업 앞 전하동 일대에는 가게를 임대하겠다는 안내가 여기저기 나붙었다. 이곳은 오지벌 삼거리를 중심으로 식당과 주점, 유흥업소들이 즐비했던 동네다. 한창 때는 퇴근 시간이나 한주를 마치는 금요일 저녁이면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도 지금은 가게에 저녁 손님이 없다. 그나마 장사가 되는 곳들도 마련된 테이블의 반만 찼다. 주점과 노래방의 네온사인은 여전히 빛났지만 공치는 날이 허다하고 한다. 오지벌 삼거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마냥 가게를 놀릴 수 없어 문을 열어 놓는다"며 "요즘 이 동네서 새벽까지 술 마시는 사람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토로했다.
 
택시를 타고 동구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달렸다. 일산해수욕장이 위치한 일산동 일대다. 해수욕장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식당이 많고 현대중공업에서도 차로 10여분 남짓이라 동구 상업의 중심지라고 한다. 평소라면 편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었을 사람들이 손사레를 쳤다. '현대중공업'이나 '파업'이라는 말을 꺼내는 게 여간 망설여지는 게 아니었다. 택시기사 김모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울산 처음이냐? 놀려면 일산동보다 남구 삼산동으로 가아지. 울산까지는 뭔 일인가?" 현대중공업 이야기로 화제가 붙자 그는 한숨부터 뱉었다. "현대중공업이 휴가를 시작하면 울산이 텅텅 빈다고 할 정도였는데 요즘 상황이 많이 안 좋다"며 "조선업이 어렵다 어렵다 해도 체감효과가 크지는 않았는데, 진짜 1~2년 사이에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의 파업 이야기에서 수시로 "화딱지 난다"는 말을 썼다. "내 친구들도 거기 노동자들 많고 현대중공업이 수시로 사람 자른 것은 맞는데 그래도 회사가 살아야지"라며 "결국 현대 때문에 여기까지 온 동네인데 회사가 잘 돼야 도시가 다시 살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경영이 어려워진 현대중공업의 수시 구조조정과 그에 따른 노조의 파업 중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하기 어렵다. 현대중공업이 2015년 이후 올해까지 매년 네다섯 차례의 구조조정을 한 게 사실이지만, 노조도 5년째 매년 파업을 하고 있다. 울산 시민은 현대중공업이 지역경제에 많이 기여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시민 상당수가 회사 구조조정의 대상이자 가족이며 친구다. 도시를 살리는 게 먼저냐, 일자리를 잃는 가족과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이 먼저냐에 따라 침체된 경제와 때마침 터진 파업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졌다. 일산동에서 카페를 하는 김모씨는 "솔직히 울산이나 동구 입장에서 보면 5년째 파업이니 뭐니해도 구조조정 영향이 경제에 더 안 좋았다"며 "현대중공업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게 지역 민심"이라고 전했다. 반면 편의점을 하는 박모씨는 "솔직히 노조원 자기들만의 파업 아니냐"며 "문재인 정부 믿고 배째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지역 기업인들도 현대중공업 노조의 파업으로 뒤숭숭했다. 노조의 신뢰를 잃은 현대중공업을 꼬집으면서도 이번 파업이 울산 또는 인접한 산업군의 다른 노조의 단체행동에도 영향을 미칠까 우려했다. 한 울산 기업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잘 나갈 때 이익을 제대로 사용 안하고 조선업황이 어려워진 후에도 오히려 지주회사를 세우고 분사를 강행해 경영세습에만 몰두한 게 사실"이라며 "노조 요구가 무리라고 해도 그동안 노동자에만 고통을 전담시킨 사측 또한 과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다른 관계자는 "조선업 일감 부족이 지난해 바닥을 치고 이제는 수주가 회복되는 상황에서 회사 정상화가 시급한데 노조가 비협조적 자세로 나오니 일이 더 꼬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19일 현대중공업 노조가 올해 임단협 난항을 이유로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사진/뉴시스
 
울산=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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