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방문에 맞춰 대규모 투자·고용 방안을 내놓으려던 삼성전자의 계획이 정부 엇박자 논란으로 무산됐다. 삼성으로서는 오해를 사지 않을 적당한 시점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됐다. 다만 이미 계획안이 마련된 만큼 늦어도 이달 안으로 발표될 전망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6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방문 일정을 마친 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 부총리도 6일 삼성전자 방문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발표 내용이나 시기는 전적으로 삼성에 달렸다"면서도 "그리 멀지 않은 시간 내에"라는 희망적 단서를 달아 발표가 조만간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 역시 "언제든 발표가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말해, 내부적으로 투자 규모와 방향 등에 대해 최종 조율이 끝났음을 뜻했다.
앞서 김 부총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면담이 예정된 상황에서 "정부가 재벌에 투자를 구걸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비판과 함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상고심을 앞둔 상황에서 거래처럼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이 정치권 안팎으로 제기되면서 삼성은 속앓이를 해야 했다. 한국과 중국, 베트남, 인도를 축으로 반도체와 휴대전화, 가전 등의 주요 생산기지를 구축한 상황에서 따로 내놓을 추가 투자안도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삼성전자 인도 노이다 공장 준공식을 직접 찾아 '국내에서의 투자와 일자리 확대'를 요청하고, 백운규 산업부 장관과 김 부총리가 차례로 삼성을 찾으면서 정부의 갈증을 해갈할 대규모 투자안을 어떤 방식으로든 내놔야 했다.
삼성으로서는 이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구속 수감되는 악몽이 있었던 만큼 정부와의 관계 정상화가 절실했다. 정부 역시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최저임금 등의 논란마저 거세지면서, 이를 무마할 재계의 통 큰 투자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이에 삼성은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로 키운다는 복안과 함께 평택 반도체 제2생산라인 건설 확정 등의 100조원이 훌쩍 넘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마련한 것으로 정부와 삼성 측 복수의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날 김 부총리와의 면담에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가 삼성 측 참석자로 포함된 것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정부의 혁신성장을 돕기 위해 벤처 육성 및 협력사 상생 방안 등도 준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발표를 연기케 했던 '투자 구걸 제동설'에 대해 당사자로 지목된 청와대가 "사실무근"이라고 밝히면서 삼성의 부담도 어느 정도는 덜어졌다는 평가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구걸하지 말라'고 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사실무근"이라며 "단지 김 부총리가 삼성을 방문할 때 (삼성의)투자계획 발표 시기나 방식에 대해 청와대와 의견 조율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간의 갈등이 표면화된 적도 있어 의문은 여전하지만, 김 부총리의 삼성 방문 당일 청와대가 제기된 의혹을 부인했다는 점에서 삼성의 부담이 한결 덜어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를 반영하듯 이 부회장은 김 부총리와의 간담회 직후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내 반도체 연구소를 찾아 임직원들을 격려하는 등 그동안 의식적으로 멀리 했던 국내 행보에도 눈을 돌렸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집행유예 석방 이후 해외 출장만을 다니다, 지난달 문 대통령과의 인도 노이다 공장 회동을 시작으로 이날 김 부총리 일행을 직접 맞이하는 등 대외 공식활동을 재개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문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경영 복귀의 명분을 얻은 만큼 이 부회장의 추후 행보가 빨라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시선에 따라 삼성을 비롯한 재계 전체가 술렁이는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대기업을 적폐로 보는 시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기업들의 체감 환경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는 정부가 원하는 투자와 성장에 분명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또 "삼성도 지금은 정부 눈치를 보지만 이것이 원해서 그런 것이겠냐"고 반문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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