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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행위로 전입 5일 만에 자살한 신병…법원 "보훈보상 인정"
"적절한 휴식 보장 못 받은 상태서 선임병의 가혹행위 등 압박이 자살 원인"
2018-08-12 09:00:00 2018-08-12 09:00:00
[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심한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 부담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공군 신병에 대해 법원이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유진현)는 병역복무 중 숨진 A씨의 아버지가 서울지방보훈청을 상대로 낸 보훈보상 대상자 요건 비해당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의 동기들이나 선임병들의 진술 내용을 보면 군 입대 전 학업 중단 문제로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았고 그러한 사정이 군에 입대한 원인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면서도 "동기들의 진술 내용에 의하면 부모와의 관계는 입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회복된 것으로 보여 관계 악화를 비관해 자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A씨의 동기들은 A씨가 내성적인 편이어서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성실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고, 잘하려는 의지가 강했다고 진술했다"며 "특히 당시 다른 병사가 A씨에게 영화를 추천했더니 특박 나가면 보겠다며 수첩에 영화 제목을 적어놓기까지 진술하는 등의 내용에 비춰보면 군에 입대하기 전이나 입대하면서부터 자살을 결심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사건 당시 A씨는 적절한 휴식시간이나 수면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경계근무에 투입돼 신체적으로도 상당한 피로가 누적됐던 것으로 보이고, 이 상태에서 선임병들은 수시로 암기상태를 점검한다는 명목으로 A씨에게 끊임없이 정신적으로 압박을 가한 탓에 A씨가 이 같은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결국 A씨의 사망은 심한 스트레스 및 과중한 업무 부담 등 정서적 불안요소가 가중되면서 자유로운 의사가 제한된 상태에서 이뤄진 행위였다고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A씨는 1996년 2월 입대해 4월 방어중대 소대 경비병 보직으로 복무했다. 그는 소대로 전입하자마자 선임병들로부터 약 150~200명의 지휘관과 참모의 차량번호 및 관등성명, 소대병사 기수표, 초소 전화번호, 보초 일반수칙 및 특별 수칙, 항공기 식별 및 보고요령 등을 암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선임병들은 수시로 암기상태를 점검해 질책했으며, 일부 고참병들은 취침시간 이후 소대 뒤편 공터에서 전입 신병들이 내무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선임병들을 집합시켜 신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머리 박기를 시키는 등 질책했다.
 
당시 후임병을 괴롭히기로 유명했던 상병 B씨는 1996년 4월 27일부터 3일 동안 A씨와 같은 시간대에 경계근무를 하면서 수시로 근무초소로 전화를 걸어 차량번호 및 사용관 관등성명을 점검했다. A씨가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질책을 했으며, 동료들은 A씨의 사망 당일인 1996년 4월29일에는 그가 점심식사도 하지 않고 화장실에서 차량번호를 암기하며 힘들어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밖에 A씨는 단독으로 초소근무를 시작한 13일 동안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면서도 근무시간 사이에 적절한 휴식시간이나 수면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다음 근무에 투입됐다.
 
결국 A씨는 헌병대대 고가초소에 단독으로 투입돼 경계근무를 하던 중에 초소 2층 중간 난간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의 아버지는 아들을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해달라고 보훈처에 신청을 냈다. 그러나 보훈처는 평소 A씨가 내성적인 성격과 대학 중퇴 등으로 부모님과 갈등으로 고민해 온 것으로 확인되고, 군에 입대해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감내하기 어려운 정도의 극도의 스트레스 환경에 처해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구체적인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A씨의 아버지는 소송을 냈다.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은 군인이나 경찰·소방 공무원으로서 국가의 수호·안정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을 재해사망군경인 보훈보호대상자로 정한다. 그중에는 군인 또는 의무복무자로서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관련한 구타, 폭언 또는 가혹행위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돼 자유로운 의지가 배제된 상태에서 자해행위로 인해 사망했다고 의학적으로 인정된 사람도 포함돼 있다.
 
서울행정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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