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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부모·장모 간첩누명으로 실직한 아들·사위…국가가 재산상 손해도 배상해야"
2018-08-12 09:00:00 2018-08-12 16:46:09
[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전두환 정권 당시 고정간첩 누명을 씌워 언론을 통해 실명과 사진을 공개한 이른바 '남매간첩단' 사건 피해자의 아들과 사위에게, 국가는 위자료는 물론 재산상 손해까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당시 수사기관이 기소하기 전 피해자들 검거 사실을 언론에 대대적으로 발표하면서 피해자들의 이름과 나이, 사진 등이 보도되는 것을 사실상 방치하는 바람에 아들과 사위가 다니던 직장에서 나올 수밖에 없게 된 손해를 배상하라는 취지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수사기관의 고문에 허위자백을 해 간첩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나수연·나진씨 남매 중 수연씨 아들과 사위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이들의 재산상 손해배상 청구 부분을 기각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재판부는 고정간첩의 아들과 사위라는 낙인과 재산상 손해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수의 언론이 이들 남매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공개하고, 이들이 고정간첩이라는 내용을 중요사건으로 여러 차례 반복해 보도했다"며 "남매에 대한 대대적인 언론보도로 이들은 재심대상 판결이 확정되기 전부터 직장에서 종전에 하던 업무에서 완전히 배제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재심 대상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도 판결 내용 중 남매 한 사람이 이들이 근무하고 있던 회사의 거래정보를 입수해 고정간첩에게 제공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이들이 근무하던 회사들로부터 지속적으로 사직하라는 압박을 받아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당시 언론에서 사위의 실명과 직책까지 그대로 적시해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영업비밀 유출 등의 혐의로 회사로부터 고발당해 수사를 받게 될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결국 이들을 각각 다니던 회사를 사직했으며, 사직하고 정권이 바뀐 뒤에도 남매의 아들과 사위라는 사실 및 고정간첩에게 회사 거래정보를 유출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자신들의 학력이나 경력에 걸맞은 직장에 취업해 정상적인 직업 생활을 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불법행위와 이들의 재산상 손해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했다.
 
간첩 누명을 쓴 나씨 남매는 1981년 3월 불법체포돼 가혹행위를 당한 뒤 기소됐다. 1982년 4월 항소심에서 고정간첩 범죄사실로 각각 징역 7년과 15년을 선고받고 상고했지만 형이 확정돼 복역하다가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두 사람은 재심을 청구해 2014년 6월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재심대상판결의 범죄사실 중에는 남매 중 한 명이 아들과 사위 회사의 거래 업체 명단을 지령 받아 간첩활동을 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앞서 1심은 정씨와 김씨의 재산상 손해를 인정해 이를 국가가 위자료와 함께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들 정씨의 경우 위자료 1억원에 직장을 잃은 34세부터 도시 일용노동자 가동연한인 만 59세까지의 일실수입 2억9900여만원 등 3억9900여만원을, 사위 김씨에게는 위자료 5000만원과 39세부터의 일실수입 3억2600만원 등 총 3억7000여만원을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2심은 "이들은 소속 회사로부터 해고당한 것이 아니라 사직한 것으로 보이고, 국가가 사직에 관여했다고 볼 만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면서 재산상 손해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 "이들이 사직하게 된 주된 이유는 소속회사의 사직 종용이나 압력에 기인한 것으로 판결의 범죄 사실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사직한 후에 실제로 국회의 보좌관으로 활동하거나 축산회사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사직 이후 취업의 기회가 완전히 박탈됐다거나 소득활동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씨 등이 상고했다.
 
대법원 전경. 사진/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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