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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의 재계시각)은산분리가 삼성을 위한 것?
이재용 부회장 "금융사업 세계 1등 못할 것 알아"
2018-08-12 17:16:13 2018-08-12 17:19:54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은산분리(산업자본이 의결권이 있는 은행 지분의 4% 초과 보유를 제한하는 제도) 규제 완화를 언급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특정기업, 즉 삼성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배경으로 지목하는 루머가 확산되고 있다.
 
삼성은 침묵으로 대응하고 있다. 루머 자체가 말도 안 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삼성 내에서조차 이 부회장이 정말로 은행 설립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는 시선이 강하다. 이에 대해 전·현직 삼성 고위 임원들은 이 부회장이 금융사업을 보는 시각은 외부에서 아는 것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두번째)이 6일 경기도 평택 소재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간담회를 마친 후 직원식당에서 오찬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 부회장은 ‘삼성’의 전체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한다. 최고경영자(CEO)로서 사업을 뜯어보는 게 아니라 한 발 뒤에서 조정자 및 최종 결정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확고한 까닭에 굳이 전면에 나설 필요도 없다. 임원들이 밝힌 이 부회장이 그려나가는 미래 삼성의 기준은 “1등이 될 수 있는가”의 여부다.
 
석유화학 부문 계열사 매각이 대표적이다. 이 부회장이 이를 처음 임원들에게 언급한 것은 지난 2008년 그가 전무였던 시절이다. 당시 이 부회장은 한 임원을 불러 “삼성에는 삼성전자와 삼성후자가 있다는 얘기 들으셨냐”면서 “석유화학 계열사를 팔아야겠다”고 했단다. 당시로서는 소위 잘 나가던 계열사들을 왜 팔아야 하느냐는 질문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은 여러 이유를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가 이 부문 세계 1위인 독일 바스프(BASF)였다. 바스프는 난공불락으로 평가된다. 해당 임원은 “이 부회장은 삼성이 모든 역량을 다 쏟아 부어도 석유화학은 바스프를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면서 “그러더니 그나마 모든 것을 걸고 따라갈 수 있고 우리가 1등이 될 가능성이 있는 전자와 IT에 집중하자고 했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은 이 뜻을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알렸고, 그가 쓰러지기 전에 화학과 방위사업 계열사 매각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전·현직 임원들은 이 부회장이 금융사업도 아무리 잘해봐야 삼성이 1등을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이 부회장은 금융사업의 미시적인 면에 대해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대신 큰 그림을 보겠다고 했다. 그룹 차원에서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1등이 되지 못할 사업은 과감히 정리할 수 있다는 뜻으로, 금융 계열사도 예외는 아니다. 말 그대로 선택과 집중이다. 물론 지분 관계 때문에 결정을 쉽게 내릴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부회장은 마지막에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계속해서 함께 하든, 분리하든 사업은 실패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시대 흐름에 따라 금융사업도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이 부회장은 이를 위해 금융 계열사 사장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주문을 한다고 한다. 전직 임원은 “이 부회장은 앞으로 어떻게 사업을 해나가야 할지, 미래 금융사업은 뭘 해야 할지 생각해 보라고 늘 이야기한다”면서 “이 부회장의 주문은 은행 설립이나 경쟁 계열사 인수·합병(M&A)과 같은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고 설명했다.
 
삼성 각 계열사들은 미래전략실 해체로 각자도생을 하고 있고, 금융 계열사도 조만간 홀로서기를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금융 지주사 설립 건도 금융 계열사 사장들이 먼저 제안하고 이 부회장을 설득해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임원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구조개편을 한다면 삼성은 구멍가게다. 그러고 싶어도 이미 단계를 넘어섰다”면서 “이 부회장과 삼성은 정말로 생존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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