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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화학 잊어라…바이오·건설소재·IT로 영역 확장
중국·신흥국 범용제품 자급률 높이자 고부가치로 '승부수'
2018-08-13 16:51:20 2018-08-14 00:01:48
[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환경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지만 이는 모두에게 같은 조건입니다."
 
LG화학 박진수 부회장은 지난 3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선제적인 변화와 과감한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이 같이 말했다. LG화학은 지난 2014년부터 수처리 사업을 비롯해 제약·바이오, 팜한농(옛 동부팜한농) 등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힘을 쏟고 있다.
 
어려운 환경은 비단 LG화학만의 고민은 아니다. 유가 변동성에 따른 원재료 가격의 불확실성 증대, 업황 사이클이 실적을 좌지우지하는 구조적 한계는 국내외 화학업계가 안고 있는 공통의 고민거리다. 지난 2014년을 기점으로 글로벌 화학기업의 M&A가 매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특히 최근 들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시장지배력 강화라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전략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종산업으로 사업을 넓히거나 유망한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하는 식이다.
 
이런 흐름은 화학업계와 이종산업 간 M&A 거래 건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양 산업 간 M&A 거래건수는 666개로, 전체 인수합병 거래의 77.1%를 차지했다. 지난해 화학기업이 인수한 상위 10개 업종, 391개 기업 가운데 화학 관련 기업은 198개로 전체 M&A의 50.6%에 불과했다. 나머지 절반은 제약·바이오(54곳), 자원·에너지(35곳), 금융·투자(22곳), 건설소재(18곳), 정보통신(17곳), 전기전자(14곳) 등 이종산업이 차지했다.
 
자료/삼정KPMG 경제연구원
 
화학기업이 인수하는 업종의 연평균 증가율을 보면 이종산업 선호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건설소재가 45.6%로 가장 높았고, 정보통신(29.7%), 제약·바이오(21.2%), 기계장비(18.9%), 전기전자(15%)의 순이다.
 
이들 업종의 공통점은 화학업계와 융합 사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정보통신 분야는 언뜻 보면 연관성이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최근 각종 정보통신 기기 센서에 화학기술을 접목하고, 생산에서도 화학공정에 IT 기술을 접목하는 사례가 늘면서 M&A 사례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건설소재 역시 같은 이유에서 화학업계가 M&A 대상으로 주목하고 있다. 건축 구조물의 고층화, 대형화, 첨단화에 따라 고강도, 고내구성 등 특별한 기능을 요구하는 건설용 화학소재 개발이 주목 받으면서 관련 업종의 기업 인수가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화학업종 간 인수합병도 과거와 다른 양상이다. 합성고무와 합성섬유, 기초석유화학, 산업용가스, 범용플라스틱 등 기술 진입장벽이 낮은 분야는 M&A 연평균 증가율이 두 자리 수에서 심지어 세 자리 수대로 역성장을 기록했다. 이와 반대로 고부가 특수화학(스페셜티), 농화학, 코팅·페인트 분야 기업 인수는 연평균 증가율이 5~6%대다.
 
인수합병 시장에서 범용석유화학 제조사의 인기가 시들해 지고, 고부가가치 제조사가 뜨는 것은 시장환경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석유화학 기업들의 생산량 확대에 따라 자급률이 상승하고 있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회원국들이 대규모 석유화학 인프라 투자에 나서면서 외부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중동 역시 원유 생산 일변도에서 탈피해 원료 원가경쟁력을 바탕으로 석유화학 사업을 강화하는 추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미국과 유럽 등 '전통의 강호'들은 굵직한 인수합병을 성사시키며 지속성장의 토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미국 다우케미칼과 듀폰이 합병하는 '세기의 M&A'가 이뤄졌고, 지난 6월에는 독일 화학·제약업체 바이엘이 미국 종자회사 몬산토 인수를 마무리했다. 아울러 독일 농화학기업인 바스프는 지난 8일 바이엘이 몬산토를 인수하면서 처분하는 채소종자 사업 등을 매수하는 등 사업 재편을 활발하게 추진 중이다.
 
임두빈 삼정KPMG 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화학 산업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시장지배력 강화 측면에서 한발 더 나아가 특정 사업부를 인수해 사업을 다각화 하거나 유망한 기술기업을 선점해 중장기적으로 육성할 사업 방향을 설정하는 등 M&A를 사업재편 수단의 하나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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