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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의 재계시각)4년 만에 조부 제사 절 올린 장세주 회장
4000억원대 사재 환원, 비움의 리더십 교훈
3대째 기업 문화 이어져, 형제경영 굳건
2018-09-09 14:29:54 2018-09-09 16:31:58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동국제강 창업주인 대원 장경호 회장 43주기 추모일인 9일 장세주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한 자리에 모였다. 장세주 회장은 출소 후 4년여 만에 조부 제사상에 절을 올렸다.
 
재계와 동국제강그룹 등에 따르면 이날 장경호 회장 제사는 그가 생전에 설립했고, 15일간 열반 끝에 별세했던 서울시 용산구 남산 대한불교관음종 대원정사에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에도 알리지 않고 가족 행사로 진행되지만, 이 날 제사에는 장세주 회장과 장세욱 부회장, 장선익 이사 등 가족 친지들이 대부분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경호 동국제강 회장이 생전 “국가와 사회에서 얻은 이익은 다시 사회의 공약을 위한 일에 환원해야 한다”며 사재 환원을 선언하고 있다. 사진/동국제강
 
장경호 회장은 재계에서 ‘한 우물 경영’과 ‘비움의 리더십’을 실천한 기업가로 기억되고 있다. 일본 유학길에서 선진문물을 접한 뒤 학업보다 국가와 국민을 살릴 수 있는 사업이 먼저라고 중도 귀국한 그는 1949년 조선선재공업을 설립하며 철과 인연을 맺었고, 1954년 7월에는 동국제강을 설립했다. 동국제강을 설립하면서 그는 ‘앞으로의 사업은 자손들도 긍지를 갖고 이어받을 수 있는 사업,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애국사업을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바로 철강 사업이었다.
 
큰돈을 벌었지만 장경호 회장은 철저한 근검, 절약 생활을 실천했다.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고, 어려운 국민들을 생각해 하루에 한 끼 또는 두 끼만 먹고 일을 했다. 멀쩡한 양복 한 벌 없이 무명옷과 검정 고무신에 만족하고 공장에 갈 때면 늘 길가에 떨어진 못과 나사를 주워 다닌 그의 모습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사업에 대한 투자는 과감하고 아낌없이 진행했다. ‘무모한 도전’이라고 여겼던 부산 용호동 앞바다 매립 및 대규모 사업장 공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영위할 수 있는 사업의 크기를 아는 기업가였다. 1964년 동국제강 부산제강소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고로를 포함한 종합제철소 건설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자 “종합제철소는 민간 기업이 하기에는 역부족이므로 국책사업으로 추진돼야 한다”며 사양했다. 대신 박태준 회장이 포항제철소를 성공적으로 준공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지원했다. 전자·방위사업 등에 참여해보라는 정부의 권유가 있었지만 장경호 회장은 “철강사업 만큼 대장부에 걸맞은 사업은 없다”며 모두 거절했다.
 
장경호 회장의 최대 업적은 재산의 사회 환원이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 1975년 7월10일 소유하고 있던 주식, 임야, 전답, 대지, 건물 등 30억6300만원의 전 재산을 사회로 환원한다고 발표했다. 현재 가치로는 4000억 원이 넘는 돈이었다. “나의 모든 재산은 나의 것이 아니다. 잠시 위탁관리 할 뿐이다. 그러므로 한 푼도 헛되이 쓸 수 없다”는 말을 실천했다.
 
장경호 회장은 손자들을 불러 놓고 사람됨과 기업인의 자세를 가르쳤다고 한다. 장세주 회장에게는 “동국제강은 나의 것도 너희들 것도 아니다. 이 나라의 부강과 민족을 위해 세웠으니 이 나라의 것이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존립할 수 없었으니 동국제강은 그들의 것이다”라고 자주 말했다. 단순한 장사꾼 재주를 물려준 것이 아니라 구국의 철학과 기업가 정신을 물려주고자 한 것이었다.
 
장경호 회장의 경영철학은 3대째로 이어져 동국제강그룹의 고유한 기업문화로 자리 잡았다. 여전히 동국제강은 철강 사업에 집중하고 있으며, 숙원이었던 고로 사업은 브라질에서 성공적으로 추진, 올해 흑자를 달성할 전망이다. 장세주·장세욱 형제와 전문경영인 경영체제는 굳건하며, 1994년 노사의 항구적 무분규 선언 후 24년간 평화적인 노사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장세주 회장은 지난 4월30일 출소 후 아직까지 공식행사나 경영일선 전면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그동안 못했던 개인 생활을 즐기면서 그룹 사업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동국제강그룹도 다른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회사의 중요한 사안은 전문경영인들의 의견을 받아 오너 일가가 결정하고 있다”면서 “이런 점에서 보면 장세주 회장은 이미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설명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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