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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 ‘안시성’ 뛰어 넘을 대작 나올 수 있을까
오프닝 ‘주필산 전투’ 휘몰아치는 스케일…할리우드 대작 능가
단 몇 줄의 기록 ‘안시성 전투’, 치밀한 ‘프로덕션+연출’ 합작품
2018-09-17 06:00:00 2018-09-17 06: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220억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 안시성비주얼은 충격 그 이상이다. 10여분의 오프닝 시퀀스 주필산 전투는 할리우드 판타지 영화의 진수로 불린 반지의 제왕시리즈 속 3대 전투 장면을 능가한다. 휘몰아치는 고구려 개마무사들의 묵직한 둔중함과 이를 막아선 당태종의 대규모 군대의 충돌 파열음이 온 몸으로 전달될 만큼 압도적이다. 고구려 태학도와 당 대군의 피 튀기는 백병전은 영화 관람의 진수인 체험의 영역까지 도달한다. 초고속 카메라 팬텀과 로봇암을 결합해 만든 동작 분할방향 전환이 연결된 앵글 구성은 할리우드 대작 전투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생경함이다. 이렇게 휘몰아치는 압도적 오프닝은 영화 안시성에 대한 우려가 완벽한 기우였음을 알린다. 실사를 기본 베이스로 CG(컴퓨터 그래픽)를 이용해 만들어 낸 서기 645년 중국 대륙에서 펼쳐진 고대의 대규모 전쟁 속 타격음은 완벽한 재현을 넘어서 실존했던 우리의 역사가 어떤 스토리와 과정을 통해 이뤄졌는지를 알린다.
 
 
 
사실 안시성은 출발부터 우려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고조선 건국 이후부터 고려 건국 이전까지의 남북국시대 즉 한반도 고대사는 지금까지 국내 그 어떤 상업 영화도 손 댈 수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다. 고증을 위한 사료 자체가 전무하다. 현재까지 삼국 시대 사료는 정사로 분류된 삼국사기와 야사 중심 삼국유사가 거의 유일하다. 사대주의 관점에서 기록된 삼국사기나 구전 형식에 무게가 실린 삼국유사는 그래서 논란이 많다. 이 두 역사서에서조차 안시성의 위치나 성주 양만춘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 그저 중국의 역사 소설 당서연의에 처음 양만춘이란 이름 석자가 등장할 뿐이다. 결국 안시성 성주=양만춘이란 등식 자체가 존재했는지 모를 구전을 밑바탕으로 한다. 사실 우리는 안시성 전투가 분명한 우리의 역사라고 암묵적 확정을 내리고 출발한다. 그래서 영화 안시성정사야사의 경계선에서 논란을 안고 있던 그 개념을 보다 대중적으로 확장시킨 시도라고 보면 될 듯하다.
 
그런 시도이지만 충무로에서 안시성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위험했다. 앞선 설명과 같은 근거 부족 사료 기반으로 우리 인식 속 분명한 역사가 왜곡될 시선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220억이 투입된 전례 없는 대작 연출을 영화 찌라시: 위험한 소문’ ‘내 깡패 같은 애인을 만든 김광식 감독이 맡았단 점이 두 번째였다. 세 번째는 고구려 말 최대 권력자 연개소문에게 조차 반기를 든 양만춘 장군을 조인성이 맡았단 사실이다. 이 점만으로도 안시성은 충무로의 재앙으로 예상됐다. 결과적으로 안시성프로젝트를 진행한 투자배급사 NEW의 치밀한 프로덕션과 김 감독의 소통적 연출 방식은 이 무모한 프로젝트를 상상 이상의 비주얼 충격으로 만들어 냈다. 이 결과물은 앞으로 진행될 충무로 블록버스터의 기본 레퍼런스가 될 듯하다.
 
영화 '안시성' 스틸. 사진/NEW
 
영화는 88일간의 전투 과정에만 오롯이 집중한다. 4번의 전투가 등장한다. 먼저 오프닝과 함께 등장한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는 대패한다. 이 패배는 안시성침공 발단이 된다. 특히 이 패배는 고구려 권력의 중심 연개소문에게 반기를 든 양만춘의 성격과 성향 나아가 극 전체의 개연성을 성립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이 전투에서 패한 고구려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화살을 안시성으로 돌린다. 연개소문은 평양성에 집결해 당태종 이세민의 침공을 대비하며 안시성을 포기하겠단 뜻을 밝힌다. 평양성 방어 완충선인 안시성 포기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적 제거와 휘하 세력의 결집을 위한 발단이 된다. 그 발단에 불을 당기는 역할은 주필산 전투에서 살아 남은 태학도 수장 사물이다. 그는 연개소문으로부터 양만춘 척살 명령을 받고 안시성으로 잠입한다. 공교롭게도 그는 안시성 출신이다. 주필산 전투의 격렬함과 패배는 사물로 하여금 양만춘에 대한 반감을 높인 불씨가 된다. 주필산 전투를 외면한 채 안시성에 웅크린 양만춘은 사물에겐 비겁자이며 반역자다.
 
그렇게 안시성으로 향하던 중 사물은 우연히 양만춘 그리고 그의 부관 추수지와 만나게 된다. 그의 선입견이 첫 만남에서부터 깨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안시성 안에서 생활하며 겪는 양만춘에 대한 선입견의 균열은 더욱 속도를 낸다. 이미 양만춘은 연개소문이 휘어잡은 고구려의 중심과 멀어진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의 지원이 없을 것이란 점도 알고 있다. 반면 눈앞에는 이미 20만 당의 대군이 다가오고 있었다. 천혜의 요새로 알려진 안시성이지만 단 5000명의 군사로 20만의 대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이다. 선택은 두 가지다. 항복이며 항전이냐. 사물의 기대와 달리 양만춘과 성내 모든 군사 심지어 양민들까지 항전을 택한다. 믿고 싶은 게 아니다.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믿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양만춘의 강력한 포용력과 리더십을 따르고 있었다. ‘성주는 어떤 사람이냐는 사물의 질문에 안시성 그 자체다고 말하는 대사가 나온다. 흙으로 만들어 진 토성(土城). 그리고 그 위에 벽돌을 쌓아 만든 안시성. 깨질지언정 무너질 수 없는 안시성은 어쩌면 양만춘 그 자체이면서 반대로 양만춘이 곧 안시성이란 그 대사 한 마디에 오롯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된다.
 
영화 '안시성' 스틸. 사진/NEW
 
사실 안시성은 고독한 공간이다. 그리고 괴롭다. 고난하다. 추정이지만 양만춘을 연개소문과는 다른 형태의 반역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봉건제 형식의 고구려 체제 속에서 중앙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변방 안시성은 양만춘이 세운 왕국이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중앙의 통제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지켜야 했다. 중앙의 통제에 속박되느냐 성 너머 급속한 세력 확장을 이뤄낸 당나라에 고개를 숙이느냐. 양만춘은 결국 독자 생존의 길을 택한다. 외롭지만 어쩌면 지리적 태생적 생존 방식에 길들여진 야수성의 기질이 안시성을 지탱하고 존속시킨 한반도 역사에선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질인 것이다.
 
주필산 전투에 이어 세 번에 걸친 공성전은 그런 기질을 여과 없이 투영시킨다. 사물은 양만춘에게 연개소문에게 투항을 권유한다. 당태종 이세민의 포로로 잡힌 고구려의 신녀는 양만춘에게 항복을 권유한다. 양만춘은 이길 수 있을 때만 싸우는 것이냐라며 모든 것을 거부한다. 그는 지키는 것에 목적을 둔다. 사실 지키는 것에 대한 목적이라기 보단 존재 자체에 대한 목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안시성은 그 자리에 어느 누구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양만춘 역시 그 목적을 지켜내려 하는 것뿐이다. 그것은 그의 휘하 수장과 성내 양민 모두가 마찬가지다.
 
영화 '안시성' 스틸. 사진/NEW
 
한반도 고대사와 중세사 근대사와 현대사로 넘어오기까지 무려 1500년의 시간 동안 안시성 전투가 올린 성과는 기적이란 단어 외에는 달리 설명이 불가능하다. 중국 대륙을 통일한 당태종의 위세와 몰락해 가는 한반도 유일의 정복국가 고구려의 대결은 문자 그대로 달걀로 바위치기라 불러도 이상할 따름이 없었다. 이 시기에 양만춘이란 인물 한 명이 만들어 낸 상황은 그대로 영화 자체의 동력으로 옮겨온다. 물론 영화는 영화 자체의 문법으로 치환해 한 사람의 영웅담이 아닌 사람들의 영웅담으로 확장시켰다. 원제 역시 처음 ‘Unsung Hero’(찬양 받지 못한 영웅)‘The Great Batte’(위대한 전투)로 변환시킨 것도 그런 의미다.
 
위대한 전투는 처음 주필산 전투와 이후 그려진 세 번의 전투에서도 그 색채를 이어간다. 우선 공성전이다. 한반도 역사에 쉽게 그려진 바 없는 전쟁 장면이다. 산성 위주로 구성된 한반도 지리와 달리 중국과 유럽 중세시대에서나 볼 수 있던 공성 전투는 스케일 면에서 압도적이다. 공성 무기인 투석기와 충차를 이용한 이세민의 공격은 한반도 역사에 기록된 것인지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생경함이 넘친다. 모든 것을 뚫어버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창과 모든 것을 막아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패의 대결처럼 이세민과 양만춘의 대결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 정도의 강력함 그 이상이 담겨 있다. 거대한 쓰나미처럼 몰아치는 당 대군의 휘몰아침과 그것을 일순간에 내리 찍는 안시성의 격벽은 영화 관람이 이끌어 낼 수 있는 최대치 그 이상을 선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안시성의 토산 전투는 상식의 개념을 파괴하는 비주얼 끝판을 선보이며 안시성 전투가 한반도 역사에서 어떤 의미로 자리하고 있었는지를 간접 체험으로 이끌어 낸다. 영화 처음부터 쌓여온 드라마의 화력이 이 마지막 전투에서 폭발한다.
 
영화 '안시성' 스틸. 사진/NEW
 
안시성은 사실 공격의 카타르시스보단 방어의 둔탁함이 앞서 있다. 둔탁함은 묵직함의 무게는 있지만 날카로움은 결여된다. 때문에 안시성은 각각의 인물에 드라마를 부여했다. 그 드라마는 각각의 액션으로 이어진다. 각각의 액션은 거대한 전투로 확장된다. 확장된 전투는 화려한 볼거리를 끌어 낸다. 화려한 볼거리는 지켜야 했던그들의 신념과 맞닿아 가슴을 울린다. 울린 가슴은 뜨겁게 온도를 높인다. 높아진 온도는 결국 존재했지만 인정 받지 못했던 역사의 한 조각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는 동력이 됐다.
 
영화 '안시성' 스틸. 사진/NEW
 
지켜야 하는 것을 지키고자 했던 이 한 남자의 뜨거웠던 신념은 135분의 러닝타임으로만 느끼기엔 너무도 부족하다. 한반도 역사상 결코 뚫리지 않던 방패로 불린 이 한 남자의 뜨거움은 관람이란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엔 한 없이 모자란다. 그래서 안시성의 압도적 위용이 오히려 작게 느껴질 정도다. 개봉은 오는 19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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