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기업의 콜센터 업무를 대행하는 한국코퍼레이션이 미국계 생명보험사 라이나생명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과정에서 핵심기술 요구가 있었다는 증거를 내놓으며 진실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갑을 관계에서 콜센터 업무의 핵심 자료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는 게 한국코퍼레이션 측의 주장인 반면 라이나생명은 서비스 개선을 위한 참고자료로 활용했을 뿐 KTCS와의 계약을 위한 자료 요청은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26일 한국코퍼레이션과 라이나생명 등에 따르면 라이나생명은 지난 2월19일 한국코퍼레이션에 '업무 최적화 진단' 자료를 요청했다. ▲인력구성현황 ▲업무 R&R ▲채용 프로세스 ▲교육 현황과 평가체계 등으로 구성된 이 자료는 인력 채용 방식, 콜센터 최적화 시스템, 인력 교육 현황 등을 포함하고 있어 콜센터 업무의 핵심 기술이라는 게 한국코퍼레이션의 설명이다. 한국코퍼레이션은 21일 1차로 관련 내용을 보낸 뒤 인적자원관리에 해당되는 'HR 운영 성과 관리 체계' 자료를 추가로 넘겼다.
문제는 이후 한국코퍼레이션이 라이나생명과 KT가 KT의 콜센터 담당 계열사인 KTCS를 통해 계약을 맺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서부터 발생했다. 한국코퍼레이션이 라이나생명에 자료를 넘긴 2월21일로부터 한달여 지난 3월19일 라이나생명은 KT와 '헬스케어 사업 강화 및 디지털 기반 사업 혁신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MOU에는 라이나생명이 추진 중인 헬스케어서비스와 보험관리 서비스 개발에서 협력하는 동시에 AI 기반의 콜센터 업무혁신을 함께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라이나생명은 KT와 맺은 MOU는 KTCS 계약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KT 본사 기업영업팀이 KTCS 영업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당시 MOU가 사실상 콜센터 계약 합의를 포함하고 있다는 게 한국코퍼레이션 측의 주장이다. 한국코퍼레이션 관계자는 "대기업을 등에 업은 자회사의 횡포"라며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우리의 핵심 자료를 활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2월 21일 한국코퍼레이션이 라이나생명에 인력채용방식, 콜센터 최적화 시스템, 인력 교육 현황 등을 보낸 메일. 사진/한국코퍼레이션 제공
라이나생명은 한국코퍼레이션의 경영권 분쟁과 부실한 재무상태를 들어 다른 업체를 물색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코퍼레이션의 3대 주주와 일부 소액주주는 경영 참여를 요구하며 3월 26일에 열릴 예정이던 주주총회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4월16일에는 사업자등록을 새로 내며 갈등이 확대됐다. 경영실적 역시 2015년부터 2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뒤 지난해 흑자전환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라이나생명 관계자는 "재무상태가 좋지 않거나 경영 분쟁이 있는 기업과 계약하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 있어 부득이하게 계약연장을 할 수 없게 됐다"며 "많은 회사에서도 연장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코퍼레이션은 경영권 분쟁 발생 이전부터 라이나생명이 KTCS와의 계약을 추진했다고 보고 있다. 임시주총이 연기된 3월26일 이전 KT와 MOU를 통해 사실상 계약을 합의했고, 그에 앞선 2월 라이나 콜센터 업무 관련 중요 자료가 넘어갔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코퍼레이션 관계자는 "라이나생명이 자료를 요청할 당시 KTCS로부터 컨설팅받기 위해 필요하다며 자료를 요구했지만 실제 KTCS와 계약이 이뤄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며 "참고용으로만 쓰였다면 KTCS와 거래관계가 없어야 맞다. 결과적으로 KTCS에 영업기밀을 넘긴 것과 다름 없게 됐다"고 말했다. 경영권 분쟁이나 재무상태 등에 대해서는 "우호지분 의결권이 확보돼 내달 말 열릴 주총에서 마무리될 것"이라며 "라이나와 2002년부터 16년 간 관계를 맺어오는 동안 재무상태의 부침이 있었는데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건 이해할 수 없다. 계약연장하지 않은 회사가 많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올해 재계약률이 지난해보다 높다"고 말했다.
한국코퍼레이션과 라이나생명 사이의 계약기간은 내달 말까지다. 하지만 중간에 계약조건이 바뀌면서 사실상 2020년까지 계약이 연장에 합의했다는 게 한국코퍼레이션의 주장이다. 당초 계약은 한국코퍼레이션 직원이 라이나생명이 임차한 시설에서 일하는 부분 아웃소싱 계약이었다. 이후 2016년 라이나생명 건물에 화재가 발생하자 라이나생명이 한국코퍼레이션에 건물 임차를 요구하면서 전체 아웃소싱으로 계약조건이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코퍼레이션은 건물 임차계약을 2020년까지 맺었다. 한국코퍼레이션 관계자는 "라이나생명 업무 담당 직원이 사용할 건물 임대차계약을 2020년까지 한 이유는 그때까지 계약이 합의됐기 때문이다. 그런 보장없이 임대차 계약을 길게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라이나생명은 "한국코퍼레이션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기간은 10월 말까지"라는 입장이다.
지난 3월19일 라이나생명과 KT가 서울 종로구 라이나생명 본사에서 '헬스케어 사업 강화 및 디지털 기반 사업혁신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KT
한국코퍼레이션은 라이나생명이 KTCS와 실제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 역시 매끄럽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KTCS와의 계약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자 형식적으로 8월30일 KTCS를 포함한 3개 업체를 대상으로 입찰 공고를 냈다는 것이다. 이후 KTCS와 라이나생명은 한국코퍼레이션이 담당했던 콜업무 620석 가운데 500석에 대해 5년 계약을 맺었다. 나머지 120석은 라이나생명 콜업무 100석을 맡고 있던 다른 업체와 계약해 이번 입찰로 KTCS와 신규 계약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장기 계약을 맺지 않는 라이나생명의 관행을 감안하면 이번 KTCS와의 계약이 이례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라이나생명은 "7월 사내 감사실에서 수의계약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고 이후 입찰공고를 낸 것"이라며 "사기업 간 계약체결이어서 문제될 것 없다"고 말했다. 자료 요청에 대해서도 "지난 수년간 콜센터 서비스 품질지수가 좋지 않아 개선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요청한 것"이라며 "용역수행하면서 인원과 조직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한국코퍼레이션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자료를 받았다"고 반박했다.
한국코퍼레이션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실에도 이번 사안을 확인해줄 것을 요청했다. 노웅래 의원실 관계자는 "사기업 간 공방이어서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조심스럽다"면서도 "대기업 자회사가 중소기업 간 경쟁시장을 침탈하고 있다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두 업체 간 진실공방은 법정으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12일 라이나생명은 한국코퍼레이션을 서울중앙지검에 허위사실 유포 및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한국코퍼레이션 역시 조만간 라이나생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할 예정이다.
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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