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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과 남북경협)“통일은 신앙이다”
(11-끝)아산이 말하는 통일관
2018-09-23 06:00:00 2018-09-23 06:00:00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생의 마지막 시기인 1998년 6월16일,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소떼방북이라는 세기적 이벤트를 연출하며 남북경제협력사업(경협)의 문을 열었다. 소떼 방북을 전후로 아산이 보인 통일에 대한 갈망과 집념은 거의 신앙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승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그는 눈을 감기 전에 기업가로서 통일을 향한 작은 흔적을 남기고 싶어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은 아산이 이뤄낸 큰 흔적이다.
 
2018년 남북은 세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치뤘다. 연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면 총 네 차례의 정상회담을 갖게 된다. 지난 1950년 분단 이후 이뤄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보다 더 많은 횟수의 만남이 올해에만 치러지는 셈이다. 중단 10년째를 맞는 금강산 관광사업과 가동이 중단된 지 3년째를 보내고 있는 개성공단 사업의 정상화를 합의했고,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몰수한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소 상설면회소 등 시설을 해제해 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에 동의했다. 미국과 국제연합(UN)의 대북제제 조치만 해결된다면 사업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다. 쉼표 상태인 아산의 유산이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사진/현대그룹
 
<뉴스토마토>가 매주 토요일 온라인을 통해 총 11회에 걸쳐 연재한 ‘아산과 남북경협’은 아산이 추구했던 경협관·통일관을 되짚어보고 다시 시작될 경협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진행됐다. 지난 2015년 아산 탄생 100주년을 맞아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울산대학교 아산리더십연구원이 펴낸 ‘아산연구 총서’에 수록된 정태헌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의 ‘실리적 남북경협 - 아산의 탈이념적 구상과 실행’이라는 훌륭한 논문 자료가 있었기에 뼈대를 잡고 객관적으로 경협을 바라보고 기사화 할 수 있었다.
 
연재를 끝내는 시점에 경협 재개의 희망을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큰 성과다. 희망을 마련했으니 앞으로 해야할 일은 해내는 것이다. 이념에 얽매이지 말고 남과 북이 함께 번영을 이뤄낼 수 있는 경협을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경협이 남북통일의 기반이 될 것이라는 작은 토대를 넘어 세계 평화에 이바지 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해냐 할 것이다.
 
끝으로 아산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으로 재직했던 1974년부터 1988년까지 기간 동안 전경련 국제담당 상무를 역임하며 최측근에서 그를 보좌했던 박정웅 메이텍인터내셔널 대표가 역시 2015년 아산 탄생 100주년을 기념에 펴낸 ‘이봐, 해봤어?-세기의 도전자, 위기의 승부사 정주영’에서 밝힌 아산의 통일관을 소개한다. 아산은 생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재계 총수들과 그룹 측근들에게 이 말을 강조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인간은 참 어리석은 데가 많아. 거기에는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마찬가지야. 이데올로긴가 뭔가 하는 것이 도대체 뭐야. 제각기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내놓은 것인데 그 결과가 뭐야? 서로 내세우는 이데올로기로 인한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더욱 큰 모순은 이런 비참한 전쟁으로 고통 받고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 대부분 ‘이데올로기’의 ‘이’ 자도 모르는 민초들이고 노인들이고 어린이들이고 부녀자들이란 말이야. 잘 들여다보면 각기 추종자들이 내세우는 이데올로기가 정말 백성을 위하는 건지 저희들 기득권 쟁취를 위한 구실인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모순에서 초래된 비극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어.
 
북한 사람들이 누구야? 다 김씨, 이씨, 박씨, 정씨, 최씨 아닌가? 남한의 우리들하고 말이 다른가, 피부색이 다른가? 그런데 비참한 살상의 전쟁을 치른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땅 한 군데를 떡하니 갈라놓고 피붙이 부모형제 처자식 간에 만나게 하기를 하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마음대로 소식을 전하게 하나. 외세의 영향이 어쨌건 이것은 결국은 우리 민족의 수치야. 인륜에 대한 배반이고. 그래서 통일은 가능한 한 가까운 장래에 꼭 성사되어야 해.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우리 사회의 정치하는 사람이나 지식인들이 절실해야 할 통일 문제에 대해 너무 소극적이고 좁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도리어 통일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많아.
 
그 이유 중 하나가 소위 통일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인 것 같은데, 이건 아주 잘못된 생각이야.
 
왜 엄청난 분단 비용은 생각 못 해? 매년 늘려야 하는 국방비 부담과 한창 공부하거나 일할 나이에 모든 것을 중단하고 군복무를 해야 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해봐. 그 기회비용이 얼마야. 북한은 일반 사람들의 비참한 실상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하지.
 
또 하나 아주 중요한 게 있어. 그것은 통일이 가져오는 엄청난 통일이익이야. 통일이 되어서 우리 국력이 한층 강력해지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같은 나라들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저희들의 영향력과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우려하지. 그런데 우리들이 통일에 대한 부담을 걱정하는 것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아주 잘못된 생각이지.
 
통일이 가져다주는 이익에는 여러 가지 구체적인 것들이 있어. 북한에는 발전이나 제련 등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유연탄, 철광석, 동, 희토류 등 중요 광물자원이 약 7000조원어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런데 이런 자원들은 남한에는 거의 없어서 지구 정반대쪽 브라질에서까지 막대한 외화를 들여 수입해 온단 말이야. 반면 북한은 돈도 없고 기술도 부족해서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하고 있지.
 
또 한 가지는 북한의 노동력이야. 북한 정권이 강도 높은 노동 동원으로 단련시킨 북한 노동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근면하고 생산성이 높아. 남한이 가지고 있는 기술, 자본, 경험, 세계 시장 기반의 경영 능력과 북한의 노동력을 결부시켜 봐. 그 경쟁력이 얼마나 대단하겠어? 일본이나 중국이 두려워할 일이지. 이렇게 되면 북한 사람들의 소득이 올라가게 되고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가전제품이나 생활용품에 대한 구매력이 크게 늘어날 것은 당연한 일이지. 남북한을 통틀어 7000만 인구의 활발한 내수 시장이 생기게 되는 거지.
 
여기엔 중요한 정치적 의미도 있어. 북한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올라가면 그들이 살고 있는 체제와 정치 현실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기게 되어 있어. 민주화에 대한 의식이 자연히 싹트는 것이지. 배고픈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 공산주의가 잉태되지만 정작 배부른 사람이 많아지게 되면 공산주의가 자리를 잃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서로 왕래하고 경제협력을 원활히 하는 것이 통일을 조속히 이룰 수 있는 길이지.
 
너무 늦어지면 안 돼. 왜냐하면 북한 역시 도로를 넓히고, 발전소와 항만을 건설해야 하고, 광산 개발도 해야 하는데, 돈도 없고 기술도 없어. 당연히 중국이나 러시아에 손을 내밀게 되어 있지. 그렇게 되면 나중에 통일이 되어도 이러한 사업은 다른 나라들이 기득권을 갖게 되거든. 통일이 늦어지면 남한의 사업 기회는 그만큼 그들에게 선점 당하게 되어 버려. 그런데 북한을 접근하는 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어. 그것은 정부 차원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어떤 좋은 협력을 제안해도 대개는 어떻게든 거부를 하거나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게 되어 있어. 정치적으로 체면과 위신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지. 그들이 밤낮으로 북한 사람들에게 남한 국민들이 고생하고 못사는 것으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선전을 해놨는데 그런 남한 정부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야. 체제유지에 위협이 될 수도 있지.
 
그러나 민간이 나서면 북한의 부담이 덜하게 돼. 여러 가지 명분을 붙일 여지가 많이 있거든. 교류도 비정치적인 분야인 스포츠·문화·관광 같은 분야를 많이 내세워야 해. 경제 분야에서는 우선 북한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나 나아가 그들이 추진하는 수출자유지역 사업, 국제 관광시설 개발 사업 등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 사회간접자본 건설 사업이나 광산개발 사업 같은 것은 분위기가 성숙된 이후에 기회를 보면 돼.
 
어찌됐든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야. 관광 사업이 단순한 수익 사업 차원을 넘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 정치적인 부담이 적은 일들부터 시작해 자주 만나면 서로를 알게 될 기회도 많아지게 되지. 그러면 서서히 경계심도 늦춰지게 되고 신뢰감도 쌓이게 되지. 물론 지금까지 체험한 것 같이 북한의 체제 특성상 중간 중간에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 일이 생길 것이야.
 
그러나 그걸 두려워한 나머지 위축되어선 안 돼. 역사 흐름의 대세는 통일로 가고 있기 때문이야.
 
문제는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통일을 이루느냐 하는 거야. 그리고 결국 그것은 우리 손에 달려 있어.”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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