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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객실승무원 건강은 '부록'?…국토부 연구용역서 뜯어보니
'한국형 피로위험관리시스템 기반 구축방안 연구' 과업지시서 분석…"실태 파악조차 어려워"
2018-10-17 16:38:57 2018-10-17 16:38:57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국토교통부가 국내 항공사 객실승무원의 피로 개선을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했지만 '시늉'에만 그칠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전체 연구용역에서 객실승무원과 관련한 비중이 턱없이 적은 데다, 피로 실태를 수집할 생체 검사도 계획돼 있지 않다. 객실승무원 피로와 관련해 정부가 추진하는 첫 연구지만, 실상은 전체 연구에서 '부록'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7일 <뉴스토마토>가 '한국형 피로위험관리시스템 기반 구축방안 연구'의 과업지시서를 확인한 결과, 이 같은 문제점들이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국토부가 지난 5월 조달청을 통해 발주, 7월13일 낙찰됐다. 전문수 한국교통대학교 산학협력단장(기계자동차항공공학부 교수)이 연구를 수임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델타항공), 영국(이지젯항공) 등에서 운영 중인 피로위험관리시스템(FRMS)을 국내 법규와 항공사 실정에 맞게 도입하기 위해 마련됐다. FRMS는 운항승무원(조종사·정비사)의 피로를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이다. 과학적 원리와 운영경험 등을 토대로 운항승무원이 최적의 상태로 운항하는 걸 목적으로 한다. 현재 국내는 비행근무시간(최대 17시간·조종사 3명 기준)과 휴식시간(최소 8시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만 관리해, 피로 관리와 승객 안전에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국토부는 2016년 항공안전법을 정비, 2019년 3월30일부터 FRMS를 도입·운영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대한항공 승무원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근무여건을 증언하고 있다. 국토부가 마련한 연구는 현실에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뉴스토마토
  
국토부는 객실승무원의 피로 관리를 위한 방안도 이번 연구에 추가했다. FRMS와 별개로 객실승무원의 피로를 경감할 개선안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당초 FRMS와 관련해 진행되는 2차 용역에서 객실승무원과 관련한 항목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부산에서 지난 1월부터 객실승무원 최소 4명이 실신하는 사태가 발생,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쏟아지면서 이번 연구에 포함됐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연구로 객실승무원의 피로 실태를 수집하고, 개선안을 마련하기는 부족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토부가 발주한 과업지시서에 따르면 이번 연구에서 객실승무원의 피로와 관련한 내용은 20% 안팎으로 추정된다. 국토부는 과업지시서를 통해 현행 항공안전법이 정한 객실승무원의 비행근무시간과 휴식시간의 미비점을 발굴하고, 외국 사례를 비교분석할 것을 요구했다. 선행연구를 검토, 개선안을 마련할 것도 주문했다. 정부가 객실승무원의 피로와 관련해 처음으로 실시하는 용역인 점을 감안해도, 다소 평이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이번 연구가 이른바 '구색 맞추기'라는 지적도 나왔다. 항공안전법이 정한 객실승무원의 최대 비행근무시간은 14시간이다. 인원 1명이 추가될 때마다 2시간씩 연장, 최대 20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하다. 비행 종료 후 휴식시간은 최소 8시간에서 최대 12시간이다. 사실상 종일 일할 수 있는 체계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상 퀵턴(목적지 도착 후 체류 없이 바로 돌아오는 항공편)이 여러 차례 가능한 점도 승무원의 피로를 높이는 요인이다. 국내는 1시간 미만, 일본·중국 내 취항지는 1~2시간 이내 갈 수 있다. 항공업계 한 전문가는 "객실승무원의 노동강도는 이·착륙 때 가장 높아지는데, 퀵턴이 많은 한국과 외국을 비교하는 게 유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객실승무원의 피로 관리 방안을 연구하면서, 피로·건강 등 생체 검사를 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선행연구 중에는 객실승무원의 피로와 수면의 질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2015년 나온 '대형항공사 국제선 객실승무원의 수면의 질, 피로 및 직무 스트레스 간의 관계' 논문에 따르면 피로가 직무 스트레스에 영향을 가장 많이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면제 복용 여부'와 '수면의 질' 순으로 직무 스트레스가 높았다. 연구는 대형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101명의 여성 객실승무원들을 대상으로 황혜민·김모란 부천대 교수가 진행됐다. 최근 운항·객실승무원의 우주방사선 피폭 여부도 항공업계에서 관심이 높은 현안이다. 우주방사선이 높은 북극항로(폴라루트)를 지나는 승무원은 방사선 피폭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그럼에도 국토부의 이번 연구는 객실승무원의 피로·건강을 측정할 검사가 포함되지 않았다. 반면 국토부의 FRMS 1차 연구에서는 조종사를 대상으로 한 수면다원검사가 진행됐다. 조사 결과 조종사 2명 중 1명 꼴로 수면무호흡증을 앓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한항공의 한 객실승무원은 "객실승무원의 열악한 근무여건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국토부가 이번 연구로 과연 무엇을 개선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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