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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현대차, 보수적·강압적 업무방식 버려야"
손정우 자동차산업 중소하청업체 피해자협의회 대표
"저렴한 납품업체 지속 발굴…1·2차 협력사들 폭탄 돌리기"
"현대차가 모든 비용 통제…직서열구조·유상사급 문제 고쳐야"
2018-10-22 13:57:03 2018-10-22 13:57:11
[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업체의 협력사 대비 과도한 이익률이 도마에 올랐다.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완성차업체의 영업이익률은 9.6%로 4.4%를 기록한 부품업체들보다 2배 가량 높다. 2011년부터 시장 침체기에 접어든 완성차 업체들이 부품업체에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위기관리에 나서면서 협력사 어려움이 가중돼왔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날 국감 증인으로 출석한 손정우 자동차산업 중소하청업체 피해자협의회 대표 역시 자동차산업 내 불합리한 원·하청 구조의 피해자다. 가업을 이어 경주에서 자동차 부품공장을 운영하던 손 대표는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사인 서연이화(서연)로부터 납품단가 인하를 비롯한 각종 갑질을 견디다 못해 회사를 서연에 넘겼다. 
 
하지만 이후 서연은 오히려 손 대표를 공갈 혐의로 고소했다. 1심에서 검찰이 9년을 구형해 장기 실형을 살 위기에 처했으나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판결 결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내년 초 2심에서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알 수 없어 아직 위기가 완전히 걷히진 않았다. 비슷한 피해를 당한 업체를 모아 피해자단체를 꾸린 손 대표를 지난 17일 만나 그 동안 겪어온 자동차업계 내 문제점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회사를 1차사인 서연에 넘기기로 결정한 이유는?
 
회사를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었다. 납품계약 이후 1년 뒤에 일방적으로 단가가 15% 가량 깎였다. 이후에도 강제 CR(cost reduction)로 3년 간 매년 6%씩 깎였다. AS용 부품을 납품하기 위해 금형 관리비, 인건비 등도 매년 인상돼 버틸 수가 없었다. 압박을 견디다 못해 납품하기 힘들다고 한 하소연이 공갈 혐의가 돼 버렸다. 
 
과거에는 2차사가 어려워지면 1차사가 도와주는 관행이 있었는데 그런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아버지와 서연 회장도 오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에 인수합병(M&A) 계약서를 쓰기 전(작년 4월28일)인 20일까지만 해도 도와준다는 분위기였는데 현대차가 우리 고객사를 모아 회의한 뒤 태도가 바뀌었다. 
 
손정우 자동차산업 중소하청업체 피해자협의회 대표는 "현대자동차가 모든 비용을 통제하고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급속한 자동차 산업 재편 환경에서 협력사와 미래 사업구조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손정우 대표 제공
 
자동차산업의 원·하청 문제로 직서열구조가 거론된다.
 
직서열구조는 부품사가 각종 모듈을 생산해 완성차 생산라인에 곧바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완성차 회사가 재고를 쌓지 않기 위해서 도입됐다. 결품이 생기면 곧바로 클레임이기 때문에 2차사가 재고를 떠안고 있어야 한다. 반대로 노조 파업 때문에 납품을 못하게 될 경우에는 현대차가 책임지지 않는다. GM대우와 삼성자동차 등이 공존했던 2000년대 후반까지는 완성차 인증서 마크를 받은 곳에서만 부품을 납품할 수 있었다. 한 업체로부터 인증을 받은 곳은 다른 완성차 업체와 거래가 용납되지 않았다. 이후 불황이 본격화한 2013년부터는 우리만 믿고 일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고객사에 허락을 받지 않고 다른 곳과 거래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1차사가 원재료를 구매해 공급하는 유상사급도 문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하고 대기업이 협력사에 인건비나 원재료비 공개를 요구하면 처벌하겠다고 했는데 유상사급은 처음부터 원재료비용을 1차사가 정해준다. 2013년부터 유상사급이 도입됐는데 원래 원재료에서 얻는 차익을 1차사가 가져가버린 셈이다.
 
기술개발을 통한 원가절감 등은 불가능한가?
 
이익률이 높은 B2C(기업과 소비자 간 직접거래) 제품 개발을 고민하다 유아용 좌변기를 만들려고 했다. 그 와중에 자동차 부품에서 불량이 발생하니 현대차에 불려가 당장 때려치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윤이 나야 투자를 하고 기술개발도 할 수 있다. 원가계산서를 통해 인건비부터 재료비 등 모든 비용을 1차사와 원청이 통제하기 때문에 다른 비용을 지출할 여지가 없다.
 
중소기업 부품업체가 외국에 비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완성차의 비용절감을 위해 직서열 구조를 만들고 전속거래를 이용해왔다. 하지만 업계 전반에 불황이 닥치면서 그것마저 지속이 어려워졌다. 좀 더 저렴하게 납품 가능한 업체를 계속 발굴하려다보니 이런 결과가 초래됐다고 본다. 1차사가 싸게 납품할 수 있는 2차사에 금형을 돌리는 상황은 폭탄 돌리기나 마찬가지다. 경쟁력 없는 업체가 계속 늘어나면서 출혈 경쟁만 심해지는 것이다.
 
왜 고소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지.
 
2차 하청업체는 거래상 절대적인 을의 위치에 있다. 납품을 맞추기 위해 수십년 동안 단가 인하 압력을 포함해 현대차와 서연이 시키는 대로 해왔지만 결국 버틸 수 없었다. 서연 입장에서도 2차사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아야 하고 그 비용을 어떤 식으로든 부담하게 돼 있기 때문에 회사 인수를 요청했다. 하지만 서연은 이런 최소한의 비용마저 우리에게 전가하기 위해 소송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다른 협력사들에게 우리 말을 듣지 않으면 태광공업처럼 된다는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본다. 아버지인 손영태 회장은 지역에서 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고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동반성장위원장으로 있을 당시에 동반성장위원으로 활동할 정도로 지역 내 신망이 높은 기업가였다. 하지만 현대차와 서연이화의 도를 넘는 갑질을 견디다 못해 부자가 교도소까지 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달 6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동차산업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손정우 대표(왼쪽 두번째)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사진/강명연 기자
 
현대차는 1차사와 계약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한다. CR 역시 약정이라는 입장인데.
 
수없이 현대차에 불려갔고 현대차 직원들이 우리 공장에 말도 없이 드나들었다. '자동차'라고 하면 경비가 붙잡을 수도 없었다. 우리 제품은 현대차 울산 공장으로 납품했다. 현대자동차를 위해 납품한 업체라는 이유로 원가계산서를 전부 통제했다. 1차사를 통해 지시했고 우리에게 직접 얘기하기도 했다. 현대차의 구매파트가 우리 직원들을 압박해 돈을 쥐어줘야 하기도 했다. 1차사와의 거래라면 1차사에만 잘 보이면 되는데 그럴 수 없다. '약정'이라는 말은 상호 합의가 전제돼야 하는데 일방적이었다.
 
피해업체들은 얼마나 모였나.
 
현재까지 6곳이 모여 있고 10여곳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대응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국감을 앞두고 전화를 많이 받았는데 협력사들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어서 앞으로 숫자는 더 늘어날 것 같다. 대표가 자살하거나 회사가 부도나서 길거리로 쫓겨나지 않으면 법정 구속되는 지경에 이르러야 피해자라고 나설 수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
 
피해자라고 모인 곳들은 이미 미래가 없는 곳들이다. 피해 호소를 해봤자 이득 볼 수 있는 것도 거의 없다. 업계 내 실태를 고발해 협력업체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남길 바라는 마음에서 활동하고 있다. 자동차산업에서 기여해온 아버지가 범법자라는 낙인 대신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위해 일조하고자 하는 바람도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현대차가 시키는 대로 제품을 만드는 데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하청업체의 처지가 개선되도록 앞장설 생각이다. 전기차·수소차 등 급속한 산업구조 재편이 일어나고 있지만 기존 자동차 하청업체와는 어떤 대책 논의도 하지 않는다. 현재 직서열 방식에서 과도한 기대일 수 있지만 위기에 처한 현대차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기존의 보수적이고 강압적인 업무방식을 고수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대차를 위해 일해온 업체들과 미래 방향을 공유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길 바란다.
 
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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