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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북한’ 다음으로 ‘사회적가치’가 문재인 정부의 최대 치적될까
국정운영 핵심 가치로 확립…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 사회적가치 ‘낙수효과’ 기대
“사회적가치 측정 모델 개발과 사회보고 의무화 시급히 추진해야” 지적도
2018-10-29 08:00:10 2018-10-29 11:17:40
지난해 10월 사회적 가치 기본법이 발의됐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국정 이념의 핵심으로 사회적 가치를 강조했다. 이에 따라 사회적 가치의 확산, 평가기준에 관한 논의가 사회 여러 영역에서 활성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회적 가치가 사회적경제와 상충한다는 역설적인 의견이 제기된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 가치 논란의 주요 쟁점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파악해봤다.
 
2017년 다시 발의된 사회적 가치 기본법
 
2017년 10월 박광온 의원(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이하 사회적 가치 기본법)이 발의됐다. 이 법은 2014년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발의됐으나 상임위에서 통과되지 않아 자동 폐기됐다.
 
사회적 가치 기본법은 공공부문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선도하고, 민간부문으로 이를 확산시킨다는 내용을 담았다. 황선희 지속가능경영재단 이사장은 “현재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공공성은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공공기관 신뢰도 역시 미흡하다”며 “사회적 가치 기본법을 통해 공공기관부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이를 통해 국민 신뢰를 높이려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가치 기본법은 우선 공공부문에서 사회적 가치를 운영의 핵심가치로 채택해 업무 수행 과정 전반에서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도록 했다. 사회적 가치 기본법에는 “정책 등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물품, 공사 및 용역 등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부문의 수주 기회가 늘어나도록 우대할 수 있음”이라고 명시돼있다. 단순히 공공부문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관련 이해관계자들에게 사회적 가치를 장려하고 실현케 하는 구조를 염두에 뒀다. 사회적 가치 성과를 자체 평가하고, 우수사례로 인정되는 기관과 부서에게 포상하는 것 역시 법안의 내용에 포함돼 있다.
 
정부의 핵심 국정운영 이념이 된 사회적 가치
 
법안의 통과와는 별개로 문재인 대통령은 현 정부의 국정과제와 정부혁신 종합 추진계획에서 사회적 가치를 핵심 국정운영 이념으로 확립했다. 지난 3월19일 발표된 정부혁신 종합계획의 첫 번째 비전은 ‘정부운영을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전환한다’였다. 이 비전을 통해 정부는 정책과 재원을 배분하는 우선순위를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를 위한 인프라로서 정부의 예산·조직 체계를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혁신 10대 중점사업의 가장 첫 번째에도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재정투자 확대’가 있다. 이는 세 번째 전략인 ‘낡은 관행을 혁신하여 신뢰받는 정부’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고 ‘사람이 중심’인 경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현 정부의 국정운영 핵심 이념이 사회적 가치인 만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여러 정책이 이미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되고 있다. 근로자 대표가 이사 자격으로 이사회에 참석해 근로자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이사제는 서울시와 광주시에서 이미 운영되고 있다. 경기도는 ‘경기도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 제정안’이 의결되는 대로 내년 1월부터 산하 11개 기관에서 노동이사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지난 18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 따르면 앞으로 공공기관 경영평가 지표는 사회적 가치 창출 측정 방식으로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의 신뢰성이 떨어진 상황에서 사회적 가치를 매개로 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현재 직무 중심인 공공기관의 보수 체계를 점검하고 평가에서 사회적 가치와 관련한 내용을 포함할 예정이다. 이에 따른 상세한 평가 지표도 마련됐다. 공공기관에서는 지난 7월부터 자체적인 혁신 계획을 수립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3월 정부혁신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국정운영의 핵심 가치로 ‘사회적 가치’를 내세웠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지난 3월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회 정부혁신 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사회적 가치 기본법이 미칠 영향
 
2017년 10월 발의된 사회적 가치 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사회적 경제 조직에 크게 두 방향의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첫 번째는 사회적 가치의 낙수효과다. 공공기관의 경영평가 지표가 사회적 가치 창출 측정 방식으로 전환됨에 따라 기관의 자체적인 사회적 가치뿐만 아니라 조달, 용역 등 계약 업체를 선정하고 유지할 때에도 사회적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 
 
현재 많은 기업과 공공기관에서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는 기조는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기업 이해관계자와 공급사슬망에 속한 협력업체에서 사회적 가치가 실현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안치용 한국CSR연구소장은 “사회적 가치 기본법이 통과되면 공공기관이 기관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에게도 사회적 가치를 요구하게 된다”며 “말하자면 ‘공공부문 발 사회적 가치 낙수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두 번째로 이 법안은 사회적 기업 사이의 경쟁을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부는 사회적 기업 인증 제도를 운영하면서 인증 사회적 기업에 많은 지원을 했다. 지원이 달려 있다 보니 사회적 기업 인증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고 인증을 받기도 어려웠다. 
 
정부는 복잡한 인증과정을 거친 일부 사회적 기업들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했다. 이런 배경에서 사회적 기업 인증제가 유지되는 바람에 사회적 기업의 숫자가 제한적으로 늘어났고 이에 따라 사회적 기업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가 제대로 확산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제기되기 시작했다. 
 
박주원 지속가능경영재단 CSR센터장은 “정부 정책의 핵심으로 사회적 가치가 들어가고, 사회적 가치의 확산을 중시하는 만큼 앞으로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는 데 필요한 인증 기준을 낮추거나, 인증제가 아닌 허가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기존 소수의 인증 사회적 기업은 공공기관 입찰에서 우선순위가 부여되는 등의 혜택을 받았다. 사회적 기업 인증제가 허가제로 바뀌면 사회적 기업의 수가 증가하기 때문에 그동안 사회적 기업에 부여된 혜택이 어쩔 수 없이 줄어들게 된다. 박 센터장은 “결국 인증제의 폐지로 사회적 기업의 수가 증가하고, 이들 사이의 경쟁이 격화할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경제 조직의 대응
 
일부 사회적 경제 조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가치 평가기준 마련에 난색을 표한다. 사회적 기업은 그 자체가 한 분야의 특별한 사회적 가치 추구를 위해서 만들어진 조직이기 때문에 별도의 사회적 가치 평가기준이 필요하지 않다는 견해다.
 
현재 사회적 기업은 일자리 제공형, 사회 서비스 제공형, 지역사회 공헌형, 그리고 기타형으로 구분돼 있다. 대부분의 사회적 기업은 목표로 하고 있는 하나의 가치만 실현하면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기 위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일자리 제공형’인 사회적 기업은 근로자를 다섯 명 이상 고용하고 그중 30%이상을 취약계층에서 선발하며 이들에게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이번에 발의된 사회적 가치 기본법은 한 가지 가치만을 만족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신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기본으로 한다. 특정한 한 가지 사회적 기업 유형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닌 전반적인 사회적 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비전 하나만 충족시키는 기존 방식을 넘어서서 민주적인 의사 결정과 환경 경영 등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사회적 기업이 더 다양한 조건을 만족시켜야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불만이 나온다.
 
인력의 규모가 작은 대부분인 사회적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평가하며 실현과 연결짓는 구조를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사회적 기업의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이미 대응책을 마련한 지자체가 있다.
 
경기도 파주시에서는 기초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화폐 단위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이를 평가했다. 2015년부터 사회적 기업이 창출하는 사회성과를 화폐 단위로 측정하고 있는 SK사회공헌위원회와 함께 파주시는 지난 6월부터 3개월 동안 사회적 기업 24곳을 대상으로 사회적 가치를 측정했다. 측정 결과, 파주시의 사회적 기업은 전체 약 66억원, 기업 평균 2억6000만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추산됐다. 파주시에서 사회적 경제의 사회적 가치를 화폐 단위로 측정한 명확한 결과를 통해 각 기업이 만들어낸 사회적 가치를 비교하고, 사회적 기업 스스로가 자신이 만들어낸 사회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흥시는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서비스 제공을 통해 사회적 가치가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추적하는 사회적 가치 매핑(Mapping)을 기획했다. 시흥시에서 시행한 사회적 가치 매핑은 사회 서비스 현황을 조사하고 사회 서비스의 지역별 충족률과 수혜율을 파악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인구 대비 사회적 경제 조직의 개수, 취약계층 고용 현황, 기부 현황을 통한 사회 서비스 지역별 수혜율, 사회 서비스 지역별 충족률, 사회적 서비스의 인지 경로·이용 현황 등 다양한 방면으로 사회 서비스의 현 상황을 추적했다. 
 
이 조사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기획하고 주도한 전국 최초의 사례다. 시흥시는 통계자료와 분석을 통해 사회 서비스와 관련한 현 상황을 점검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서비스의 활성화 방안을 마련했다. 시흥시의 사회적 서비스 매핑을 통해 단순히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가치를 누릴 수 있도록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회적 가치 측정 모델 개발과 사회보고의 시급한 추진 
 
파주시와 시흥시에서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는 데 사용한 지표는 사업적 성과가 명확하고 규모가 큰 제조업 기업에 유리하다는 문제점을 갖는다. 파주시는 SPC(Social Progress Credit)라는 SK의 지표를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의 가치를 측정했다. 
 
SK는 SPC를 활용해 직원 1인당 교육시간 등 정량적인 지표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화폐 가치를 계산해 그만큼의 현금 인센티브를 준다. 따라서 정량적인 지표에 많이 대응할 수 있는 규모가 큰 기업이나 노동을 많이 활용하는 업체가 이 지표 구성에서는 유리하다. 
 
반면 콘텐츠를 만들어내거나 규모가 작은 사회적 기업들은 성과를 명확히 측정하기 어렵고, 성과의 증가율이 비교적 작기 때문에 규모가 큰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할 소지가 있다. 화폐 가치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는 것 역시 의미가 있지만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는 데 정량적인 지표뿐 아니라 정성적인 지표 역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중앙정부, 지자체 및 정부기관에 속해있는 기관 등이 적극적인 사회책임조달 정책을 통해 사회적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를 유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주원 센터장은 “사회적 경제를 사회적 가치를 통해 미세조정하는 일은 사회적 기업을 벗어나 사회 전반에 걸친 사회적 가치 확산이란 큰 그림 속에서 추진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안치용 소장은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다수가 납득할 만한 사회적 가치 측정 모델을 만드는 일이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가치 정책에서 우선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일정 규모 이상의 조직에게 지속가능보고 혹은 사회보고를 의무화하는 것 또한 시급히 추진되어야 하는데, 크게 보아 사회적 가치 측정과 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재인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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