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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포스코)환동해권 중심 도시 포항 구상
(6)지역사회 협력 조직 구성, 대대적 투자
2018-10-28 13:15:03 2018-10-28 13:15:03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1980년대 후반 이후 포스코는 민주화와 지방화라는 정치사회적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포항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포항과의 보다 적극적인 협력과 융화에 박차가 가해진 것이다. 이 무렵 제3자의 시각에서도 ‘포항 속의 포스코’ 명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인식되었다. 
 
포스코는 지난 2009년 8월15일 포항제철소 나눔의 토요일을 맞아 포항제철소장 등 임직원과 수중환경연구회,해양봉사회,수중재난구조봉사단과 외주파트너사 연합봉사단 등 43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형산강 하구에서 바다정화 활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사진/뉴시스
 
1989년에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에서 나온 보고서는 비록 복지후생 제도에 대한 포스코 사원들의 전반적인 만족도는 높지만 20대 평사원들의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1992년에 나온 보고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이제 포항스코는 대규모 사택 단지의 조성을 제고할 단계에 왔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사원들과 지역 주민이 섞여서 사는 현지화 방안을 고민해야 하며, 특히 사생활을 중시하고 회사 생활의 긴장을 외부 생활에서 해소하려는 새로운 시대의 가치관에도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요컨대 ‘포스코는 포스코인만의 회사는 아니다. 지금까지는 포항이나 광양 주민들이 포스코에 대해 다소 거리감과 소외감을 느껴온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는 여러 가지 지역 사회의 문제 해결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이웃과 주민은 물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문자 그대로 민족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연구 용역의 결론이었다.
 
이 무렵 포스코의 새로운 지역 전략은 한편으로는 대내외적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과는 직접적인 상관없이 원래 예정된 수순일 수도 있다. 또한 청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정치적’ 행보가 포스코와 포항 사이에 협력적 공생의 길을 열었던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1980년대 말 이후 포항과 포스코의 적극적 융합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업의 사회문화적 헤게모니 강화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로부터 도덕적 승인과 성원을 받지 못했다. 1980년 후반은 민주화와 함께 대기업들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헤게모니가 강화되는 시점이기도 했으며, 포스코도 예외가 아니었던 셈이다. 둘째는 성장 동맹(Urban growth machine)의 구축이다. 이는 지방화와 함께 지역단위의 경제성장 정책이 필요해지면서 지자체, 기업, 대학, 언론 등이 지역의 발전에 협력하고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사회문화적 헤게모니 강화의 경우 포스코는 1989년부터 1998년까지 포항의 체육, 문화, 기반 시설, 불우 이웃 돕기, 장학 사업 등에 약 430억원을 투자하였다. 그 이전 20년 전체의 40억원과 비교하면 12배나 증가한 금액이다. 포스코과 포항은 ‘물과 고기’의 동반자적 관계인데, 과거 20년 동안 거의 모든 설비 투자를 마쳐 놓고, 드디어 지역 협력에 깊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이와 관련된 설명이다. 1993년 황인안 당시 포스코 지역 협력 실장은 “회사의 성공적인 경영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 나머지 그동안 지역 사회에 대한 배려가 미흡했던 부분이 없지 않았다. 포스코가 시민 위에 군림한다고 하는데 의식적으로 무시한 것은 아니다. 오늘의 포철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형팔 당시 포스코 전무이사 또한 그해 <포항연구> 좌담회에서 “지난 25년간은 회사를 키우고 회사의 목표를 일단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 지상 명령과 같았다. 그러니까 지역 사회를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는 과오 아닌 과오를, 그러니까 결코 고의적이라고 하기 어려운 과오를 범했다는 그 점은 회사도 인정하겠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제부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지역 사회 협력 담당 조직을 중심으로 각종 문화 행사 및 문예 활동에 대한 스폰서 역할을 자임하였고 1988년 이후에는 영일만 쇳물축제를 주최하기도 했다. 1부처 1향촌 자매결연 사업을 벌인 결과, 포항시 전체 동의 70%가 포스코와 자매 결연을 맺기도 했다. 같은 해 포스코는 50억원 짜리 포항 시민문화회관을 지어 포항시에 기증할 것을 약속했다. 1990년 11월에는 국내 최초의 축구 전용 잔디 경기장이 영일만 포스코 본사 옆에 완공되었다. 2만2000명의 관중 수용 능력을 갖춘 이 경기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 당시 국제축구연맹(FIFA) 조사단 실사 때 한국 측의 체면을 간신히 세워준 국내 유일의 축구 전용 경기장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1991년에 청암이 포항을 환동해권 중심 도시로 발전시킬 거대한 구상을 제시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는 가칭 ‘포항광역개발 기본구상에 관한 용역’을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에 맡겼고 그 결과물은 1992년 3월에 나왔다. 여기에는 남북 화해를 포함한 환동해권의 경제적 위상이 그려졌는데, 일본의 기타큐슈와 니가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북한의 나진, 선봉을 연결하는 구상으로서 그 거점 도시로 포항이 선정되었다. 이를 위해 영일만 앞바다에 1000만평 규모의 해상 신도시, 25만톤급 대형 선박의 접안이 가능한 대규모 항만, 그리고 마하 3급 항공기의 이착륙이 가능한 국제공항 건설이 계획 속에 포함되었다. 이와 더불어 포항공대와 포항산업과학연구원, 포항방사광가속기를 중심 기관으로 하는 포항 테크노 파크 설립 계획도 만들어졌다.
(자료: 박태준과 지방, 기업, 도시 - 포철과 포항의 병존과 융합, 전상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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