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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 ‘출국’ 속 그 남자가 절규로 죽음을 원했던 이유
2018-11-14 15:01:19 2018-11-14 15:01:25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가슴이 찢어진다. 한 남자가 또 다른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부짖는다. 그는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한다. 죽고 싶단다. 그 표정이 절규에 가깝다. 그는 진심으로 죽고 싶다. 여기서 ?’란 질문을 해보자. 죽고 싶은 심정은 과연 어떤 감정인가. 그 남자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악다구니를 친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다. 그 고통을 견디기 힘드니 차라리 죽겠단 것이다. 영화 출국속 재독 경제학자 영민(이범수)은 북한 통일전선부 35호실 실세 최과장(이종혁)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 중이다. 그 애원에 최과장은 답한다. ‘지옥에서 살아가는 고통을 맛보여주겠다라고.
 
 
 
출국은 한 남자이자 가장이 겪을 수 있는 극한의 심리적 압박감을 그린다. 영민은 잘못된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이 자신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는 군사독재정권에 반대한 시위 전력으로 입국이 금지된 반체제 인사다. 독일 베를린에서 유학 중이던 그는 자신의 연구 실적을 높이 평가한단 한 남자의 꼬임에 빠져 북한으로 월북한다. 그를 꼬인 남자는 또 다른 재독 학자 강문환(전무송). 나중에 밝혀지게 되지만 그는 북한의 고위 관료다. 여기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겠단 납북 공작 책임자 김참사(박혁권)까지 나선다.
 
결국 북한으로 가지만 현실은 영민의 기대와는 너무도 달랐다. 그는 결국 첩보원 훈련을 받고 다시금 독일 베를린으로 보내진다. 자신이 포섭된 것처럼 다른 지식인들의 납북을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가족과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예상대로 탈출은 실패한다. 영민은 홀로 서독과 미국 CIA 측에 인계되고 그의 아내와 두 딸은 북한 당국자들의 손에 붙잡힌다. 이 지점부터 영민은 폭발한다. 자신을 도와주던 독일 거주 한국인 무혁(연우진)이 사실은 대한민국 안기부 요원이었단 신분도 알게 된다. 그는 이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혼자다. 아니 사실 그의 안위는 대한민국 북한 서독과 동독 그리고 미국 CIA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다. 영민과 가족은 이제 이 얽히고설킨 냉전 체제의 이념 전쟁 속 한 가운데 떨어진 미아가 된 셈이다. 영민은 가족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살 새로운 곳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서방 세계의 정보 당국자들은 영민을 이용해 다른 목적을 겨냥한다. 그리고 그 표적은 영민을 이용해 또 다른 목적을 겨눈다. 평생을 공부와 연구만 한 학자 영민은 극한의 심리적 압박감에 내 몰린다. 그 압박의 이면에는 아내와 두 딸의 생사가 걸려 있다. 그를 도울 손길은 어디에도 없다. 모두가 목적을 갖고 영민을 이용하려 든다.
 
영화 '출국' 속 한 장면. 사진/디씨드
 
출국 1980년대 냉전 시대가 배경이다. 겉으로 드러난 외피는 이렇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독일 그리고 독일의 분단 도시 베를린을 배경으로 각국 첩보원들의 숨막히는 정보전이 이 영화의 완벽한 외피다. 하지만 의외로 이 영화는 정적이다. 첩보 스릴러의 동적인 요소는 영민의 절박하고 극단으로 내몰린 심리를 표현하는 외피일 뿐이다. 영화는 실제 동력은 바로 영민이 느끼는 극한의 감정이다.
 
자신을 둘러싼 위험 속에서 그는 점차 코너로 내몰린다. 퇴로가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한 남자는 결국 선택을 해야 한다. ‘사느냐 죽느냐두 갈래일 뿐이다. 물론 그 선택을 영화는 영민 스스로가 하게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권력이 색깔이 엄연히 존재하던 그 시절, 흑과 백의 힘은 영민의 고통과 심리적 압박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영민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탐할 뿐이다. 영민의 목적을 도와야 할 실리와 명분 자체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시선이 흑과 백 두 힘의 균형이 바라보는 영화 속 영민의 극단적 압박의 심리 상태다.
 
영화 '출국' 속 한 장면. 사진/디씨드
 
결과적으로 출국은 생존의 목적을 두고 가족의 삶을 지키려 했던 한 남자의 잘못된 판단이 불러온 파국의 상처를 더욱더 생채기 낼 뿐이다. 피가 흐르고 진물이 터지는 그 상처는 결코 아물 수가 없다. 그래서 영민은 그렇게 죽여 달라고 애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영민은 이미 처음부터 그 고통의 가늠자가 어디를 겨누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는 듯 했다. 그래서 그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죽음을 애원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마지막 쓸쓸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 시선은 관객 자신의 바라봄일 수도 있고, 영민의 바라봄일 수도 있다. 무엇을 바라보는 것인지는 관객들의 감정이 답을 줄 것이다. 개봉은 14.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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