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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신사'와 '야수'의 경계에서…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지난달 새 시즌 개막…2004년 초연 이후 14년간 흥행 행보
배우 홍광호의 가창력…대범한 표현력도 '눈길'
2018-12-19 00:13:09 2018-12-19 00:21:37
[뉴스토마토 정초원 기자]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날 묶어왔던 사슬을 벗어던진다/지금 내게 확신만 있을 뿐/남은 건 이제 승리뿐/그 많았던 비난과 고난을 떨치고 일어서/세상으로 부딪혀 맞설 뿐"(지킬) 
 
한국 뮤지컬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곡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법한 넘버 '지금 이 순간'이 울려 퍼지던 순간, 열창이 끝나기가 무섭게 관객석으로부터 환호가 쏟아져 나온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서 지킬 역으로 분한 배우 홍광호가 1200명이 넘는 대극장 관객 전체를 장악한 순간이다. 
 
사진/오디컴퍼니
 
스스로를 '인간 실험'의 대상으로 삼은 남자의 이야기, 뮤지컬 '지킬앤하이드'가 다시 돌아왔다. '지킬앤하이드'는 영국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1886년 발표한 문제작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이상한 사건'을 뮤지컬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극의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이미 세계 문학사에서 이중인격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두 캐릭터, 지킬과 하이드의 대립이다.
 
아버지의 병을 고치려는 목적으로 무모한 실험에 몸을 맡긴 '선(지킬)'과 하루가 멀다 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악(하이드)'의 극명한 대비는 스릴러 특유의 공포심과 미묘한 해방감을 동시에 자극한다. 특히 평생을 신사로만 살아왔던 지킬이 내면의 포악한 짐승을 꺼내게 된 계기가 지극히 선한 의도였다는 점은 모순적이기에 더욱 흥미롭다. 병마에 영혼이 저당잡힌 환자들을 자유롭게 해주려던 의사로서의 신념이 곧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던 악을 풀어주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사진/오디컴퍼니
 
어떤 뮤지컬이든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는 극의 전체 분위기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이기 마련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킬앤하이드'는 유독 타이틀롤의 무게감이 남다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주연배우가 그 배역을 어떤 색깔로 소화했느냐에 따라 극의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덕분에 '지킬앤하이드'의 열성팬 중에는 각각 조지킬(조승우)과 홍지킬(홍광호), 은지킬(박은태)로 불리는 세 배우가 각각 극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는지 관극하려는 '회전문 관객(같은 공연을 수차례 다시 보는 관객)'이 유독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승우는 특유의 디테일한 연기력으로, 박은태는 캐릭터의 균형을 맞추는 절묘한 해석으로 무대를 빛내는 식이다. 
 
지난 13일 저녁 공연에 오른 홍광호는 '신사'와 '야수'의 대결을 연상케 하는 박진감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사실 관객 입장에서 하이드라는 캐릭터는 단순한 악의 영역으로 치부하기에는 꽤 통쾌한 구석이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이 때문에 거친 야수와도 같은 홍광호의 대범한 연기는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더 확장해주는 측면이 있다.
 
하이드가 첫 살인을 저지르는 1막 엔딩은 이런 캐릭터의 특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하이드는 어린 소녀를 겁탈하려는 주교의 악취미를 비난하며 그를 '처단'하는데, 스스로 악마성을 자처하며 주교를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하이드는 선과 악 가운데 어느 쪽이라고 뚜렷하게 단정짓기 모호할 정도로 이중적이다. 더욱이 원작의 하이드가 죄 없는 소녀를 거리에서 무참히 폭행하는 인물로 그려진 것과 달리, 뮤지컬에서의 하이드는 위선으로 가득 찬 귀족들을 범죄의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좀 더 대중적인 설득력을 갖췄다. 악을 대표하는 캐릭터인 하이드에게 많은 관객들이 매력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오디컴퍼니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음산한 밤거리를 재현한 무대를 오가며 '살인, 살인(Mrder, Murder)' 등 중독성 있는 넘버를 소화하는 앙상블은 수준급이다. 특히 앙상블 배우들이 군무와 함께 선보이는 '가면(Facade)'의 가사는 '지킬앤하이드'의 주제의식을 정면으로 관통한다. "내가 아는 것은 단지 보는 것뿐/내가 보는 것은 단지 허울일 뿐/알 수 없는 정말 알 수 없는 가면 속의 허상/주위를 봐 둘러봐봐/잔뜩 차려입은 모습 잔뜩 꾸며대는 얼굴 보여/겉만 알고 속은 몰라/보이는 게 다가 아냐 인간들은 변장의 달인." 관객석에 앉은 또 다른 지킬들에게 경고하는 듯한 이 넘버는 주연배우의 솔로곡 못지않은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해낸다. 
  
지킬과 하이드 사이를 오가며 스릴러 로맨스를 완성시키는 상대역들의 열연도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특히 지킬과 하이드의 양면성을 더욱 섬세하게 조명해주는 쇼걸 루시의 매력이 두드러진다. 루시 역을 맡은 배우 해나는 한 사람에게서 사랑과 공포를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는 복잡한 캐릭터를 인상적으로 소화했다. 배우의 팔색조 매력은 1막에서 선보이는 솔로 넘버 '뜨겁게 온몸이 달았어(Bring on the men)'를 통해 극대화한다. 
 
사진/오디컴퍼니
 
한편, '지킬앤하이드'는 지난 2004년 초연한 이후 수많은 앙코르 공연을 거치면서도 뮤지컬계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은 흥행작이다. 누적 공연 횟수는 1100회, 누적 관객 수는 120만명에 달한다. 초연을 시작으로 평균 유료 객석 점유율 95%를 기록했으며, 2010년 프로덕션 당시 1차 티켓 오픈 예매처 판매 점유율 85%를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번 시즌에서는 조승우·홍광호·박은태가 지킬과 하이드 역에 트리플 캐스팅됐다. 루시 역은 윤공주·아이비·해나, 엠마 역은 이정화·민경아가 맡았다.
 
'지킬앤하이드'는 내년 5월19일까지 샤롯데시어터에서 공연한다. 
 
정초원 기자 chowon61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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