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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말모이’, 우리가 모르고 살아온 그 소중함에 대해
2018-12-19 00:00:00 2018-12-19 00:17:35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담백하다. 할 말만 한다. 아니 할 말만 해야 한다. 사전(辭典)에는 말이 담겨 있다. 알아야 할 말이 담겨 있다. 해야 할 말이 그 말이다. 그 말은 생각을 담고 있다. 그 생각은 정신이다. 정신은 의지다. 의지는 힘이 된다. 그것이 모이고 모이면 거대함이 된다. 한 사람의 열 발자국보다 열 사람의 한 발자국이 더 힘을 낼 수 있다. 그래서 말은 중요하고 위대하다. 1910 8월 국권이 피탈된 그 시점부터 1945 8 15일 광복까지. 우리에겐 그 위대함이 없었다. 무려 35년의 시간이다. 하지만 그 시기,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 위대함을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것으로 품어내고 지키려 노력했던 시기다. 국적 불명의 언어가 난무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영화 말모이는 아주 담백하게 말한다. 아니 별다른 수사를 붙이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말한다. ‘말은 이렇게 소중한 것이다라고. 영화 말모이는 간결하면서도 명료하다. 요즘 영화들이 드러내는 테크니컬한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이건 말모이란 단어에서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화려하다면 그건 말모이가 아니다. 이 단어는 사전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소중한 그것의 가치를 잊고 살아왔다. 분명히 그랬던 것 같다.
 
 
 
영화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우리말을 지키려 했던 조선어학회 선열들의 얘기를 극화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우리말을 지키려 했을까. 겨우 말일 뿐이다. ‘나라가 뭐 중요한가.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그만 아닌가란 그 시절을 살아간 우리네의 생존적 방식에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그 질문을 던진다. 살아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인지를 말이다.
 
배경 자체가 그렇기에 전개 방식은 예상 가능하다. 예상 가능하기에 투박하고 뻔하다. 그것을 포장하려 들지도 않는다. 세련된 방법은 아니지만 진심을 다하기에 울림의 강도는 분명히 예상을 넘어선다. 힘을 빼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긴다면 그 예상을 분명히 넘어서는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
 
조선의 경성이 배경이다. 일자 무식 판수(유해진)는 살기 위해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글을 모른다. 그게 살아가는 데 문제는 아니다. 나라 잃은 그 시절 조선인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자신도 모르게 길들여져 있었다. 경성중학교 이사장(송영창)이란 권력의 중심에 선 인물도 항일에서 친일로 돌아선 시대다. 친일이라고 하지만 그것 역시 살아가기 위함이었다. 그 시절 누구도 조선의 독립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 시절 사람들은 나라를 잃고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말까지 빼앗겼다. 그래서 이사장의 아들 류정환(윤계상)은 선택을 한다. 말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 아버지의 변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지키고 싶었다. 주시경 선생이 완성하지 못했던 우리말 사전말모이를 만들어야 했다. 모든 것을 잃어가던 우리의 모든 것을 다시 바꿀 그 시작을 말이다.
 
영화 '말모이'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 중요성의 대변자는 영화 속에서 판수다. 그는 살아가기 위해 도둑질을 한다. 다니던 극장에서도 쫓겨난다. 그리고 우연히 훔친 가방을 통해 정환과 연결이 된다. 그는 정환이 대표로 있는 서점(조선어학회)에서 일하게 된다. 일을 하면서도 우리말의 중요성은 알지 못한다. 글을 모르기 때문이다. 글을 몰라도 큰 불편이 없다. 그 시절은 불편이 문제가 아니다. 삶이 문제다. 경성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이제 소학교 입학을 둔 딸을 홀로 키우는 판수다. 두 자녀의 생존이 그의 관심사일 뿐이다.
 
그는 아들과 딸을 위해 서점에서 일을 하면서 조금씩 눈을 뜬다. 나쁜 짓을 하면서 감옥도 몇 번 들락거렸다. 툭하면 싸움질을 하면서 자신을 지켰다. 하지만 천성은 착한 인물이다. 서점에서 일하는 또 다른 인물 조선생(김홍파)은 판수와 감옥 동기다. 조선생은 판수의 사람됨을 알고 있다. 정환은 그럼에도 판수를 믿지 못한다. 그와의 첫 만남이 껄끄러웠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정환은 판수의 진심과 사람됨을 알게 된다. 이제 두 사람은 동지다. 전국의 말을 모아 말모이를 만들 동지다. 그 과정에서 판수는 글을 깨우치면서 살아가기 위해 살던 자신의 삶에서 처음으로 신념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 신념은 말이 된다. 눈을 깨우치니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세상을 바라보니 비로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됐다.
 
영화 '말모이'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후반부 전국의 우리말 교사들이 모여 비밀리에 공청회를 여는 장면에선 다소 빠른 호흡으로 긴박감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 시절 분명히 있었던 실화에 바탕을 둔 작법이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했던 시절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이중 반전의 공청회 장면은 묘한 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특히나 공청회에서 전국 팔도의 사투리 가운데 표준어를 정하는 판수의 기발한 발상은 웃음과 묘미 그리고 드라마를 느끼게 하는 장치다. 영화 중간쯤 등장하는 팔도 사투리의 맛을 느끼게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우리말의 기기묘묘한 맛과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단어 하나에 담겨진 정서와 문화 그리고 생각과 정신을 통합하는 연출의 방식이 담백하면서도 힘을 느끼게 한다.
 
물론 진심은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 낸 말모이원고다. 정환의 서점에서 일하던 모든 일원들이 죽음을 불사하면서도 지켜낸 말모이원고가 실제 서울역 역사 창고에 발견된 주시경 선생의 말모이원본이었단 영화 마지막 자막에선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전율이 온 몸을 감싼다. 2차 대전 이후 전 세계에서 자국 언어의 사전을 보유한 나라가 현재까지 불과 20개국에 불과하단 사실도 놀랍다. 그 가운데 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영화 '말모이'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창조된 인물이지만 분명히 그 시절 반드시 존재했을 법한 정환도 판수도 그리고 정환의 서점에서 함께 일하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모습도 영화가 끝난 뒤 머리 속 또렷한 잔상으로 남아 있게 된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쓰는 우리말의 소중함을 분명히 모르고 있다. 아니 모른다. 그래서 말모이의 진심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강하면서도 꾸밈이 없다. 말은 총과 칼보다 강하다. 이건 누구라도 이견이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분들은 그렇게 지켜내려고 노력한 것이다.
 
영화 '말모이'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그 강함을 모르고 살아왔고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그것을 일깨워 주기 위해. 영화 말모이’, 소중한 것을 모르고 살아 온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워 준다. 개봉은 내년 1 9.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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