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인터뷰)‘말모이’ 윤계상, 그저 숟가락만 얹었다지만
‘범죄도시’ 악역 ‘장첸’ 이후 차기작, 조선어학회 실화 모티브
“우리말 지키려 했던 그 분들의 노력…감사하고 가슴 뭉클”
2019-01-15 00:00:00 2019-01-15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젠 누가 뭐라 해도 윤계상은 배우다. 이를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민 아이돌 god 멤버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팀을 탈퇴하고 배우로 전업을 선언했다. 이미 여러 방송을 통해 그의 배우 전업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유를 밝히기 전까지도 사실 그의 전업을 곱게 본 대중은 별로 없었다. 우선 아이돌 출신으로 성공적인 배우 전업을 한 케이스가 별로 없었다. ‘국민 아이돌 출신 타이틀을 이용하려는 것 아닌가’란 오해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는 더욱 악착같이 매달렸다. 성공이 보장된 블록버스터 출연보단 색깔 있는 연기를 선보이는 배역을 주로 맡아왔다. 그것이 의도이던 아니던 그 행보가 묘했다. 그리고 ‘범죄도시’(2017년)를 통해 확실한 존재감을 선보였다. ‘발레교습소’로 스크린 데뷔를 한 지 만 13년 만이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한글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깊고 담백한 ‘말모이’를 통해 그는 다시 한 번 존재감을 증명했다. 윤계상은 이제 아이돌이 아닌 배우다. ‘말모이’가 증명했다. 아니 그가 증명한 것이다.
 
배우 윤계상.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지난 해 ‘말모이’ 언론 시사회 이후 며칠 뒤 서울 삼청동에서 윤계상을 만났다. 그는 영화의 호평과 연기력 칭찬에 연신 손사래만 쳤다. 그는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라는 말로 자신에게 향하는 호평에 부끄러워했다. 그저 시나리오가 좋았고, 함께 했던 배우들이 좋았고 또 모든 것이 좋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란다. 자신은 ‘작은 존재’라며 연신 부끄러워했다.
 
“정말 전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감독님이 정말 꼼꼼하셔서 감독님이 하라는 대로만 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해진이 형이 먼저 캐스팅이 돼 있어서 고민할 필요도 없었어요. ‘판수’ 역을 형으로 놓고 읽어봤는데 너무 괜찮고 너무 재미가 있었어요. 무엇보다 전 이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가 있었어요. 다소 맨숭맨숭한 느낌도 있단 지적도 있었는데. ‘범죄도시’ 이후 제가 받은 시나리오 중에 제일 재미있었어요. 진짜로요(웃음)”
 
그가 재미있었다고 한 지점은 ‘몰랐던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었다고. 조선어학회 사건에 관란 실화를 모티브로 한 ‘말모이’다. 우선 ‘말모이’란 단어 자체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단다. 이렇게 편하게 쓰고 아무런 강제 없이 쓰는 우리 말을 지키기 위해 이런 노력을 했었단 사실을 전혀 몰랐단다. 그 점에 부끄러웠지만 또 너무 극적이었다고. 그래서 꼭 해보고 싶었고 해야겠단 생각도 강했다고.
 
배우 윤계상.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런 과정이 있었단 사실은 정말 몰랐죠. 그저 대략적인 정보로만 알았죠. 일제의 말살 정책 정도.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우리 말이 이렇게 지켜졌단 게 놀랍고 감사했어요. ‘말모이’, 사전이란 뜻의 우리 말이에요. 그때 우리 말이 사라졌다면, ‘파란색’이 무슨 뜻인지 여기 커피가 담겨 진 ‘컵’과 술을 담는 ‘잔’이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 우리가 알 길이 없었잖아요.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나아가니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이건 꼭 영화로 만들어져야 할 얘기란 생각이 들었죠.”
 
조금 의외의 지점도 궁금했다. 전작 ‘범죄도시’로 최고의 주가를 올린 윤계상이다. 데뷔 이후 가장 강렬한 악역을 연기했다. 강렬하다 못해 무자비한 인물이었다. ‘국민 아이돌’ 출신의 윤계상이 선보인 ‘범죄도시’ 장첸은 삽시간에 대한민국을 사로 잡았다. 그리고 그 다음 작품이 ‘말모이’ 속 우리 말을 지키려 노력한 ‘류정환’이다. 색깔이나 정체성 모든 것이 정 반대에 서 있는 인물이다. 장첸의 아우라를 빨리 벗고 싶었던 의도가 있었을까. 그는 역시 손사래를 쳤다.
 
“어휴 제가 무슨 대단한 배우라고 그런 이미지를 빨리 벗자고 작품을 가려서 선택을 하겠어요. 하하하. 전 그냥 생계형의 별 것 아닌 배우일 뿐이에요. 실력도 한 참 모자란(웃음). 전작의 이미지를 벗겠다는 생각?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렇고 전혀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요. 그저 시나리오가 가진 힘이 너무 크게 와 닿았어요. 영화에서 표준어 공청회를 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얼굴에 닭살이 돋는 경험도 했어요. ‘말모이’의 힘을 전 믿었을 뿐이에요.”
 
배우 윤계상.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자체 힘이 강력하기에 배역들의 존재감 역시 컸다. 윤계상이 의지를 많이 했던 유해진은 스토리 전체의 흐름을 끌고 가는 ‘판수’란 역을 위해 갖가지 감정을 발산하며 풍성함을 더했다. 반면 윤계상이 연기한 ‘류정환’은 ‘판수’와는 달리 억누르고 숨기고 감춰야 했다. 본인의 감정을 숨기면서 ‘말모이’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는 리더다. 윤계상 입장에선 감정을 누르면서도 극 전체의 동력을 유해진과 나눠서 끌고 가야하는 부담감이 분명했다.
 
“말씀하신 지점과 비슷한 부담이 많았어요. 정환은 자신의 의지와 신념이 정말 강한 인물이잖아요. 그걸 계속 끝까지 끌고 가야하고. 그걸 표현해야 하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어요. 거기에 아버지를 이해해야 하는 지점도 어려웠어요. 한 때는 조선의 교육자였지만 지금은 친일파로 변절한 아버지를 도대체 뭘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지. 그 당시의 시대와 결부시켜서 뭘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몰랐죠. 더욱이 함께 ‘말모이’를 만들어간 동료들이 하나 둘씩 감옥에 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 인물이잖아요. 절벽 끝으로 내몰린 기분이었죠.”
 
그는 ‘절벽’이란 단어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지금도 그는 배우로서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자신을 종종 본다고 한다. 인터뷰를 하는 순간까지도 그런 기분이라고. ‘범죄도시’ 이전까지는 더욱 위태로웠단다. 그 이유가 혼자 무언가를 해결해 보려고 끌어 안고 고민했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고. ‘범죄도시’부터 그걸 탈피하려 노력했단다. 주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아니 깨우친 것이다.
 
배우 윤계상.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마음의 변화라고 할까요. 글쎄요. 지금도 마찬가지고, ‘범죄도시’때도 그랬고. 항상 위태로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범죄도시’를 하고 얼마 전 god 멤버들과 촬영 차 해외도 다녀오면서 그 변화를 좀 인지하기 시작했어요. 너무 혼자 모든 걸 해결하려 노력했단 점을. 이젠 모르겠으면 솔직하게 말해요. 그 간단한 걸 왜 안하고 살았는지 몰라요. 하하하. “
 
사소한 일이고 그전까지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말모이’를 촬영하고 난 뒤 주변에 남아 있는 일본어의 잔재와 우리 말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단다.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을 위해 노력한 수 많은 독립운동가와는 별개로 조선어학회 회원분들의 노력도 크게 주목을 받고 더 높은 평가를 받기를 바란단다. 
 
“어떻게 보면 그 시대에 ‘겨우 말 하나가 뭐 대수롭다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잖아요. 그 시대에는. 그런데 바꿔 생각해보면 그 분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쓰는 이 말이 남아 있었을까. 그분들의 노력으로 말을 지켜냈고 사전을 보유한 전 세계의 몇 안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 하는데. 영화 현장에만 가도 일본어 잔재가 너무 많아요. 우선 저부터 가급적 우리 말을 잘 쓰려고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지금도 지나가다 한글 간판을 보게 되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져요.”
 
배우 윤계상.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배우적 존재감을 선사한 ‘범죄도시’ 이후 달라진 점이 궁금했다. 우선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온단다. 예전보단 많은 시나리오가 온다고. 배역의 폭도 넓어졌단다. ‘범죄도시’ 악역 ‘장첸’ 이후 다양한 색깔의 악역 제안도 많아졌다. 배우로서 참 즐거운 요즘이란다.
 
“많이 들어와요(웃음). 아니 그렇게 많~~이는 아니고요. 그냥 적당히 들어와요. 하하하. 제가 좀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져서 좋죠. 하지만 전 지금도 선택 당하는 입장이에요. 철저하게 을이죠. 하하하. 불러주시면 언제나 전 갑니다. 제가 이래봬도 몸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거든요. 하하하.”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