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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빅조선소 중국기업 인수설에 주변국 긴장
정치적 이해관계 대립, ‘제2의 화웨이 사태’ 가능성 높아
2019-01-17 00:00:00 2019-01-17 00:00:00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기업회생 절차를 진행 중인 한진중공업의 해외 자회사인 필리핀 수빅조선소(HHIC-Phil Inc.)의 중국기업 인수설이 돌면서, 한국과 필리핀은 물론 미국, 일본, 베트남 등 주변 국가들이 긴장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8일 필리핀 현지 올롱가포 법원에 수빅조선소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고, 법원은 15일 이를 접수했다. 이후 절차는 국내의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과 비슷하게 진행된다. 법원은 관리인을 선임하고, 수빅조선소는 회생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한다. 현지 법원은 120일 안에 수빅조선소의 파산 또는 회생을 결정한다.
 
지난해부터 수빅조선소 매각을 추진해온 한진중공업은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면서 투자자 유치 활동을 추진 중이다. 이런 가운데, 필리핀 현지 언론인 인콰이어리는 지난 14일 카페리노 로돌포 필리핀 무역산업부 차관의 말을 인용, 중국 기업 두 곳이 수빅조선소 경영권 인수 의향을 내비쳤다고 보도했다.
 
옛 미군 기지에 중국이···안방 내주는 격
 
부실 민간 기업을 해외국가 기업에 매각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빅조선소가 갖고 있는 위상 때문에 중국기업이 인수전에 참여했다는 소식만으로 여러 국가들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위로는 중국과 대만, 오른쪽은 베트남과 에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이, 오른쪽으로는 일본과 한국, 아래는 호주 등과 연결되는 해상 교통의 중추이자 군사적 요충지다. 남중국해는 필리핀과 중국이, 동중국해는 중국과 일본이, 바로 옆에는 중국과 대만이 대치하고 있어 언제라도 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화약고 지대다.
 
이러한 이유로 수빅조선소 자리는 과거 미 해군이 기지를 운용했다. 지금도 아시아 지역에 배치된 미 해군 군함의 긴급 정비·수리 업무를 수빅조선소에 의뢰하고 있다. 이러한 수빅조선소를 중국기업에 매각한다고 하니, 만약 실제 협상이 진행될 경우 주변국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인수 여력을 갖춘 중국기업은 국영기업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수빅조선소가 중국기업에 매각된다면 중국 해군 군함의 필리핀 주둔의 전초기지로 활용될 수 있다”면서 “최근 미중 무역분쟁의 일환으로 화웨이 사태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이 된다면, 수빅조선소는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진중공업 필리핀 수빅조선소 전경. 사진/한진중공업
 
한진중공업 필리핀 사업기반 '흔들'
 
한진중공업, 더 나아가 한국 조선산업도 수빅조선소 매각은 득보다는 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빅조선소는 21세기 들어 완공된 초대형 조선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건조 프로세스를 적용했다. 한국 조선 빅3 조선소의 특·장점을 모아 30헥타르(90만평)의 넓은 부지이지만 야적장에 쌓아둔 철판이 가공 공장에서 블록과 기자재가 제작되어 크레인으로 도크로 옮기는 운반거리가 1km를 넘지 않고, 생산 과정의 상당부분이 자동화됐다. 이러한 노하우는 중국기업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한국 조선기술 경쟁력이라고 한다.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사업도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한진중공업 건설부문은 지난 1973년 국내 건설업계로는 최초로 필리핀에 진출, 다수의 정부발주 건설공사를 수행하며 현지에 서 사업을 하고 있는 외국계 건설사중 시공능력 1위를 기록했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필리핀 국민이 사랑하는 외국기업에도 수차례 선정되기도 했다. 한진중공업은 수빅조선소를 건설하면서 인근에 약 1000세대 규모의 현지인 근로자 주택단지인 ‘한진빌리지’를 건립해 직원들이 주거와 교육 걱정없이 지낼 수 있도록 해왔다.
 
필리핀 정부의 손실도 크다. 자국내 최대 조선소인 수빅조선소 덕분에 세계 4대 조선국가로 올라설 수 있었고, 수빅조선소에 설치한 트레이닝센터를 통해 수만명의 연수생들이 다양한 업종에 진출, 제조업 기술 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수빅조선소가 좌초됨으로써 무형의 경제효과는 모두 빛을 발하게 됐다.
 
또 다른 조선업계 관계자는 “필리핀 정부로서도 수빅조선소에 대한 부담이 클 것이며, 중국기업으로 매각도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사업 외적인 이슈를 감안해 채권단이 신중히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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