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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업계가 흔들린다)찬바람 맞은 ‘반·디’ 업계…보릿고개 넘자 ‘총력’
“중국의 거센 추격, 특정 사업의 높은 의존도 등이 위기의 원인”
2019-01-18 06:00:00 2019-01-18 06:00:00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세계 정상의 위치를 누렸던 국내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발 과잉공급으로 액정표시장치(LCD) 가격이 급락하면서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논란으로만 존재했던 메모리 반도체 고점 논란이 현실화되면서 시장이 얼어붙었다.
 
2017년까지 LCD 가격 상승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누렸던 디스플레이 업계에 먼저 위기가 찾아왔다. 지난해 상반기 내내 전년 대비 40%까지 떨어졌던 LCD 가격은 9월쯤 반등해 10월까지 하락세가 주춤했으나 이후 다시 가격이 하락했다. 원인은 중국에 있었다. 중국 BOE는 지난해 1분기부터 첫 10.5세대 LCD 생산라인 가동을 시작했다. CHOT와 CEC-판다가 신규 가동한 8.6세대 라인도 빠르게 수율을 끌어올리면서 LCD TV 패널 공급량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2019년에도 가격 하락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LCD 매출 비중이 전체의 80~90%에 달하는 LG디스플레이의 타격은 컸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와 증권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LG디스플레이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696억원 손실이다. 불과 1년 전에 2조4616억원의 사상 최대 이익을 낸 것을 감안하면 상황이 급반전된 셈이다. LCD 매출 비중이 전체 40~50%인 삼성디스플레이도 실적 하락은 면하기 어려웠다. 2017년 5조3970억원에서 지난해 1조7300억원까지 떨어진 연간 성적표를 받아들 예정이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LCD 가격하락으로 힘든 한해를 보냈는데 올해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면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전환에도 비용이 들어 단기간 실적 개선이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라인. 사진/삼성전자
 
지난해 4분기부터는 마지막 버팀목인 반도체마저 휘청이고 있다. 인터넷데이터센터 시설투자를 늘리며 반도체 슈퍼호황을 견인하던 IT업계가 세계 경제 불황으로 투자를 줄이고 있는 데다 스마트폰 시장도 침체기에 접어들어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빠르게 하락했다. 지난해 10월, 11월 두 달 동안만 D램 가격은 12.4% 떨어졌다. 이는 D램이 주요 생산품목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에 곧바로 반영됐다. 분기마다 실적 신기록을 경신했던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직전 분기보다 38% 급감했다. SK하이닉스도 4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17~20%까지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를 든든하게 받쳐왔던 전자산업이 하락세를 걷는 원인은 중국 업체들의 추격이 하나의 요인으로 꼽힌다. 중국 정부는 ‘제조 2025’ 기치 아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에 10년간 1600억달러(약 178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풀고 공격적인 시설투자를 추진 중이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중국 업체가 지난해 LCD TV 패널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한데 이어 올해는 LCD 패널 절반 이상을 공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는 어느 정도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있다고는 하나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 정책을 통해 국가 핵심 산업으로 키우려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올해 양산에 들어가도 약 4~5년 이상의 기술격차가 있다”면서도 “중국 업체들이 내수시장을 선점한다면 국내 메모리 제작사들은 시장점유율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정 사업이나 제품에 의존도가 높았던 점도 위험 요인이었다.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LCD 매출 비중이 40~80% 정도로 높았고 삼성전자도 지난해 3분기 기준 전체 영업이익의 약 80%이 반도체에서 나왔다. SK하이닉스는 D램 매출 비중이 80%에 달한다. 생산 공정은 효율화되고 수요는 많았기에 마진율이 늘었다. 때문에 제 2의 반도체, 제 2의 LCD에 대한 준비가 다소 미비했던 것도 사실이다. 후발 주자는 따라올 수 없는 기술 격차, 저가 제품이 흉내낼 수 없는 품질 차이를 만들어내야 하는 게 전자기업들의 과제였다. 한 전자기업 직원은 “신산업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주력산업이 후발 주자들에게 따라 잡히면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제조기업들은 연구개발 엔지니어들에게 주던 수당을 없애고 마케팅과 구매비용으로 전환해왔다”면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하는데 다소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의 세금부담을 낮춰주고 신사업 관련 규제개혁을 완화하는 등 정부의 투자여건 조성도 원활하지 못했다. 경제계는 미국 정부 35%였던 법인세율을 21%로 대폭 낮춘 반면 한국은 2017년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오히려 인상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여러 가지 노동 정책이 직간접적으로 경영여건을 악화시키고 있다고도 입을 모았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초격차 경쟁력 강화와 미래 사업 발굴로 현재의 위기를 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10나노 중반대 D램 공정 이전과 신제품 개발 등에 80억 달러(약 9조원)를 투자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시안에 있는 낸드플래시 공장 제2라인도 이르면 하반기, 늦어도 2020년부터는 양산에 들어갈 방침이다. 경기도 화성시 반도체 캠퍼스에도 6조원 이상을 쏟아 부어 극자외선(EUV) 전용 공정을 구축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중국 우시 공장을 올해 2분기부터 가동할 것으로 보이며 2020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경기도 이천 M16을 짓고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도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로의 빠른 전환을 꾀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OLED 매출 비중을 현재 10%에서 4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중국 광저우와 파주 신공장에 OLED 생산라인을 건설 중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폴더블폰 시장 개화에 맞춰 접히는 OLED 디스플레이 수율을 끌어올리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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