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사회책임)2018년 시작된 미투운동, 한 해의 기록과 전망
지난해 주요뉴스로 등장해 각 분야로 확산…아직 갈 길 멀어
관련 법안과 사회적 인식 개선 통해 구조적 성폭력 문제 해결해야
2019-01-21 08:00:10 2019-01-21 08:00:10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의 폭로를 계기로 2019년 연초부터 체육계 성폭력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2018년 1월 검찰 내 성폭력 고발로 시작된 미투 운동은 1년이 지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미투 운동은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일상적인 차별과 부조리를 드러내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성폭력 문제를 직접 고발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2018년 검찰 내 성폭력 고발로 시작된 미투 운동
 
2017년 12월 미국의 주간지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할리우드 내에 존재하던 성폭력을 고발한 ‘침묵을 깬 자들’을 선정했다.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본래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을 일컬었다. 한국에서는 2016년에 ‘계 내 성폭력’이라는 이름으로 트위터를 통해 성폭력이 공론화된 적이 있지만, 미투 운동의 본격화는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을 고발한 이후부터다. 서 검사의 폭로로 미투 운동은 봇물 터지듯 사회적으로 확산됐다. 
 
검찰 내 성폭력 고발 이후 곧바로 문화·예술계의 성폭력 고발이 이뤄졌다. 시인 고은, 연극 연출가 이윤택, 배우 조재현·조민기·오달수, 영화감독 김기덕 등 여러 분야의 예술인들이 성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됐다. 3월에는 정치권으로 미투 운동의 열기가 번졌다. 3월5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 씨가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안 전 지사의 성폭행을 고발했다. 안 전 지사는 지난해 8월14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하던 정봉주 전 민주통합당 의원은 2011년 대학생을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나오자 이를 반박했다가, 관련 증거들이 제시되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해 5월에는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회’에서 이뤄지는 성폭력이 폭로됐다. 유명 유튜버인 양예원 씨는 유튜브에 영상을 게시하며 사진계 성폭력을 고발했다. 학교 내 성폭력 폭로도 거세다. 학생들이 자신이 경험한 성희롱 등 인권침해를 고발하는 ‘스쿨미투’는 SNS를 통해 퍼지고 있다. 11월3일 학생의 날을 기점으로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라는 이름의 첫 집회가 열렸다.
 
지난 연말에는 스포츠계에서 미투 운동이 터져나오며 새해 들어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17일,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는 조재범 전 코치를 성폭력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심 선수는 조 전 코치가 자신이 미성년자였을 때부터 상습적으로 폭행하며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이후 전 유도선수 신유용 씨 역시 선수 시절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음을 밝혀 체육계 성폭력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안민석 국회 문체위원장을 비롯한 여야 의원들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체육계 성폭행, 폭행 OUT! 심석희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8년 진행된 미투 운동의 가장 중요한 함의는 성폭력이 발생하고 은폐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권력’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투 운동이 시작된 직후 2018년 2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1.6%가 성폭력의 본질은 권력 관계라고 대답했다. 그간 암암리에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한 성폭력은 미투 운동을 통해 구조에 책임을 묻고 있다.
 
미투 운동은 페미니즘이 한국사회의 담론으로 성장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2018년 5월 혜화역에서 시작한 시위는 광화문에서 지난해 12월22일 열린 마지막 집회까지 총 여섯 번 개최됐다. 경찰은 4·5차 시위에서 참가 인원을 집계하지 않았지만, 3차 집회 당시 경찰 추산 1만9000명이 모였으며, 이는 여성만으로 이뤄진 집회 중 역대 가장 큰 규모였다. 
 
2차 가해와 언론보도 양상…미투 운동을 가로막는 걸림돌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한국사회에 만연한 강간문화’ 등 여성 인권과 관련해 여러 논의를 촉발했다.
 
하지만 미투 운동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미투 운동에 참여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여전히 거세다. 성폭력 피해를 공론화해 미투 운동을 촉발시키는 데 기여한 서 검사는 정계 진출을 위해 피해 사실을 알린다는 의심을 받았으며, 그런 의사가 없음을 SNS를 통해 밝혀야 했다. 안 전 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김지은 전 수행비서 역시 본인과 가족의 신상 등이 공개되고 지속적인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2018 경기도 양성평등주간 기념토론회에서 발간한 <미투 운동 이후 2차 피해 실태와 향후 과제 자료집>에 따르면 2차 가해는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회통념이 암묵적·명시적으로 시행되는 일이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신상정보가 유포되고, 알리고 싶지 않은 피해 사실이 보도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뿐만 아니라 사건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 혹은 조력자에 대한 징계가 이뤄지거나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미투 운동 당시 가해자가 피해자를 명예훼손이나 무고죄로 고소하기도 했다. 
 
미투 운동과 관련한 언론 보도 역시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명지전문대 연극영화과 교수들의 성폭력이 폭로된 이후에, 한 일간지는 피해자들이 자필로 작성한 진술서를 입수해 공개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인적사항과 진술에 대한 비밀 보장은 법에 명시돼 있음에도 이를 무시한 것이다. 
 
언론이 피해 상황을 집중 보도하는 것 역시 피해자를 수동적이고 고통받는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에 기인한다. 기사에서 사용하는 이미지가, 피해자가 두려워하는 모습이나 웅크려있는 모습이라는 것도 비판받아야 한다. 미투 운동과 관련한 사건을 ‘당했다’라는 말로 보도하는 것 역시 여성을 주체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2014년 여성가족부, 한국기자협회,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여성아동폭력피해중앙지원단이 함께 ‘성폭력 보도수첩’이라는 이름으로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과 보도 실천요강을 만들었다. 한국CSR연구소 안치용 소장은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4년 전부터 존재하는 보도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론이 피해자 보호 없이 선정적인 보도에만 열중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한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 관련 법안은 여전히 계류 중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다. 미투 운동을 통해 공론화한 성폭력을 처벌하기엔 관련 법규가 미비하다. 미투 운동을 통해 밝혀진 권력형 성폭력을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은 아직 계류 중이다. 지난해 1월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국회에선 140여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9건에 불과하다. 미투 운동 후 발의된 첫 법안인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은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피해자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언급한 임의조항이나, 성평등이 아닌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를 통해 피해자를 축소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조직의 폐쇄적인 운용이 성폭력을 조장하고 미투 운동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갓 시작된 체육계 미투 운동에서 이러한 특성이 두드러진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지도자와 선수로 만나는 체육계의 특성상 피해자는 코치의 절대적인 권력에 복종하게 된다. 성폭력 사실을 고발한 이후 운동을 더 못하게 될 것이라는 공포도 피해자들이 미투 운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서로 선·후배라는 한국 사회의 엘리트 체육은 영구제명처분을 받은 감독들이 3년 자격정지로 처벌 수위를 낮출 수 있는 보호막이 되고, 범행 이후에도 쉽게 코치나 감독 자리에 복귀할 수 있게 만든다. 
 
법원의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도 미투 운동 이후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만든다. 지난해 8월14일 무죄 선고를 받은 안 전 지사의 판결에서 법원의 부족한 젠더 감수성이 논란이 됐다. 재판부는 당시 피해자가 처해있던 특수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도지사와 수행비서라는 상하 관계가 비업무영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한 채, 통상적인 남녀관계로 사건을 바라봤다. 피해자가 성폭행 이후 일상생활을 영위했고, 연이어 발생한 성폭행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피해자답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의 대책 역시 미미하다.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며 정부는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놨다. 지난해 2월27일 여성가족부는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범정부 컨트롤타워를 가동할 것이라 밝혔다. 주요 내용은 국가기관, 지자체, 공공기관에 대해 2019년까지 특별점검 실시 공공부문 대상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를 3월부터 100일간 운영 대학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교육부 온라인 신고센터 운영 성폭력을 저지른 공무원이 벌금형 이상의 선고를 받아 형이 확정되면 즉각 퇴출 등이다. 
 
정부의 대책은 대부분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거나, 부처 산하 조직을 대상으로 관리 혹은 감독을 강화하는 것에 불과했다. 미투 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고 알려진 성폭력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관련 예산 역시 다른 예산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 2019년 전체 예산은 471조원에 달한다. 시민단체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2개 부처 2019년 ‘미투 및 디지털 성범죄 관련 예산안’ 규모는 약 403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0.01% 수준이다. 지난 7일 열린 불법 촬영물 유포 차단 관련 관계부처 회의에서 최창행 여가부 권익증진국장은 “웹하드 모니터링 인력증원 예산이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2019년에도 미투 운동은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스쿨미투 집회를 연 청소년페미니즘 모임은 2차 대규모 서울 집회를 열 계획이다. 이번 집회는 ‘스쿨미투, 교육부는 응답하라’라는 주제로 개최될 예정이다.
 
체육계 전반에 번지고 있는 미투 운동을 통해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실질적인 대안 마련을 위한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제주도교육청은 제주도 지역의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체육부는 체육계 성폭행 비위 근절을 위한 대책을 밝혔다. 관련 대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성폭력 가해자는 체육 관련 단체에 원천적으로 종사하지 못하게 만드는 규정을 3월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정재인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