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KCGI, 주주권 행사 본격시동…"국민연금 행보 한결 가벼워질 것"
일반주주 의견수렴으로 세불리기 시도…경영권 개입 의지 해석도
2019-01-22 06:00:00 2019-01-22 06:00:00
[뉴스토마토 전보규 기자] 행동주의 펀드 KCGI가 한진그룹에 대한 주주권 행사의 포문을 열었다. 후진적 지배구조 개선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제시한 방안이 명분과 실현 가능성을 갖추고 있어 다른 주주들의 지지를 얻을 만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진그룹 입장에서는 사외이사 추천 등 경영권에 손을 대겠다는 의도로 보이는 방안이 포함돼 있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 
 
KCGI는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다른 주주와의 연대를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공세가 거세질 가능성도 있다. 한진그룹을 스튜어드십코드의 첫 실행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동참할 경우 KCGI의 행보는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21일 KCGI는 낙후된 지배구조 개선과 자원 효율화를 통한 기업가치 향상을 핵심으로 한 한진그룹 개선안을 공개했다. 그동안 조양호 회장 일가와 한진그룹에 비공개로 방안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데 따른 것이다.
 
 
조 회장 일가의 비위행위와 사외이사의 독립성, 과다한 임원 보수 등 한진그룹에 대해 계속 제기되고 있는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해야 한진그룹의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게 KCGI의 판단이다.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에서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연속해서 B등급 이하를 받았다. 특히 지배구조 부문은 4년 연속 C등급을 기록했다. 지속가능 경영 체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비재무적 리스크로 주주가치가 훼손될 여지가 크다는 의미다.
 
KCGI는 문제 해결을 위해 지배구조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 삼성물산의 거버넌스위원회처럼 주주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지배구조와 경영 관련 사항을 사전에 검토·심의하는 기구를 이사회 산하 상설 자문기구로 두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주주 권익 보호 담당위원을 1명 선임해 주주 전체 의견을 수렴한 뒤 관련 내용을 지배구조위원회와 이사회에 보고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KCGI는 자질과 능력이 탁월한 최고경영진(CEO) 등 경영진을 선임하기 위한 임원추천위원회 도입과 합리적인 CEO 승계 절차 수립도 요구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사외이사 2명을 선임하겠다는 것은 경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다"며 "의사를 주도하기는 어려워도 회사의 판단과 결정을 견제하기에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진칼 이사회는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3명 등 총 6인으로 구성됐는데, 이 중 두 자리를 KCGI 측이 차지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배구조 개선안 전반에 대해서는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수준이란 평가가 나온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스튜어드십코드센터장은 "지배구조위원회는 삼성이나 SK, 현대차 등 국내 주요 기업에서 이미 설치·운영하고 있고 소통 강화를 원하는 주주들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합리적 수준의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임추위 설치에 관해서는 국내 일반 기업에서는 사례를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특별해 보일 수 있지만, 해외에서는 일반화돼 있고 국내도 금융회사는 법으로 규정돼 있는 만큼 과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다만 지배구조 개선안과는 달리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부동산 매각을 요구한 데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보인다. 
 
A 증권사 연구원은 "선택과 집중이란 명목으로 요구한 부동산 매각 등은 관점에 따라 다른 판단이 가능한 사안이라 KCGI의 제안대로 하는 게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만 보기는 어렵다"며 "호텔 사업도 단순한 적자라 문제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KCGI가 행동을 본격화하면서 스튜어드십코드 실행을 앞둔 국민연금의 발걸음도 한결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KCGI의 제안이 대체로 합리적인 수준인 데다 지향점도 같아 국민연금이 동조할 가능성이 크고, KCGI와 뜻을 함께하려는 주주들이 늘어날수록 국민연금도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기가 수월해질 것"이라며 "KCGI가 사외이사 추천안을 제시하면서 국민연금이 한진에 행사할 주주권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KCGI가 한진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표를 모으는 동시에 현 시점에서 국민연금이 꺼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하지만 부담스러운 사외이사 추천 카드를 대신 내놓은 덕분에 국민연금이 부담을 덜고 다른 형태의 주주권 행사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KCGI는 공개 제안에 동참을 원하는 한진그룹 계열사 주주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밸류 한진'이란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다양한 의견을 내달라고 당부했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