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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온 날, 하늘로 올라간’ 이인희 고문
“섬세하면서도 강력한 리더십”한솔그룹 일궈내
부친 꼭 닮아, 범 삼성가 구심점 역할
2019-01-30 16:24:24 2019-01-30 16:24:24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1929년 출생, 2019년 1월30일 별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은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와 박두을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4남6녀중 맏딸로 정확히 90년을 살다가 평생을 존경하고 따랐던 아버지 곁으로 돌아갔다. 그의 삶은 범 삼성가의 정신적 지주, 생의 마지막까지 가족들 간 인연을 이어준 구심점 역할로 대변할 수 있다.
 
대구여중과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가정학과에 재학 중이던 1948년에 조운해 전 강북삼성병원 이사장과 혼인한 뒤 학교를 중퇴하고, 조동혁(한솔케미칼 회장)·동만(전 한솔그룹 부회장)·동길(한솔그룹 회장)·옥형·자형 등 3남2녀를 낳아 가사에 전념했다.
 
경영인으로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79년 호암이 한국에서도 내세울 수 있는 호텔을 만들겠다며 정부로부터 인수한 호텔신라 상임고문에 선임되면서부터다. 서울 신라호텔 전관 개보수 작업 및 제주신라호텔 건립 등을 훌륭히 마무리해 수완을 인정받았다. 그때의 경험으로 이 고문은 호텔·리조트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한솔그룹을 이끌며 오크밸리를 만들기도 했다. 이 고문은 2009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생을 살면서 창작의 기쁨을 느낀 적이 정확히 세 번 있다. 선친께서 세웠던 서울 신라호텔을 맡았을 때, 나의 생각을 녹여 제주신라호텔을 만들었을 때, 그리고 오크밸리를 만들고 키워 나가는 바로 지금”이라고 말할 정도로 호텔·리조트 사업에 많은 애착을 보였다.
 
1983년에는 한솔그룹의 모태가 된 전주제지 고문에 취임했다. 전주제지는 호암이 제지사업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 것과 더불어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라도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설립한 기업이었다. 이 고문은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제지회사로 도약시켰다.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부친 이병철 선대회장과 골프 라운딩을 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솔그룹
 
이 고문은 어릴 적부터 남자 못지않은 배포와 섬세함까지 갖춰 부친을 빼닮았다는 평가를 많이 들었다. 이 때문에 호암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호암은 골프 라운딩을 할 때 마다 이 고문을 데리고 다니며 인맥을 넓혀주고 경영에 관한 조언도 해 줬다. 삼성그룹 승계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호암이 이 고문을 두고 “쟤가 아들이라면 내가 지금 무슨 근심 걱정이겠나”라고 수시로 말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남편 조 전 이사장도 회고록에서 부인이 “수완이 탁월하고 사업가적 재질이 뛰어난 전형적인 삼성가 출신”이라고 평가했다.
 
이 고문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전주제지를 갖고 1991년 삼성그룹에서 가장 먼저 분리·독립했다. 이어 같은 해 막내 이명희 회장이 신세계를, 1993년에는 장손 이재현 회장이 제일제당(현 CJ)이 삼성에서 나와 홀로서기에 들어갔다. 이 회장은 독립 후 전주제지 사명을 한솔제지로 바꿨다. 이 고문은 제지 중심의 사업 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해 새로운 분야에 진출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개인휴대통신(PCS)였다. KT에 매각했지만 한솔은 국내 통신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상향 곡선을 이어가던 한솔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라는 복병을 만나며 흔들렸다. 하지만 이 고문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무사히 고비를 넘겼다.
 
이 고문은 어릴 적부터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높았다고 한다. 호암이 도자기, 회화, 조각 등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수집하는 것을 지근거리에서 오랫동안 지켜보며 문화예술에 대한 안목을 착실히 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명 한솔은 국내 대기업 집단 중 최초로 순 우리말을 사용해서 만든 것으로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13년 개관한 ‘뮤지엄 산’은 이 고문의 필생의 역작이다. 세계적인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화제가 됐으며, 세계적인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아시아 최초로 4개나 설치돼 개관 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 언론인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에서도 ‘다른 곳에는 없는 꿈 같은 뮤지엄’ 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집중 조명을 받은 바 있다.
 
이와 함께 이 고문은 모친의 유지를 받들어 우리나라 유일의 여성장학재단인 두을장학재단을 설립,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국내 여성인재 육성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그룹 오너가의 맏딸로서 행복한 삶이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부친과 동생, 동생들끼리의 갈등과 반목, 아픈 손가락과도 같은 자식 때문이었다. 이럴 때마다 이 고문은 앞으로 나서 중재를 했다. 그가 있었기에 가족간의 우정이 완전히 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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